다 읽고 나서 리뷰 공모란의 말씀, “통쾌했나요? (…) 통쾌함을 의도했는데”이 걸리더군요. 한참을 생각했어요. 왜 통쾌하리라 생각하시는 걸까? 통쾌함이란 감정을 놓고 이 소설을 다시 읽었습니다.
루주아 작가님의 [감비공]은 가상 세계 시 제국을 배경으로, 장가장의 장녀 ‘하연’이 무림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아낸 단편 무협 소설입니다. 읽으면서 의아했던 지점을 차근차근 설명해보겠습니다.
“이전부터 왕이 아니라 무를 숭상했던 연무성은 무림지망생으로 넘쳐났다.” 왕권이 약한 제국이라 지략보다는 무로 출세하기가 더 쉬웠던 것인지, 무림인이 그 사회에서 아주 높은 지위였던 것인지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무림인이 되겠다는 장하연의 말은 공허하지요. 개인적 득도를 위함인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어쩌다 만난 기인과 함께 집을 탈출하기 위함인지…구체적이지 않습니다. 공허한 선언처럼 들립니다. 왜 무림인이 되려고 하는가? 장르 소설이고 무협 소설이고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림인이 되고 싶어야 한다는 당위만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하연은 우연히 고수인 모영린을 돕게 되고 무학을 배울 기회를 얻습니다. 기연을 얻는다는 무협의 클리셰이지요. 동네 양아치들에게 붙잡혀 난처해보였던 여성 모용린은 알고 보니 고수였고, 모용린이 소설에 등장해 처음 실력을 뽑내는 장면은 이렇게 묘사됩니다. “여인은 허리에 감고 있던 비단띠를 풀어 휘둘렀다.” 고수이기 때문에 무기 없이도 출중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여자는 왜 굳이 의대를 풀러 싸우나요. 허리띠를 풀면 상의가 벌어지거나 바지가 흘러내린다거나 어쨌든 복장의 변화가 있을테고, 게다가 이 캐릭터는 여자라 허리띠라고 하면 성적인 부분이 상상되는데요, 이건 뭐 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연무성은 무림 지망생이 넘쳐나니 허리에 검을 찬 사람도 많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하다못해 손목에 채찍을 감아 소매 속으로 숨길 수도 있었을텐데. 저는 이 비단띠가 뜬금없이 다가왔습니다.
이런 점은 하연이 황보기린과 싸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있는 힘껏 창을 바깥쪽으로 쳐내려 하는 장하연. 그러나 검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타고난 재질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하연은 지금 3개월 배운 초보자이지요. 왜 자신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결투에서 창을 쓰나요? 훗날 여협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장하연의 영웅적 성장의 단초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결투에서, 왜 장하연은 창을 씁니까. 3개월 동안 창을 배워서? 창이 자신과 잘 맞아서? 아니면 결투에서 유리해서? 검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武가 중요한 요소인 무협소설인데, 이 소설은 캐릭터가 자신의 무를 표현하는데 중요한 수단인 무기에 대한 설명이 없어요. 그냥 창을 씁니다. 흔한 검이였다면 그나마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굳이 창을 쓴단 말이지요. 창은 길잖아요. 그래서 찌르는 범위가 더 넓어질 수도 있지만 초보자인 하연이 사용하기에는 편할 것 같지 않은데요. 뒤에서 이어질 육탄전과의 대비를 위해 일부러 창을 쓴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제가 [감비공]에서 느낀건 武 자체에 대한 혐오감입니다. 어쩌면 기존 무협소설의 무에 대한 혐오감일 수도 있겠고요. 모용린이나 장하연이나 무기를 다룰 때는 간략하게 묘사되는데 반해 육체 자체를 쓸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보면 이 소설은 무기란 기존 구질서의 상징이고 타고난 육체 자체만이 진정한 무기라 본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육체만으로 승리하는 걸 진정한 승리로 간주한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읽으면서 이상한 거예요.
장가장은 아들 낳게 해달라고 쌀 300석을 시주할 정도로 부잣집인데 장녀인 장하장은 부엌데기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집 딸도 규방에서 신부수업을 받는데, 장가장의 부모는 장차 정략결혼으로 팔 딸이란 상품에 표면적인 흠집이 날지도 모를 일을 시킵니다. 소설 속에서는 하연이 무술을 배우는게 부모 눈에는 상품에 흠집을 낼(결혼에의 걸림돌) 가능성으로 묘사되는데, 이건 하연이 부엌데기란 앞부분의 설명과 충돌합니다. 결혼 적령기를 위해 곱게 가꿔야할 상품이 부엌일을 하고 저자거리를 몸종도 없이 부침개를 들고 혼자 가다가, 갑자기 가문을 위한 상품이라면서 배움을 포기하기를 강요받습니다. 남동생에게 이겨서 부모의 우려를 샀을거란 걸 감안해도 말이지요. [감비공]의 장가장이란 가문은 무협 속 가문이 아니라 한국 어느 깡촌의 다 쓰러져가는데 이름만 남아있는 가문 같습니다. 이는 장하연과 정략 결혼하려는 황보세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하연은 결혼을 원하지 않고 가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장가장은 명문가인 황보세가와 결혼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고요. “황보세가에서 내세운 것은 황보기린이었다.그는 멀끔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의 본래 이름은 강소아. 황보세가의 방계이나 출중한 무재로 그 이름과 성을 하사받았다.” 방계이기는 하나 명문가 자제이고 별다른 설명이 없는 걸로 보아 그에 맞는 교육을 받았겠지요. 그런 사람이 약혼녀라 할 수 있는 장하연을 처음 만나고서는 대뜸 반말을 합니다. 심지어 그는 “거지닭의 닭다리를 들고 뜯으며 집을 나”서기 까지 합니다. 그깟 거지닭이 뭐길래 명문가 자제가, 초반에 등장했던 삼견형제와 아무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로 상스럽습니까. 그 정도로 나쁜 새끼란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 이런 나쁜 새끼와 절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를 주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때문에 [감비공]은 저에게 통쾌하지 않았어요. 자신을 상품 취급하는 부모, 상스러운 정혼자 등 모든 굴레가 하연에게 ‘소설 주인공읜 너는 탈출해야 한다’며 등을 떠미는 요소가 됩니다. 이러고도 가문에 붙어있으면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을 정도로 소설은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저런 가문과 결혼에서 탈출해야죠. 이게 너무나 당연해서 심하게 이야기가 편의적이란 인상도 받았습니다. 외부의 압박이 이 정도란 걸 알았는데, 그럼 하연 내부의 갈등은 뭐냔 말이지요. 얘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얘는 왜 무림인이 되고 싶어하는가. 얘가 정말 강해지고 싶기는 한가. 하연이 탈출하기를 독자로서 응원하게 되기 보다는, 탈출이 너무나 당연해서 얼른 나오고 다음 이야기를했음 싶은 거예요. 하연에게 짜증이 나는 겁니다. 계속 상황이 하연을 몰아붙이니 하연이 끌려가는 걸로 보이면서 하연 내부의 열망은 별로 느껴지지가 않는 겁니다. 마지막 대결은 허탈하기까지 했고요. 요행이던 지략이던 하연 그 자체가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기연이든 운이든 어쨌던 무협소설을 읽을때 주인공이 강해지길 원하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 이 별 거 아닌 나도 강해질 수 있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너도 될 수 있다 – 그 강함을 자신이 소유한 육체로, 맨손으로 시작해 구현하는게 무협이 주는 강력한 판타지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무협을 너무 싫어해서 비웃기 위해 쓴 소설인가,란 생각도 잠깐 했어요.
쓰고 나니, 싫은 소리만 잔뜩 늘어놓았어요.
* 글을 올리고 나서 덧붙여요. 올리고 나니, 어쩌면 이것은 꼰대 리뷰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지네요. 싫은 소리를 잔뜩 늘어놓은 것에 대한 면피성 덧붙임이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나야말로 이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틀 안에서 생각하는게 아닐까 의심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