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대신 이름조차 빼앗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과거와 현재를 차분히 읆조리며 자신을 드러낸다. 개새끼를 부르는 순화된 멸칭인 “투견” 중 한마리라고..
** 이하 작품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투견”은 격렬한 분노가 끓어오를만한 사연을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의식과 생각을 혼잣말하는 것을 독자가 엿듣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걸 형식적인 특징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전 이과출신입니다. ^^;;) 알맞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다분히 영화를 보는 듯한 서술이면서도 꾸미는 표현은 최대한 줄이고 주인공의 반응을 피력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익히 알려진 설정이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투견” 역시 개인의 서사나 대사에서 어설픈 느낌을 주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리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 최장덕에게 파괴된 가정사를 묘사하면서 비정하다 못해 선을 넘은 듯한 부분들이 보였고, 복수를 위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허세와 대사는 위트나 블랙유머를 구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시도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처참한 영상이 떠오를 정도로 분위기를 띄워놓고 생뚱맞은 대사나 유치하게 비꼬는 대사는 소설로 보니 따라가기가 어렵네요. (영화에서 미국스타일의 블랙유머는 그나마 좀 캐치하고 즐기는 편입니다. ^^;;)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마 다르겠지만, 대강 이런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엔딩은 다분히 과거를 현실로 두고 독자의 화를 북돋우다가 복수는 상상에 맡겨 여운을 만들려고 한 것 같지만 웬만한 상상력으로는 작품에 표현된 끔찍한 과거들보다 더한 복수의 형태를 그려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저자분이 슬래셔 무비처럼 살을 파헤치고, 뼈를 갈아내는 걸 독자가 상상해주길 바랬다면 “무리”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혼자서 그런 상상을 그림처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어딘가 정신적인 한구석이 무너졌거나 오염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복수는 생생한 느낌으로 상상해야 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막연하게 복수를 그려보는 건 사람을 불지옥에 밀어넣는 악마를 그리는 고전 변화를 보는 것과 별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끔찍하긴한테 어쩌라고? 하는 느낌이랄까요?)
최장덕의 인간적인 내면과 정서적인 약점을 덧붙인 뒤에 부셔버리는 플롯을 만들어낸다면 더 재미있어질 것 같습니다. 출판된 작품이나 영화에서나 만날 만한 문장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좋은 부분이 많아 몇몇 가볍게 처리된 부분만 보완하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전 웹소설이나 장르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아저씨입니다. ^^;; 걸러 들으실 것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