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싹한 공포는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작가: 너울, 작품정보)
리뷰어: 파란펜, 18년 11월, 조회 505

제목부터 강렬했습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내뱉은 말일까 강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동시에 나 역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하며 잊고 있던 그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시청 앞에서 거리예술축제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공중그네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리고 있던 외국인 퍼포먼서들이 자꾸만 관객 너머 어딘가를 힐끗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 거라는 조바심이 절로 들 정도였죠.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자꾸만 보는 것일까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그들은 모습보다 소리로 먼저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그들이 구호를 외치며 축제장에 난입한 것이지요. 곧바로 진행요원과 경찰 들이 나타나 관객과 퍼포먼서를 둘러싼 채로 그들이 지나갈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경찰 뒤에 숨은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 틈 사이로 그들을 노려보았습니다. 그들은 결국 진행요원이었던 젊은 여성과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로 누가 먼저 밀쳤는지를 두고 다투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서울시가 마련해 준 축제에 온 저 같은 관객을 가리키며, 한심한 멍청이들이라고 떠들어 댔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핏대를 올리며 외치는 기세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죠. 젊은 진행요원 역시 지지 않고 맞섰습니다. 결국 경찰에 의해 상황이 정리되었지만 저는 그 광경을 보며 이런 말을 내뱉었죠.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이 작품의 도입부에선 에어팟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것이 아니라 2018년인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정도가 지난 후에 등장한 에어팟입니다. ‘에어팟 실버’라는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에어팟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노인들에게 어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보청기 기능이 추가된 노인 전용 에어팟이었습니다. 지금의 보청기와는 다르게 사용자가 원하는 소리만을 선택하여 증폭해 주는 효도 상품이었죠.

주인공 양씨 할아버지는 칠십 대의 노인입니다. 2018년엔 팔팔한 청년이었던 양씨 할아버지는 썩은 내를 풍기는 생선 상자를 들고 버스에 타려다 저지당한 노인을 목격합니다. 노인은 버스 앞을 가로막고 서서 행인들의 이목을 끌죠.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광경이었습니다.

이제 노인이 된 양씨 할아버지는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먼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인스타그램은 돌고래토크로 바뀌었고, 초능력통신을 이용해 사진을 올리는 콘텐츠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죠. 아이들은 인공지능스피커와 대화하며 공부하고요.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원하는 지식을 검색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고, 이젠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기와 대화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냅니다. 그러나 양씨 할아버지는 대화형인터페이스를 장착한 기기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인공지능 개인비서를 곁에 두고 있는 세상에서 양씨 할아버지는 혼자만 소외된 듯한 느낌이 들죠. 양씨 할아버지의 눈에 다른 사람들은, 민망하게도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뿐입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싹했던 점은 양씨 할아버지의 모습이 미래의 제 모습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스타그램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카카오톡도 수시로 방해를 받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삭제했다가 올해 다시 설치했을 만큼 SNS 신문물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이렇게 살다간 완전히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피어올라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가입하고 블로그까지 열었습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죠.

저와 함께 사는 사람은 유독 이런 신문물에 민감합니다. 방에 있다가 말소리가 들려서 거실로 나가보면 그 사람이 소파에 앉아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중얼거리고 있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죠.

“시리야, 사랑해.”

“오케이, 구글. 오케이, 구글.”

‘오케이 구글’은 말길을 잘 못 알아들었지만 시리는 농담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저는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노트2’의 음성인식기능을 켜고 이렇게 한번 말해 보았죠.

“꺼져.”

“피곤하신가 보네요. 푹 쉬세요.”

저는 이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아직도 헷갈립니다. 아마도 현실이었을 겁니다. 키득거리며 농담을 던져본 것인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와 멍해져버린 것이죠.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먼 미래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절대로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겠다고 저 또한 다짐하지만, 먼 미래엔 추하게 늙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이 단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초래된 결과라면 이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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