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글을 읽으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문제점은 크게 보자면 두 가지였다.
나는 원고지 매수보다 문단 수가 적은 글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문단이 두꺼워도 청산유수처럼 읽히는 장중한 글이라면 환영하지만.. 대체로 문단 수가 적은 글들은 자신이 내뱉은 문장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일부러 의도하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일부러 의도했다고 해도 긍정적으로 읽히는 경우는 잘 없다.
이 글은 원고지 58매에 32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마저도 한 줄짜리 문단을 한 문단으로 계산하면 28문단이 된다.
언어감각이 독특한 작품이었다. ‘무겁지도 가렵지도 않은 비의 소리’ ‘입이 궁금해서’같은 것도 있고, 문단 나누는 것도 신경썼고.
이런 기교보다는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면 정공법이란 무엇인가? 막연히 스토리와 플롯으로 승부하는 걸 정공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정공법이라는 법은 없다.
애당초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기교를 쓰지 말라는 것도 웃기는 말이다. 어느 정도 기교가 경지에 오른 기교인가. 합격점은 70점이고 저 작가의 기교는 69점이니 불합격이다, 라는 식으로 정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작가 스스로 자기 점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어렵다. 100미터를 10초 안에 뛸 수 있으면 100미터 주자를 계속하고, 아니라면 중장거리를 노려보자..뭐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다.
또 이건 나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글의 분위기와 래퍼라는 직업이 안 어울렸다. 진부하더라도 그냥 발라드나 포크 쪽이 글의 분위기와 어울렸을 것 같다.
사족으로..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야, 라는 가사는 리쌍의 곡이라고 하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인 듯 한데 실수한 건가 싶었다.
그리고 일매틱을 사는 장면에서는, 왜 일매틱이었을까 의아했다. 이건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서점에서 햄릿을 사는 것과 같다. 이게 왜 이상하냐면, 힙합 매니아인 척 자처하는 입장에서, ‘셰익스피어를 좋아한다는’ 사람인 시점에서 일매틱이나 햄릿은 이미 진즉에 갖고 있어야 할 작품이기 때문이다. 딱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좀 더 그럴듯하게 댜처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