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흔히 눈사람을 만드는 방법으로 ‘눈을 굴려라, 굴리다보면 커지리라’ 같은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눈을 굴리기 위해서는 일단 눈덩이가 필요하다. 군생활 도중 강원도의 차진 눈으로 높이 2m의 눈사람을 만든 내 경험을 말해보자면, 최초의 눈덩이는 무조건 단단해야 한다. 머리에 던지면 머리가 깨질 정도로 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창 크기를 키워나가던 눈덩이가 반으로 쪼개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설이라고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스케일이 큼지막한 소설일 수록 최초의 눈덩이는 아주 단단하다. 그 단단함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이야기의 전개를 통해 몸집을 부풀린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초반에는 ‘히틀러와의 하룻밤’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흘러간다. 위베르의 수술 장면과 주정뱅이 패트릭, 겉멋만 든 폴과 호텔 주인 오닐 마네트, 뉴욕에서 쫓겨난 엘렌, 그리고 스파이 소설을 읽는 소피까지. 히틀러는 등장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실 히틀러라는 것은 어떤 은유의 대상으로 쓰인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히틀러는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예리한 각도로. 독자에게 단서나 낌새 하나 주지 않고서. 독자는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히틀러를 맞이한다. 다른 작품이었으면 내키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히틀러라는 (실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다큐멘터리나 세계사 등에서 다루었던 히틀러의 이야기를 통해 상상했던 히틀러의) 캐릭터에 딱 맞아떨어지는 등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등장 이후의 행보도 그러하다. 일차원적이고 괴상하며 동시에 무례하다. 하지만 히틀러라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히틀러의 등장과 동시에 위베르의 주변 인물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된다. 전혀 다른 방식일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패트릭에게서 뜯어낸 돈으로 폴의 차를 사고, 소피가 읽은 스파이 소설이 엘렌을 통해 실현되고, 그 와중에 오닐 마네트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들의 조합으로 주인공은 히틀러의 손아귀에서 도망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사건이 기계적으로 딱딱 떨어지고, 인물의 행동이 작가의 목적에 의해 결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써놓고보니 두 가지처럼 보일 수 있으나 어느쪽이나 작위적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다시 눈사람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단단한 눈덩이를 언덕길에 대고 굴리면 눈덩이는 지구의 온갖 과학으로 굴러 내려가 스스로 몸집을 부풀려나간다. 바닥의 요철에 의해 ‘완벽한 모양의 구체’가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눈사람을 만들 때 완벽한 모양의 구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 작품은 내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에 들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이 제대로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어떤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품이 작가에 의해 완벽하게 완결지어져야 한다고 믿는 독자를 제외한다면 아마 모든 독자가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면 ‘부부가 신대륙으로 건너가 잘 살았다’ 쯤으로 귀결될테고, 나같은 사람에게는 ‘도중에 붙잡혀서 “정말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오. 당신네들은 내 손에 있다니까.” 라는 대사를 치는 히틀러 앞에서 총살 당하는 장면’으로 끝날 것이다. (만약 죠죠러가 있다면 신대륙으로 떠나는 배 안에서 DIO를 만나… 헛소리는 길게하면 안 된다.)
작가는 산비탈에서 딴딴한 눈덩이 하나를 굴렸다. 눈덩이는 작가가 미리 파놓은 길을 따라 구른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덩이의 행방은 독자의 몫이 된다. 그 순간은 결말이다. ‘히틀러와의 하룻밤’이라는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독자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