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하듯 반말로 쓰겠습니다.)
우선, 좋았던 점들.
1. 제목 자체를 반전의 소재로 쓴 것이 좋았다.
2. 주사위를 AR 상에서 표시한 것이 트렌디하고 괜찮았다.
3. 마지막 장면 주인공의 교활함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살짝 걸렸던 부분들. (이쪽이 분량이 많아서 죄송. 그저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1. 횡령과 사직.
부사장이 횡령을 했다고 부하 직원들을 권고사직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직원을 해고하기 쉽지 않다고 알고 있다. 부하 직원들이 부사장과 작당해서 자금을 해먹은 게 아닌 이상, 모두 잘라버리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부하 직원들은 피해자일 수 있는데 말이다. 만일 작당을 했다면, 횡령이라는 게 보통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추가 설명이 있어야 했다.
2. 주사위의 용도.
주사위라는 건, 선택지가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특정 선택지를 무작위적으로 고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주사위는 그런 식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만 임의의 숫자를 사용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만 사용될 뿐이다. 이래서는 그냥 전광판일 뿐이다. 주사위의 원래 용도에 맞게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땠을까, 선택지가 주어지고, 주사위가 굴러가고… 정말로 바라던 선택지가 선택되었는데 그게 사실 헬게이트의 입구였다든지 뭐 그렇게. (재미 없으려나?)
3. 보통 주사위는 8이 나올 수 없다.
물론, 보드게임에서 쓰이는 20면체 주사위 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화자가 특별히 언급을 했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주사위가 3번 던져지고, 두 번째는 두 번만 던져지는 것도 좀 헷갈렸다. 차라리 두 번째에서 4 + 4 + 3 정도가 나왔으면 어떨까. 그럼 6면체 주사위로 충분했을텐데. 그러면 너무 어려운 수수께끼가 되었을까.
4. 박나리.
같은 회사 직원이, 게다가 바로 옆 부서 사람이 같은 전철역에서 출근 열차를 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회사 앞 전철역에서 내리다가 만나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래서 처음에는 회사 앞에서 만난 줄 알고 좀 헷갈렸다. 특별한 설정이라 설명이 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박나리씨는 스토리상에서 쓸모가 없다. 그냥 주인공이 혼자 붐비는 칸에 끼어 탔다가 행운을 누려도 충분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지하철 신이 이야기 전체에 있어 그다지 필요한 부분도 아닌 듯하다. 주인공이 주사위로 행운을 누리는 것은 앞에서도 많이 이야기되었기 때문이다. 혹시 주인공과 박나리씨 때문에 전철을 타지 못했던 그 여성이 아마도 지각을 함으로써 겪었을 불행으로 주인공의 행운 부채를 탕감하는 시스템을 말하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좀 약한 듯하다.
마지막에 계단을 몇 칸 건너뛰어 내려오던 남자는 뭐였을까? 처음에는 전철을 못 탄 여자가 그 남자에게 해꼬지를 당하는 전개인가 생각해 봤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설명이나 암시가 너무 약했다. 그런데 이후에 그 플랫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나온 걸 보면, 실제로 작가가 그렇게 설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남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운 부채를 탕감하는 시스템이 좀 더 강하게 설명되는 것 같기도 한데, 대가가 너무 큰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렇게 보기에는 작중 설명이 부족한 것 같다. 아닐지도.
5. 남자에게 관대한 주인공
처음 보는 남자가 허리를 계속 감싸쥐는데도 저항을 하지 않는 게 약간 어색했다. 그리고 차에 타자고 한다고 넙죽 타다니, 좀 부주의한 게 아닐까. ’16의 행운은 이거였어!’ 라고 독백을 해 줬다면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난 주인공의 이기적인 성격을 받쳐주기도 했을 것 같고.
6. 마지막 장면, 남자에게 대담한 주인공
남자의 멘탈을 붕괴시킬 만한 얘기를 마치 약을 올리듯이 귓속말로 해 주는 주인공. 너무 대담하지 않은가. 남자가 곧 죽을 것 같지도 않고, 그의 분노를 대신 풀어주려 할 친구들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여자가 남자에게 공용 장소에서 살해당하고 편의점에서 망치로 맞아 두개골이 부서지는 세상이다.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주인공이 그런 것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다고 치부하기도 힘든 게, 주인공은 회사에서 해외 미팅에 참석할 정도의 지위이고, 다른 사람들이 비행기 연착으로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그 미팅을 그럭저럭 땜빵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운을 믿어서 대담해졌다고 하기도 힘들다. 주인공은 살해 장소가 두려워서 피하며, 커피숍 사고 광경을 보고 아찔해져서 다리에 힘이 풀렸으므로. 게다가 방금 주사위 소유자가 다른 주사위 소유자의 행운을 위해 처참하게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나.
그냥 뒤돌아서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하지만 약간 미소지으며 남자에게 했던 말들을 속으로만 하는 편이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7. 상상
지하철에서도 그렇고 (살인이 주인공 때문에 일어났다면), 소개팅 나갈 때도 그렇고, 마치 주인공이 원래 죽을 운명이었는데 약간의 시간차로 아슬아슬하게 행운을 누리는 것 같은 장면을 보니, 사실은 악마가 주인공이 죽어버릴 숫자를 던져주는데 주인공의 또다른 뭔가의 엄청난 행운으로 그걸 비껴간다는 식의 스토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