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자영업자의 몰락, 돌봄의 인간적 서사 감상

대상작품: 개인사정으로 폐업합니다. (작가: 구일, 작품정보)
리뷰어: 노르바, 2일 전, 조회 29

코로나19의 팬데믹은 21세기 인간들에게 상당히 큰 충격과 공포를 주기는 한 것 같다. 이후에 나온 소설들은 대체로 그 시점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장면들이나 소재가 많으니까.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COBID-19의 이름을 곧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심지어 중국에서 시작된 whaBID-19 바이러스. 많은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유지할 수 없어 죽어나가며 사람들은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는 설명도 마찬가지다.

 

[방심을 유도하는 도입, 그리고 반전의 타이밍]

주인공은 운영하던 식당을 폐업한다는 팻말을 걸어두기 위해 마지막으로 가게로 출근한다. 그리고 청소를 하고 식재료를 살핀다. 혹여 단골이라도 들리면 간단한 것 정도는 대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리고 실제로 단골 노부부가 방문한다. 주인공은 폐업 소식을 알리며…

 

 

…노부부에게 빠루를 내리친다(?).

그렇다, whaBID-19 바이러스는 쉬운 말로 ‘좀비 바이러스’.

노부부는 이미 좀비가 되어버린 것이다.

 

코로나19를 연상시키는 도입부(마스크, 자영업자의 몰락,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로 시작해 팬데믹 시대의 자영업자의 씁쓸한 일상물처럼 독자를 방심시킨 뒤, 빠루로 단골 노부부를 내려치는 장면 하나로 장르를 뒤집어 놓는다. 좀비 아포칼립스로.

이 타이밍이 어떤 사전 경고도 없이 문장 하나로 이루어진다. 그 점에서 이 도입부는 정말 효과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코믹’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씁쓸하고 신파적이다.

 

[좀비가 되어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비가 돼도 습관대로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갈 것’이라는 밈은 인터넷에서 꽤 오래 돌아다닌 농담이다. 이 소설은 그 농담을 코미디의 재료로 소비하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담담한 필치로 그대로 옮겨놓았다.

해가 뜨면 좀비들이 일제히 지하철역으로 몰려가 스크린도어에 몸을 부비고, 오후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하교하는 유도부 무리가 거리를 메운다는 설정은 우스갯소리의 톤을 완전히 걷어낸 채 제시된다. 웃자고 하던 말을 웃음기 하나 없이 그대로 실현시켜 놓으니, 그 결과물은 유머 대신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재난이 삼켜버린 것이 결국 우리의 지긋지긋하도록 성실한 ‘일상’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농담을 진담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증명해내는 셈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 소설의 정서적 중심은 ‘몰락’과 ‘돌봄’이 겹쳐지는 지점에 있다. 폐업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건은 재난 서사 속에서도 그대로 진행되고, 주인공이 식당에 마지막으로 나온 이유 역시 손님들을 향한 책임감이었다.

수술 후 입맛을 잃은 부인을 위해 병실까지 포장을 배달했던 사연, 아내가 급식카드를 든 남매를 먼저 알아보고 식당 안쪽 자리로 이끌었던 회상 장면은 이 식당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돌봄의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옛 단골이었던 공무원 준비생 청년을 알아보고 “편하게” 해주는 장면은, 좀비를 처치하는 행위조차 애도와 돌봄의 한 형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주인공이 비닐봉투만 뒤집어 쓰고 온 남매에게 방독면을 나눠주고, 먹을 것을 챙겨 보내려 애쓰는 모습은 그 돌봄의 습관이 세계가 무너진 뒤에도 관성처럼, 마치 출근길처럼 남아있음을 드러낸다.

 

[서술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방식]

중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이 이야기가 사실 이미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독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내가 자신이 감염된 걸 깨닫고는 방 안에서 스스로 감염을 ‘처리’하고, 주인공 역시 감염을 자각한 채 식당과 함께 폭사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다. 이 반전 아닌 반전은 이야기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드는 힘은 있지만, 그 파급력이 다소 완만하게 풀려나간다는 인상도 있다. 정말 아주 야아아아악간 애매… 모호하게 아쉬운? 그러니까 이게 밝혀지는 부분을 조금만 더… 독자가 ‘아!’ 하게 만들어주시면 좋겠다는… 그런…

지금 막 쥐어짜낸 아이디어긴 한데, 초반부에 복선을 은근히 심고 그게 밝혀지는 지점은 그대로 유지하거나, 아니면 아내 회상 직후 바로 “그래서 나도 이 식당과 함께 사라지기로 했다”는 식으로 자신의 감염과 계획을 한번에 터뜨리거나.
아니면 아예 극단적으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숨겨서 ‘아니, 이 사람은 왜 굳이 좀비 아포칼립스에 폐업할 식당에 나와서까지 좀비를 잡고 있는거야?’ 라는 의구심이 완전히 쌓인 시점에 “사실 나도 감염됐다. 이 식당과 함께 다 끝내려 했다”는 정보를 터뜨리면 그 순간 독자가 “지금까지 읽은 게 전부 유서였구나”로 깨닫게 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감정선이 충분이 담기지 못할 것도 같다.

 

[마무리]

가스가 폭발하도록 조절해두고 아이들의 방독면을 벗기고 끌어안는 결말은 자살이라기보다, 좀비가 된 이웃들의 세계로 적극적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처럼 읽힌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서의 죽음, 몰락해가는 자영업의 현실, 그리고 습관처럼 이어지는 출퇴근과 돌봄. 이 세 가지 정서가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여운이 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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