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메모지를 주자 사람들은 즉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차렸으며 포스트잇 메모지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 아서 프라이(포스트잇의 발명자)
이 작품의 제목은 ‘포스트잇’이다. 그리고 작품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소재 또한 포스트잇인데 혹시 포스트잇의 유래를 알고 있는지? 포스트잇을 발명한 ‘아서 프라이’는 1974년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저점도 접착제를 이용하면 예배 시간 중 발생하는 당황스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가대원인 그가 책갈피를 잠시 자신의 찬송집에 붙일 수 있다면 찬송가를 이어 부를 때 쪽수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성가대원들의 화음이 어긋나는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만들어 내게 된 것1이 바로 오늘날의 ‘포스트잇’이라고 한다. 결국 포스트잇의 탄생은 개발자의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발명품이라 볼 수 있는데 이 작품도 어쩌면 누군가가 생각했을 ‘사소한’ 생각 속에서 탄생한 작품일 수도 있다.
우선 작품의 분량은 다른 엽편 소설처럼 짧다. 하지만 보통의 엽편 소설과는 다르게 등장인물들이 비교적 자세히 나오며 주인공도 비교적 명확하다. 사실 엽편 소설에서는 짧은 분량에 기승전결을 담아야 하는 약점(Handicap)이 존재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기승전결이 다른 중단편 소설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소년과 여동생의 사소한 일상 속 모습을 두 등장 인물들의 대화와 지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나 이 짧은 분량 안에 작가는 ‘판타지’를 ‘은은하게’ 가미시키고 있는데 이 점이 다른 엽편 소설들과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쓰면 인물들이 있는 현실에 나타나는 부분이 나름의 판타지라면 판타지라고 볼 수 있는데 분량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를 가미시킨 작가의 능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럼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단순히 엽편 소설로 치부되긴 너무나 아까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가족 소설로 덜컥 정의(定義)내리기엔 섣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고, 작품에 간간히 나타나는 판타지 요소로 인해 판타지 소설로 분류하기엔 너무 무리가 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판타지계 가족 소설’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판타지와 가족 소설의 비중을 적절히 안배(按排)한 이 작품이 ‘판타지’와 ‘가족 소설’이라는 두 축의 경계를 허무는 시발점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쓰면 순식간에 등장하는 포스트잇. 우리 모두는 각자가 원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포도송이처럼 음식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 사랑하고, 사랑했던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친구일 수도 있다.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풍요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결핍의 삶을 살고 있다. 겉으론 풍요롭지만, 안으로는 너무나 공허한 상태에 우리는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포스트잇 메모지를 주자 사람들은 즉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아차렸으며 포스트잇 메모지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는 아서 프라이의 말처럼 이나경 작가의 「포스트 잇!」은 장르가 다른 소설의 경계를 허물고, 정서적 결핍의 삶을 사는 우리들을 위로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이 그 가치를 ‘즉시’ 알아차릴지, ‘천천히’ 그 가치를 알아차릴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