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나와 완벽하지 않은 뒤통수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신의 사탕 (작가: HY, 작품정보)
리뷰어: 리체르카, 17년 9월, 조회 132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글을 먼저 읽고 오시기를 권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동안 전혀 다른 추측을 하고 있었던 것을 고백하며 반성합니다. 신의 사탕은 외계의 어떤 물질이 사람들을 보다 더 완벽한 존재로 바꾸어내는 도시 이야기에요. 이렇게 요약하면 굉장히 괴괴한데, 자기 열등감이었던 뭔가를 극복해낸 존재가 뒤통수에 나타나 결국 몸의 주도권을 차지하고 본인이 되어버리는 그런 이야기랍니다. 시작부터 스포일러라서 제가 경고드렸다구요..! 리뷰 제목이 뜻하는 바는 자명합니다. 몸을 빼앗긴 탓에 불완전해진 진짜 나들은 모두 뒤통수에 봉인당하니까요. 모든 완벽해진 나들은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나와 평생 동행하게 되는 셈이 아닐까요.

 

화자인 케이는 전학생입니다. 이제 전학 온 지 삼 일이 되어 남의 뒤통수에서 얼굴을 발견하고, 그 기괴함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그런 평범한 전학생이요. 대부분의 전학생 화자가 그렇듯이 독자와 함께 분위기를 낯설어하고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반응을 한다는 것을 괴로워하고 자괴감 들어 하다가 이내 거기에 동화되어버리고 마는 독특하면서 평범한 주인공입니다. 사실 상식적인 단어들만 나열해 봐도 이 상황은 상당히 이상합니다. 클래스메이트 뒷통수에 나타난 예쁜 얼굴과 그것을 더 좋아하는 동급생들이라니. 케이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막는 것이 스스로의 고립을 초래할까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다 결국에는 용기를 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요. 다들 알고 그랬다는 겁니다.

 

“나도 우리가 이상한 거 알아. 케이 너를 미워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게 아냐. 우리 반 애들 모두가 봉봉을 그렇게 증오하고 괴롭히는 게 이상하다는 거야. 반 애들 모두 이렇게 생각할거야. ‘난 왜 봉봉을 미워하는 걸까. 난 왜 봉봉을 괴롭히고 싶어 하는 거지?’하고 말이야. 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저 미우니까 미워하는 거고, 프랑을 좋아하니까 프랑과 양립할 수 없는 봉봉을 더 싫어하는 거야.”

“…”

“하지만 그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은연중 알고 있으니까,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케이 너를 미워하지 않아. 우리도 알고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를 대신해서 케이 네가 봉봉 편에 서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드니까. 게다가 프랑도 너를 좋아하잖아. 프랑은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애라서, 봉봉 말고는 아무도 싫어하지 않아. 당사자 중 하나인 프랑이 케이 널 좋아하는데 우리가 케이를 싫어할 리 없잖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고 서술이었죠. 모르고 그랬다는 것보다 알고 그랬다는 사실이 한층 독자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자기 존재를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뒤통수 머리와 자신을 대체할 것을 요구받는 봉봉의 좌절감 같은 것은 그다지 그려지지 않습니다. 어차피 두 사람은 한 뇌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실리콘 가면으로 덮여 존재가 사라진 뒤에 다른 존재가 된다고 해도 내면의 열등감과 이전의 패배감, 부정적인 감정 같은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극복해낸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이니까.

 

글을 읽으면서 단점을 극복하고 완전해진 친구들의 정체를 얼추 추측할 수 있도록 친절한 서술이 뒤따르는데, 신발 좌우측을 뒤집어 신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 좋은 반장 예지의 부자연스럽게 느껴진 손 같은 것들이 그런 요소입니다. 위화감은 느끼는데 정확히 이것이구나! 하고 예측하지 못하는 케이 때문에 독자는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까지 확실히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뭔가가 이상하구나, 라는 느낌만으로 오소소한 긴장감을 이끌어가기는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쳐지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데 중반부부터 브레이크 없는 차에 탄 것처럼 급하게 달려서 숨이 차요. 읽고 난 다음 분량을 보면 이렇게 많았어? 싶은데 읽은 직후에는 짧다고 느껴질 만큼 달린 느낌. 몰입이 잘 되어 공포소설로서 좋은 모범이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청소년 대상의 글이다 보니 기괴하다는 감상이 남는 것 외에 그렇게까지 피부에 와 닿는 공포는 없는데, 아무래도 케이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위협이 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속도감은 있고 그 상황도 환경도 모든 것이 이상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안전하게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는 느낌. 덕분에 오싹하긴 하면서도 공포를 잘 읽지 못하는 대상 독자에게까지 접근하기는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장점도 단점도 모두 될 수 있겠죠. 덜 무섭다는 이야기니까요.

 

주위 사람들이 봉봉을 미워함으로써 프랑은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사람들이 봉봉을 좋아했다면 봉봉 뒤통수에 생긴 기생수 같은 프랑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봉봉을 미워하는 만큼 반대급부로 프랑을 좋아해준다. 그리고 지켜준다. 그걸 노리고 프랑은 원래 몸의 주인인 봉봉을 사람들이 미워하게 만들었다. 없어져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고, 차라리 없어지길 바라게 만들었다.

 

엔딩부에 나오는 케이의 서술입니다. 진짜 봉봉이 되어버린 프랑이었던 무언가는 이제 한 사람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는’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읽으면서 모든 것이 신의 사탕이라는 운석의 영향을 받아 프랑이거나 프랑이었거나 프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대감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애정을 베풀게 만들어놓지 않았을까 생각했었어요. 조금 반대되면서도 얼추 다른 개념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지 않았나요(..) 흠흠. 어쨌거나 프랑이었던 사람이니까 새로 나타난 뒤통수 머리 프랑에게 친절한 것이고, 또 프랑의 숙주가 될 사람들이 프랑에게 호의와 사랑을 느껴야 이후에 뒤통수에 머리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을 편하게 내어줄 수 있을 테니까… 비약일까요? 작가님의 의도가 어떠한 방향이었건 간에 이 무조건적인 프랑을 향한 비이성적인 애정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흉이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원래 있던 사람을 모두가 미워하면서 자리를 바꾸는 것보다는 뒤통수의 머리여도 네가 좋다고 말하는 애정이 좀 더 괴괴했어요. 미워서 없애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없애는 쪽이 조금 더 취향이라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흠흠.

 

제목이 신의 사탕이고, 프랑들이 생겨난 이유가 분명 그 운석이겠지만 뒤에 가서야 살짝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고 존재감이 좀 미미한 편이라, 이보다는 좀 더 좋은 제목이 있을 수 있겠다고 약간 아쉬움을 표해봅니다. 주인공의 국적 불명 이름은 바꾸겠다고 하셨는데, 혹시 제목도? 하지만 다른 제목이 되면 또 다른 느낌일 것 같고, 제목이 바뀌면 막상 아쉬울 것도 같네요.

 

뒤통수에 얼굴이 나타나 이전의 나보다 좀 더 완전한 내가 된 수많은 프랑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케이가 제 자기 아닌 다른 자신은 좀 더 건강한 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자기 자신에게 100%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사람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언젠가 프랑들은 어느 한 구석이 부족한 자신에게 불만족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뒤통수에 나타날 자리는 없으니, 옆에 나타나나? 그런 미래보다는 모두의 뒤통수에 진짜 얼굴이 잠들게 되는 날이 좀 더 빠르게 올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사탕이 서울로 옮겨간다고 하니까요. 제 뒤통수에 나타나는 얼굴은 리뷰를 체계적으로 잘 썼으면 좋겠군요! 너무 구구절절 아무 말이니 여기까지 따라오느라 고역이셨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를 즐겁게 읽으셨다면, 본 글은 더욱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걸 먼저 보셨다면 재미가 반감된다는 아쉬움이 있겠습니다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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