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보면 널 보고 있으면 또. 공모(비평) 공모채택

대상작품: 내가 죽기 일주일 전 (작가: 서은채 사용안함,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9월, 조회 164

0.

눈 내리는 밤

 

나는 지금, 내리는 눈을 보고, 눈은 저를 쳐다보는 나를 보며 내리고 있네

 

눈은 처음엔 하염없는 영혼이었네, 저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지금 내리는 눈은 제 몸을 숨기며 내리고 있네, 육체를 가졌다는 것이 무슨 부끄러운 일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그렇게, 내리는 눈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네

 

고요히 음악만이 살아 있는 이 시간을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가끔씩 내가 이토록 고요히 살아 있는 시간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시간을 「눈 내리는 밤」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차가운 시간 위로 내려와 대지의 시린 살결을 덮어 주는 그대 따스한 숨결을 나는 지금 음악처럼 듣고 있네

 

세상의 후미진 곳에서 서 있는 겨울나무들은 이제 마지막 남은 손바닥을 내밀어 눈물로 젖어드는 하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있네, 이런 걸 참 무모한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눈 내리는 밤마다 나는 참으로 무모해지고만 싶은데

 

나는 지금, 내리는 눈을 보고, 눈은 저를 쳐다보는 나를 보며 내리고 있네

 

무모한 사랑을 확인이라도 하듯 우리는 지금 소리 없는 음악 소리를 내고 있네, 서로를 연주하는 마음이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더 깊은 이 시간, 눈에 젖은 나무들이 비로소 차분히 저희들의 기타 줄을 고르고 있는 이 눈 내리는 밤에

 

1.

벚꽃이 피는 계절의 일주일에 눈 내리는 밤을 들고 온 건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벚꽃은 밤에 봐야한다고 우기는 람우와 그의 말이 어디까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자는대로 따라가는 희완이가 (눈처럼 쏟아지는 – 내가 그러길 바라는) 벚꽃 나무 아래서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하나의 컷처럼 남아있기 때문이죠.

마트에서 시식코너를 도는 람우와 희완이, 영현이의 카메라에 찍힌 활짝 웃는 람우와 찡그린 희완이, 일출을 기다리며 나란히 앉아있는 람우와 희완이의 뒷모습, 놀이동산에서 서로에게 머리띠를 씌워주는 람우와 희완이,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다 입을 맞추는 람우와 희완이. 이런 컷들이 모두 엽서 속에 아니면 폴라로이드 속에 한 장 씩 남아 있을 것만 같아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겠지만요.

 

2.

 

저승사자는 가장 사랑하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온다고 합니다. 그런 괴담이 있대요.

자신의 삶에 부채감을 가지고 있던 20대의 희완이가 선택한 길은 안타깝게도 자살이었습니다. 너 대신 나였어야 했다는 죄책감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고만 있던 희완이는 어느날 자취방을 정리하고, 알바에 오늘까지만 나오겠다 설명하고, 학교에는 휴학계를 냅니다. 한달치 월세도 내고요. 얼마나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했는지 알겠네요. 그리고 책상 위에 곱게 올려져 있던 빈 종이는 여전히 빈 종이인 채로 내버려 두고 길을 나서는데요.

오늘 죽을 생각이라 죽을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에 사고가 나고 맙니다.

그리고, 한참 전에 죽은 네가 찾아오죠.

이제 장르는 로맨스에서 호러로 바뀌었습니다.

“김.. 나무?” 라고 소리내어 부르는 주인공에게 그거 내 이름 아니랬지, 하고 타박하면서요. 너는 일주일 뒤에 죽을 예정이니 편하게 죽고 싶다면 앞으로 두 번 더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합니다.

희완이는 기뻐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아서 히익!하고 놀랐던 저만 부끄럽게 됐네요.

 

3.

 

장르가 분명 로맨스에서 호러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들의 일주일을 들여다 보면요. 분명 죽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긴 한데 그 과정이 참으로, 퍽 즐거워보입니다. 이들의 어린시절 이야기, 람우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데 길을 잃지 않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누구나 흔히 생각해 봤을 법한 ‘죽음’과 ‘저승사자’와 내게 남은 시간을 알고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의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아프지 않은 잔잔한 로맨스를 쓸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 중간 쯤 어딘가에 호러로 빠질 줄 알았는데! 그러다 다시 로맨스로 돌아오지 않을까 했는데!

시종일관 담담한 분위기에요. 그래서 이들이 정말 일주일의 시간만이 있는 사람이 맞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들의 잔잔한 버킷리스트 지워가기를 보면서 오히려 마음 졸인건 독자 뿐인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채기가 막 나올 것처럼 간질간질하고 금을 넘을까 말까 하는 아슬아슬함이 있기 때문이죠.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나, 이런 걸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부족한 언어 실력에 대한 한탄을 자아내는 관계가 있어요.

희완의 아버지와 람우의 어머니는 옆집에 사는 각각 한 명의 자녀를 둔 한부모 가정입니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도 달라서 자연스럽게 람우의 어머니가 희완을 돌보고 희완의 아버지가 람우를 돌보는 관계로 발전하죠. 그러다 희완이가 람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을 때, 희완의 아버지도 람우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맙니다.

그러니까 희완이와 람우는 ‘너무 일찍 만났거나, 너무 늦게 만나버린’ 곧 남매가 될 사이인거죠. 희완이도 람우도 각자의 부와 모가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 둘 사이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마음은 포기 할 수 있는 슬프게도 착한 아이들이고요.

그런 사이에 있으니 손을 잡는 것도, 입을 맞추는 것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응원하게 되고. 그러면 어떠랴, 그래 슬프도록 착한 아이들에게 가혹하다는 감상만을 남기고 못본 척 해 줄 수 밖에요.

‘죽음’도 ‘저승사자’도 ‘시한부 인생’도 흔하고, 부모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남매가 되는 이야기도 흔하지만 모든 걸 다 넣고 비비니 이런 소설이 탄생하는 구나 싶어서 잠시 감탄 했습니다.

 

4.

 

이 소설의 본편은 5편이 다입니다. 이 것만 읽어도 내용의 줄기를 이해하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시리도록 투명한 두 명의 남녀가 죽음을 앞두고 누려보는 아주 작은 사치일 뿐입니다.

하지만 ‘남은 이야기’가 9편이나 되죠.

본 편이 흐릿하고 한꺼풀 덮혀 있는 안개 속의 이야기 같다면, 속편들은 명확합니다. 한 걸음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한 결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고 할까요.

친구, 결혼, 장례식, 저승사자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계속 이어져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똑떨어져서 저로서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열린 결말보다 확실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결말을 좋아하거든요.

캐릭터 하나 하나에 가진 애정이 잘 보이는 남은 이야기처럼 모두가 이야기 속에서 남은 이야기를 하고 살아갈 것이란 확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람우도 희완이도 일주일보다 더 길게 남은 이야기, 인주씨와 일범씨와 희람이의 이야기, 나름의 방식으로 인주씨를 응원 할 한호경씨와 희완이의 친구로 남을 고영현씨와 람우와 언젠가 만나게 될 혜성이와 …. 그 많은 사람들이 새로 써갈 이야기. 언젠가 차사가 된 람우가 그들을 지켜보는 이야기를 한 편 더 써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람우도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한호경씨가 참 특이하게 마음에 들어요. 감정 없고 기계적일 것 같은 사람이 인주씨에게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고 있는 부분이요. 위로 하려 들지도 않고 말이죠. 여자만이 이해 할 수 있는 그런 보이지 않는 위안을 주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5.

작가님이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결말이 독자가 생각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결말이었다는 말을 전합니다. 희완이가 학창 시절에도 람우와 조금만 더 살갑게 지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희완이가 그런 성격이었다면 아마 람우가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을 이끌어내는게 더 힘들었겠죠.

희완이는 누구에게도 빚을 지고 싶지 않아하는 성격이라는 일관성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람우가 “나를 두 번 죽일 셈이야?” 라고 하자마자 람우의 이름을 불렀죠. 실은 그것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람우에게 받은 남은 생을 조금 더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좋겠습니다. 희람이도 잘 돌보면서요. 끝까지 부채감을 남기지 않으려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 람우가 안쓰럽지만 생과 사의 길은 다른거니까요. 제가 람우에게 고맙고 미안하네요.

깊이 따뜻해 지는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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