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섬이라는 ‘르뽀’를 읽은 아귀섬의 태훈이 편집자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왔다.
그 전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태훈입니다.
다들 이 ‘르뽀’를 읽으시면 느끼실듯 하지만, 아귀섬은 365일 지독한 안개가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죠. 기자님은 미치 우리 섬 주민이라도 되시는지, 섬의 공기를 그려낸 방식은 정말이지 날카롭습니다. 제가 이 섬에서 자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이 르뽀 속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걸 보니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립니다.
무엇보다 이 ‘르뽀’의 가장 큰 장점은 화려한 수식 없이도 심장을 서늘하게 만드다는 건데요. 그 투박하고도 질긴 감정들을 하나도 놓치 않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제 손을 꼭 잡고 “우리 태훈이…. 불쌍한 것.. 미안하다..” 라고 중얼거린 대목을 읽고 있으니, 다시 그 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라 울먹해지네요. “여기서 키우는 게 아니었는데…”라며 한탄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 섬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족쇄이자 삶의 터전이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기자님의 꾸밈없는 문구를 읽고 있자니, 미화되지 않은 우리네 삶의 냄새가 문장마다 배어 있어서, 읽는 내내 제가 살아온 시간들이 증명받는 기분이 들었달까요? 제가 매일 아침 마주하는 그 답답하고 축축한 공기가 방 안까지 밀려드는 기분이 들더군요. 우리 섬의 비릿한 삶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진솔함에 마치 저의 옷이 강제로 벗겨지는 듯 느껴졌지요.
특히 사람 사이의 그 묘하고도 무거운 감정을 포착해내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우리가족이 서로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지독한 애증과 유대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지점들이 마치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신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개가 너무 짙으면 앞이 잘 보이지 않듯, 우리 이야기가 가진 묵직한 호흡은 누군가에게는 조금 고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저희 아귀섬이 사실 작기도 작거니와 우리 가족의 부정적인 감정 속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빠른 전개나 명쾌한 반전을 기대하는 분들에겐 자칫 지루하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셨을지도 모르겠군요. 감정의 농도가 너무 짙어서 마치 우리 섬의 안개같다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르뽀는 우리처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묘한 위로를 줍니다. 비록 안개는 가시지 않아도, 그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려는 그 처절한 몸부림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우리 섬의 안개만큼이나 제 인생을 자욱하게 덮고 있는 건, 바로 ‘엄마’라고 불러야 할 세 여자의 그림자입니다. 누군가는 어머니가 한 명뿐이라 그 소중함이 애틋하다지만, 제게는 그 호칭이 세 갈래로 찢겨 기괴한 흉터처럼 남아있거든요.
저를 낳아준 이모, 아니 제 생모를 생각하면 묘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저를 버리고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났지만, 그래도 덕분에 할머니 밑에서 사랑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아이러니하게 그녀 덕이죠. 그녀는 제가 사실을 모른다고 생각할까요? 크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보다는 이모를 닮은 제 모습과 저를 바라보는 이모의 눈빛에서 제가 눈치챘으나, 아귀같은 섬에서 자란 제가 저의 감정을 숨기는데 도가 트였다는 걸 그녀는 가끔 잊나봅니다.
저를 거두어준 어미니와, 저를 사람 구실하게 길러준 할머니는 제게 구원이자 동시에 거대한 짐이었죠. 말로는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끝내 직접 제 손으로 할머니를 먼곳으로 모셔야 했던 저에겐 끝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할 수 밖에 없던 족쇄이기도 했으니까요.
저를 둘러싼 이 비극의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신가요? 글쎄요.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죠. 아귀섬은 그런 곳이고, 너무도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이 곳에서 자란 저에게 제 비극 조차도 일상처럼 느껴진다면 믿어지실까 모르겠네요.
저와 저의 가족들의 비극사가 궁금하시다면, 부디 각오를 하고 아귀섬으로 들어오세요.
제가 느꼈던 그 축축한 배신감과 뜨거운 살의를 여러분도 똑같이 느끼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