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가상현실, 영원한 행복을 다룬 작품은 여럿 있었다. 매트릭스, 나루토 등등…
다만 이런 작품들은 가상현실을 관리하는 존재가 현실 속 인간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등 알고 보면 불편한 내막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현실을 살아가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된다.
그런데 달의 아이들은 좀 다르다.
만약 마리야 타라소바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내 육신은 사실상 영구히, 그리고 완벽히 보존된다.
그리고 나는 가상현실 속에서 내가 원하는 행복을 원하는 만큼, 원하는 기간 동안 누릴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신이 될 수도 있다.
현실처럼 변칙적인 불행을 중간중간 섞어서 행복의 기쁨을 더 증폭시킬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함께할 수도 있다.
아마 내가 있을 가상현실에 대한 배경설정은 그때그때 맘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도 있고, 만약 가상인걸 깨달은 충격이 너무 크거나 모든게 질렸다면 삶을 포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내막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본편의 설명만 놓고 본다면 이 가상현실은 데우스가 부르는 것처럼 ‘천국’ 그 자체다.
작가는 대신 ‘과정’, 즉 윤리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음을 밝힌다.
이 가상현실을 맛보려면 내가 이해하기론 두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알파인의 수준이나 붉은 눈의 개입을 따져본다면 전쟁이 그리 질질 끌릴 것 같지는 않다.
다음으로 가상현실을 수용해야 한다.
가상현실을 거부하면 데우스에 의해 죽는다. 그게 끝이다.
거부한 인원을 살려두지 않으려는 데우스의 의도는 이해가 간다.
매트릭스 시리즈처럼, 데우스의 시스템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단 하나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는 것이 그들 입장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이는 신생아처럼 데우스의 계획을 이해하는게 불가능한 존재들까지도 제거해야 한다는걸 의미하며, 이런 절차들을 거쳐 인구수는 크게 줄어든다.
분명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과정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난 그들이 제공하는 영원한 행복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이 나돈 적이 있다.
당신의 앞에는 귀여운 강아지가 있고, 이 강아지를 밟아 죽이면 100억이나 그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아지를 밟아 죽이는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100억을 준다면 강아지 위에서 탭댄스라도 추겠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
놀랍지 않은 일이다. 100억이면 생각없이 쓰지 않는 이상 평생을 먹고살수 있는 돈이니까.
사실 100억이 아니라 천만원이어도 그걸 실행하겠다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하고 진짜로 강아지를 갖다놓으면 실행 못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게 현실이다.
개인적으로 강아지를 좋아하는만큼 나라면 죽일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막상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온다면 진지하게 고민해보긴 할것 같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그런데 하물며 데우스가 제공하는건 영원한 행복이다. 방공호에서 버티든 산에서 땅굴을 파든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된다.
그리고 가상현실 시스템을 수용하면 그들은 차별없이 영원한 행복을 안겨준다. 이거 역시 내가 이해하기론 그렇다.
만약 그 기술을 알파인만이 구현할 수 있는거라면, 나는 솔직히 데우스의 계획이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가상현실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학살한다든지 그런일에 동참하진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만큼 ‘원하는 삶을 무한대로 구현하는 시스템’이란 100억, 아니 1조원마저 보잘것없어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달콤한 보상이다. 특히 나는 내세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낀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대며 영생, 영원한 행복을 비판한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들을 진실로 원한다.
그래서 나는 마리야를 내심 응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는 어느 쪽이 나쁘다고 딱 잘라 말하려 하기보단, 한발짝 물러서서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려는듯 보인다.
그리고 나는 마리야가 그리는 이상향에 끌리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마리야를 토론할 가치도 없는 미친 악역으로 여기는 반면, 나는 그녀를 막으려는 김하늘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이 글을 보고 누군가 날 개X끼라고 욕한다면 할말이 없다. 윤리를 무시한 거나 다름없는 입장이니까. 변명이나 반박같은 건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의 무게란 크다. 어쩌면 우리가 평상시 인식하는 것보다 휠씬 더.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인만큼 누군가에겐 데우스의 가상현실이 유일한 구원이자 진정한 천국일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김하늘과 주변인물들이 비정상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마리야의 회유를 뿌리치고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막으려는 김하늘의 행동은 지극히 타당하다.
김우진이 말미에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오진 않았지만, 그가 김하늘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가상현실을 포기한 것도 이해가 된다.
이하나를 만나기 위해 가상현실에 집착했던 김태성이 그 집착을 포기한 것 또한 이해가 된다.
그들과는 별개로, 현실에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또다시 갈등하게 된다. 만약 소설 같은 상황이 현실로 닥친다면, 난 정말로 마리야 측을 따를까?
양심을 버린다면 모든걸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전에서 양심을 버리는걸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지금이야 소설 속 허구의 얘기라 쉽게쉽게 말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미래에 현실로 닥친다면 난 양심의 기로에 선 채 수백수천번을 갈등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으로썬 마리야 측이 더 끌린다는걸 부정할 순 없다. 이게 가식을 전부 덜어낸 나의 소신이다.
양심을 지키고 거대한 세력에게 대항해 목숨을 내버릴 것인가.
아니면 양심을 내버리고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인가.
머나먼 미래, 소설이 현실이 된다면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망설임없이 선택하든지, 아니면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할 것이다.
그리고 AI 로봇은 우리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카프처럼 말하겠지.
‘다들 참 인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