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함을 넘어서면 비평

대상작품: 문장부호 (작가: 나개사이코임,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7월, 조회 52

내가 이상을 처음 본 게 언제였을까. 아마도 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문학 시간에 교과서 지문으로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교과서에는 오감도 시리즈의 몇 작품이 실려 있었는데,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과 잘 설계된 건축물을 볼 때 종종 느낄 수 있는 깔끔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내가 (취미로) 쓰던 시의 분위기도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다. 한용운 선생처럼 여성적이고 서정적인 시를 쓰다가, 기계적이고 난해한 시를 쓰게 되었다.

그 때의 느낌을 이 엽편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가만 읽어보면 이 엽편은 무의미하다. 비난이나 힐난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하다. 내게 이 엽편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리뷰를 쓰는 까닭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그냥 단순히 재미있다. 짧아서 그렇고 아무말이라서 더 그렇기는 하지만 술술 읽고 있으면 묘하게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나는 꾸미지 않은 글이 좋다. 그리고 이 글은 꾸미지도 과장되어있지도 않아. 순수하게 작가 본인의 말투로 쓰여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로는 실험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이 일정한 형식을 지켜가며 쓰여지는 문예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에는 일정한 형식이라는 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최근의 소설은 형식적인 면에서 그렇게 파격적이지 못하다. 이렇게 파격적인 작품을 브릿ㅉ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내용이 대단히 모순적인데도 그것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읽다보면 ‘마침표가 없으면 글이 끝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독자에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이 작품은 마침표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런 문장부호를 남기지 않고 작품은 끝을 맺는다. 이것은 정말 끝난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렇게 모순적이라는 것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알지 못했다. 이번에 문득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니 그제야 마침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멋지다

 

본문 자체는 크게 의미가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의미함을 넘어서 본 작품은 의미를 갖는다.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작품 내에서의 의미 말고 작품 바깥에서 형성되는 의미에 집중해야 하는 작품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의미를 재미있게 읽었다. 여러분에게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런데 작품 시작에 #을 넣어둔 것은 어째서일까. #은 부호긴 부혼데 문장부호라고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암호학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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