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에 간신히 서울에 집을 마련했는데 그 집에 귀신이 나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밸런스 게임의 소재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귀신 나오는 서울집’ VS ‘거미 나오는 시골집’ 같은 구도로 말이에요. 이런 구도에는 어딘가 대단히 한국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 ‘최재아’ 캐릭터는 그런 한국적 현실의 뉘앙스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요. 재아는 대출받아 어렵사리 구한 집을 차마 포기할 수 없어 귀신과 동거하는 길을 택합니다.
장난스러울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꽤 무게감이 있는 미스터리 로맨스입니다. 교제 살인과 데이트 폭력, 스토킹 범죄 등에 대한 문제의식도 보이고요. 저는 32회, ‘소문(2)’까지 읽었는데, 아마도 이런 문제의식은 이후에 점점 짙어져 갈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는 대체로 옳게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현실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특유의 재치 있는 문장에 담아 드러내고 있지요.
재아는 이사 온 첫날부터 귀신과 마주합니다. 귀신의 이름은 ‘김아린’, 나이는 스물한 살입니다. 아마 죽었을 때 나이겠죠. 재아는 이름과 나이 말고는 스스로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린을 보며 점차 연민과 호기심을 느낍니다. 알고 보니 아린은 착하고 착실해서, 귀신이라는 점만 빼면 동거 상대로 나쁘지 않습니다. 재아는 아린이 성불할 때까지만 함께 지내기로 마음먹습니다.
단선적인 스토리라인의 강점을 잘 살린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재아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내러티브의 축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고요. 그중 하나는 아린이 죽은 원인을 추리하는 미스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재아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 새로 온 본부장 ‘유민훈’과의 로맨스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미스터리와 로맨스의 조합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있냐는 점일 텐데, 아직까지는 둘 사이 균형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지요. 독자는 이 작품에서 미스터리와 로맨스의 흥미진진한 줄다리기를 보게 됩니다.
아린을 만난 뒤 재아에겐 귀신이나 저승사자, 요괴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재아는 민훈에게 달린 여우의 꼬리를 보게 되지요. 항상 보이는 건 아니지만 가끔 봐도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쩌면 로맨스의 진전을 알리는 가시적인 징후일까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민훈이 재아에게 업무 외적으로 남다른 관심을 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전 이게 좀 걸려요.
재아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신입사원 네 명을 채용했습니다. 그중 한 명인 윤철은 입사 직후부터 사내 여직원들에게 사적으로 접근했다가 인사팀으로부터 지적을 받게 돼요. 그건 충분히 납득이 되는데, 문제는 민훈 역시 윤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재아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이야기가 보여주는 구도에 따르면 윤철은 한심한 찌질이이고 민훈은 백마 탄 왕자님인데, 두 사람이 정말 그 정도로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아린을 축으로 하는 미스터리와 민훈을 축으로 하는 로맨스가 곧 재아를 중심으로 극적인 케미를 보여줄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대중적인 클리셰의 비중이 지금보다 낮아져야 작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단선적인 스토리라인이 갖는 몰입감이 생각보다 강력해서 읽는 내내 웹툰이나 드라마로 나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인물 간 관계 구도도 지금보다 더 복잡하게 전개되어야 할 것 같고요. 여러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