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능일 것이다. 정을 준 존재와의 이별은 가슴을 저미고, 그러한 슬픔-혹은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마찬가지일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수아는. 그들이 가버리는 게 두려웠다. 성장하는 게 두려웠다.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그들이 변하는 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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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다는 것은 곧 변화한다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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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해서 내 곁에서 멀어지려는 것을 어떻게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언가가 성장해서…나와 같은 것을 더 이상 공유하지 않게 되는 것을.
어떻게 좋아하는 것인가.
이 작품의 주인공, 수아도 다를 것 없는 존재다. 다만 그녀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은 마음 등이 뭉쳐 마음 속의 어떤 단단한 응어리를 만들어낸듯 하다. 응어리는 커지고 커져, 그녀로 하여금 주변인들의 ‘성장’마저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필요했던 어릴 적, 그의 부재에 대한 변명으로 인해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비틀려 주변인의 발전마저 가로막고 싶은 마음이 된 것.
그래서 수아는, 차라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렁뱅이가 되어 그녀에게 기어오길 바라기도 했었다. 그것이 그녀의 것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재앙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좋았다. 굳이 동등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수아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다만 곁에 영원히 있길 바랬다. 굳이 나를 만족시켜줄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배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영원은 없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도 부르짖는 사랑도, 사람도. 하지만 이 여린 아이는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저들에게 이만큼 해줬으니, 저들도 내게 이만큼 해줘야 한다. 는 치기어린 어린 생각으로 꿈을 찾아 성장하는 이들을 모조리 배신자로 만들어버린다.
빛 뒤편에 홀로 남을 사랑. 빛은 무엇이고, 홀로 남을 사랑은 무엇이란 말인가. 수아의 관점에서 보자면, 빛은 그들이 나아갈 찬란한 미래, 그리고 홀로 남을 사랑은 자신이 남긴 미련일 터였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녀는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원히 같이 있지 못한다면, 차라리 당장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그녀. 이러한 생각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면 영영 혼자라고 느끼며 쓸쓸히 눈을 감지나 않을지 걱정마저 된다.
그녀는 그 똑똑한 머리로 생각한다. 언제나 그녀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인간을 스스로의 것으로 붙들어 놓는 것은 허황된 생각일 뿐이라고. 그러나 수아는 미련의 끝자락을 놓지 못한다. 두려운 게다. 변화하며, 성장하며 멀어진다는 게. 과연 이것이 이 어린 주인공만이 겪는 단순한 사춘기의 고민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인간이 갖고 있는 이별에의 공포는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가장 큰 것을 꼽자면, 그건 바로 죽음일 터였다. 죽음은 무엇인가? 더 이상 나와 교감하지 못한다는 것. 교감할 수 있던 상대와 더 이상 교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이별을 말한다. 사회에서든, 이 생에서든. 여기서 우리는 사람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라는 고리타분한 문장을 떠올리게된다. 수아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 깊이 빠져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로부터 멀어지지 않을, 이별하지 않을 그 한 사람만 있더라도, 이렇게 무서워하진 않을 텐데.
이 세상에 온전한 내 것이 없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차가워지고야 맘은 대체 어떤 연유에서 시작된 것인가. 내가 마주한 것들은 이제껏 사랑에 대한 책임 없이, 인사도 없이 떠나간 것뿐인데도 왜 이렇게 이별 하나하나가 서러운 건지 모르겠다.
이것이야말로, 책임 없는 것에 책임을 부여하여 마음 속에 붙든 대가인가?
이러한 문장들로 봤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수아가 받아들이는 이별의 크기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멀어진다는 것보다는 죽음으로 인한 멀어짐 정도인 듯 하다. “이젠 쫓아가지도 못하게 자신이 결코 가지 못하는 방향들로만 사라지는지, 어째서 기막히게도 그 쪽으로만 성장하는지, 어째서 그 쪽만 사랑해서 자신을 버리고 가는지. 정말 한 번도 그녀가 바라는 대로 성장한 적이 없는” 주변인 때문에, 라고 되뇌이며 다시금 홀로 남겨진다는 서술로서 이 작품은 끝이 난다.
어쩌면 과하고, 어쩌면 생각해볼 거리가 많은 작품이지만 역시 가장 크게 남겨진 건 수아의 쓸쓸함이었다. 그녀의 쓸쓸함은 창이 되어, 주변인을 찌르고 자신마저 찔러 기어이 피를 본다. 살아가는 데 수많은 이별을 할 것임에도. 뒤틀린 소유욕으로 무장한 그녀는 더 이상 같은 것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생각, 더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너무 여려 상처를 입고야 만다.
성장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뒤에 홀로 남겨졌다 자조하는 그녀 또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