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래 작가의 <거인>은 일단 꽤 재밌는 소설입니다. 집에서 모임을 하기로 한 상태에서 집으로 들어오자 갑자기 거인이 나타납니다. 거인과 주인공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은 딱히 그 의미를 생각하려 들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의문은 남습니다. 왜 주인공은 (실수라고 서술되지만) 현관문으로 바로 뛰쳐나가지 않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을까요? 왜 경찰을 부르지 않고 친구들에게 연락했을까요? 정작 자기가 오라고 한 친구에게 왜 또다시 나가라고 소리를 친 걸까요? 주인공의 행동은, 거의 일부러라고 해야 할 정도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호러 주인공 클리셰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영 재미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작품은 집 안에서 시작해 집 안에서 끝나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친구들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서술되지 않습니다. 청각정보만이 친구가 들어왔다는 걸 알려주는데, 사실 환청이라고 해도 별 이상할 것은 없죠.
또 생각해보면 의문은 계속해서 튀어나옵니다. 친구들과 하기로 한 내키지 않는 ‘모임’은 무엇일까요? 그게 무엇이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걸까요? 왜 거인의 얼굴은 주인공과 같은 걸까요? 결국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인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저는 ‘마음의 준비’에서 그 정체를 추측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열기로 결정하고, 그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의 방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그곳에서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거대하고 파괴적인 측면을 발견한 겁니다. 그렇다면 도망치지 못하는 것도, 경찰에게 연락하지 못하는 것도 설명이 되죠. 자신의 마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며 자신의 야만적인 면을 외부에 알린다는 건 더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친구요? 청각 정보만 제공되고,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로 발견된다는 점에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아 보이네요.
여기서 문제는 또다시 외부로 넘어갑니다. 그 모임은 대체 어떤 모임이기에 주인공이 결국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다 때려치우자는 결론을 내게 만들었을까요? 여기서부터는 극중에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 영역이기에 말하기가 힘들어 보이네요. 크툴루 소환식이라도 하려던 걸까요?
물론 이런 의문점 같은 건 사실 극적인 전개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고 사실 이런 것에 의미 같은 건 조금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없어도 훌륭한 소설이고요. 하지만 재밌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