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는 잠들지 않는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백야百夜 (작가: 시베리아햄스터, 작품정보)
리뷰어: , 20년 12월, 조회 135

모든 리뷰어의 꿈까진 아닐지 몰라도 어떤 리뷰어들의 꿈이긴 할 것이다. 완성도에 반해 이상하게도 조명받지 못한 작품을 내가! 발견해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얼마나 짜릿하겠는가. 필자는 잠시 그렇게 어리석고 허황한 꿈을 꾸었다. ‘어리석고 허황한’이란 표현을 쓴 건 필자의 심보가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작품에 흠이 있단 소리는 아니다. 그러니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한다. 필자는 이 작가의 글에 첫 리뷰를 쓰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니까. (이 시점에선 아직 나머지 세 작품은 안 읽어봤지만, 곧 읽을 예정이다. 많은 기대를 품고.)

이야기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변주다. 근대 무렵의 한국풍이다. 귀신을 보는 딸아이를 애지중지한 아버지는 세 요정 대신 십자가를 쥔 사람, 고승, 무당을 모셔온다. 딸이 귀신을 보지 못 하도록 눈을 가리우기 위함이다. 과연 한 겹, 한 겹 가리자 보이던 것들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미처 세 겹으로 눈을 가리기 전에, 마녀 대신 광인 하나가 찾아와 저주를 퍼붓는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

감히 평가하자면, 글을 잘 쓰는 작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묘사가, 이야기가 아름다웠다. 특히 하얀 누에실이 마을 전체를 뒤덮은 묘사는 마치 희고 거대한 서커스 천막이 마을을 삼킨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현세와 고작 실낱 한 올만큼 위태로이 이어진 ‘또 다른 세계’를 연출하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샛길을 통해 그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작가의 실력은 가히 굉장하다 할 만 하다. 작두 옆 발목 잘린 해골의 연출은 또 어떻고. (필자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독자를 만족시키는 데에 반드시 예상치 못한 전개가 등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익히 알려진 옛이야기의 변주다. (혹시나 걱정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왕자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짐작이 독서를 끝장내버리지는 않는다.

반 고흐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에 갔다고 치자. 우리는 화가의 삶의 시작과 굴곡, 그리고 끝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캔버스를 – 물론 모든 작품에 다 집중하진 않더라도 – 들여다보지 않는가.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은 환자가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듯이 말이다. 재밌는 작품에는 그런 마취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재미있다.

 

P.S. 제목의 백야에서 백은 흰 백이 아니라 일백 백이다. 백 날의 밤일까, 백 명의 밤이라는 뜻일까, 아니면 백 마리의 누에가 자아낸 밤이라는 뜻일까? 어느 쪽이든, 본문에 퍽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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