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부류의 인간들이 종교에 매달리며 맹신하고 심지어 사람을 해치거나 자살 테러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제삼자들 입장에선 이해가 잘 가지 않고 어쩌다 사람이 저렇게 되었는가 의문만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외국에서처럼 종교에 미친 인간들이 폭탄테러를 벌이는 경우는 우리나라에 아직 없다지만 종교에 지나치게 빠진 사람들이 가산을 탕진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시위를 벌이거나 하는 일은 제법 있는 것으로 보여요.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사건들 중에는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들이 벌인 범죄도 빠지지 않는데, 사람들 맘 편하라고 믿는 종교가 도리어 사람을 해치는 도구가 되는 것은 언제든 거부감과 공포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어쩌면 그렇게 종교에 심취하여 광기어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다가 종교에 빠져 저렇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 소설 <헤븐>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인물들도 광기어린 신앙에 빠져 자식들을 죽이고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목사 부부입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종교 삽회를 의뢰받은 – 그러나 내용의 문제로 거절한 – 주인공은 선배의 생일 파티 별장을 찾아가다가 그 목사 부부가 사는 별장에 들어서게 되지요.
하지만 목사 부부의 삽화 의뢰를 거절한 것도 3년 전이며 이미 도입부에 목사가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살해하는 장면이 버젓이 나와있기에 주인공과 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어쩔 수 없이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마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하기 쉬운 예측은 유령이 된 목사 가족과 주인공이 악연처럼 다시 만났다는 거였죠.
목사 가족의 기이한 행동이나 비가 내리는 별장의 음울한 분위기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불길함을 안겨줍니다. 그리고 목사가 이상할 정도로 주인공한테 의뢰 집착을 보였다는 점도 꺼림칙하기 그지 없었고요. 처음엔 목사가 자기 의뢰를 거절한 주인공에게 앙심을 품어 유령으로까지 나타나 해코지를 하려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좀 더 예상을 벗어나는데, 어쩌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과거 시점에 존재하는 목사 가족의 별장에 들어서게 된 것은 거기서 애꿎게 희생당할 어린 아기를 구하기 위해서였던 건지도 모릅니다. 어린 아이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서 주인공을 이용해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하여 시간을 틀고 미래를 바꾼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여기서 목사와 대비되는 존재는 아이를 구해내게 되는 주인공이 아니라 시간을 틀어버리면서까지 희생될 뻔한 어린 아이를 구하려고 개입한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소설 속 목사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비추며 가족들 상대로 살인을 자행하고 그것이 자신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오히려 소설 속에서 직접 드러나지 않는 초자연적인 무언가는 그 목사의 믿음에 반대되게 그에게 희생당할 뻔한 아기를 주인공 손으로 구해내게 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해주었다는 겁니다.
제목의 ‘헤븐’과 같은 삶은 오히려 아기가 살아나면서 얻게 되었고, 목사의 자의적이고 그릇된 해석 끝에는 파멸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초자연마저 개입해야 했을 정도로 더 끔찍한 것은 인간의 광기와 그 광기를 떠받치는 왜곡된 믿음이라는 걸 소설이 보여준다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