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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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태는 기도실을 나왔다. 욕실로 가서 몸을 씻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었다. 준비해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처음 본 사람을 마주할 때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구석구석 관찰했다. 살빛은 한층 밝아졌고 눈빛은 생기에 차 있었다.

곧장 두 아들이 잠든 방으로 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이들이 걷어차 낸 홑이불이 침대 끝자락에 돌돌 말려 있었다. 이부자락을 끌어와 덮어준 뒤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석태는 무언가에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큰 아들, 지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마에 멈춰 있던 손은 낮은 콧등을 지나, 살짝 벌어진 입술로 옮겨졌다. 뜨뜻한 입김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잠시 숨을 고르고 빈약한 아래턱을 쓸어내듯 만졌다.

“이제 가자.”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아들, 지호의 목에 손을 가져갔다. 지호는 피부에 와 닿는 수상한 느낌 때문에 몸을 뒤척이며 뭐라고 툴툴거렸다.

석태는 나지막이 자장가를 불렀다. 한 소절 한 소절,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며 두 손으로 아들의 목을 감싼 뒤 꾹 눌렀다.

*

두 아들의 시신을 검은 비닐로 둘둘 말았다. 나일론 밧줄로 사지를 옭아매고 풀릴 염려가 있는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포장도, 매듭도 모두 완벽했다. 그제야 어깨가 빠지기라도 한 듯, 두 팔이 축 늘어졌다.

우르르 콰앙―

번개가 마른하늘을 찢어발겼다. 전등불이 깜빡거렸고 몇 차례 꺼지고 켜지길 반복하더니 완전하게 꺼졌다. 석태는 불이 다시 켜지길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아찔한 섬광뿐이었다.

나직한 발소리가 부엌에서 거실로, 2층 아이들의 방으로 이어졌다. 문이 열렸고 촛불을 든 순애가 석태를 불렀다.

“여보. 정전이……”

순애는 어두컴컴한 바닥에 놓인 길쭉한 검은 비닐을 보자 얼굴이 새파래졌다. 석태는 아내의 그런 표정이 못마땅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그리 놀라?”

순애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영이도?”

“아직.”

석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막내아이가 잠든 방으로 걸어갔다. 순애는 그 뒤를 따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보. 저 아이들부터 먼저 보내주죠.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석태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일이 어떻게 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밖에 비가 저렇게 내리는데 저수지에 갈 수나 있겠어요?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려면 당신 혼자 힘들잖아요.”

*

석태는 빗속을 뚫고 창고로 달려갔다. 우비를 챙겨 입고 랜턴이 부착된 모자를 썼다. 두 아들의 시체를 수레에 싣고 곧장 저수지로 향했다. 저수지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와 좁은 숲길이 있다. 저수지는 수위가 깊고 산새가 험한데다 근방에는 인가가 없어 숲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숲길로 들어서자마자 랜턴 스위치를 켰다. 곧은 불빛이 어둠을 갈랐다. 비바람을 헤치며 묵묵히 수레를 끌었다. 수레는 돌부리에 덜컹거리면서도 거침없이 나아갔다. 저수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자동차 한 대가 헤드라이트를 켠 채 경사진 바위벽 위, 비포장도로에 정차해 있었다.

랜턴을 끄고 잠시 동태를 살폈다가 움직임이 없자 다시 수레를 끌었다. 비릿한 물 냄새가 풍겨올 때쯤 속도를 줄였다. 미리 봐둔 자리를 찾아야 했다. 랜턴을 켜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움직이는 거라고는 수초처럼 몸을 흔드는 벚나무와 버드나무뿐이었다.

*

석태는 새벽 1시가 조금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랜턴을 켜고 부엌으로 가서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나자, 허기를 느꼈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쓰레기통을 뒤졌다. 핫케이크 반 토막이 잔반 아래에 구겨져 있었다. 잔반을 털어낸 뒤, 푹 젖은 케이크를 입에 넣고 2층으로 올라갔다.

순애는 딸아이 옆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지만 자는 것은 아니었다. 석태는 괜히 신경질이 났고 처음으로 이 계획의 불공평성을 의심했다.

아내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그저 자신의 희생으로 얻어낸 천국행 열차에 안전하게 승차하는 것뿐이니까.

“일어나. 갈 채비해야지.”

두 사람은 기도실에서 기도를 올린 뒤 집을 나왔다. 순애는 딸아이를 품에 안고 남편의 뒤를 따라, 빗속을 걸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걷던 발길은 어느새 질퍽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물비린내가 풍길 때쯤, 앞서 가던 석태가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두 팔을 벌렸다. ‘하영이 이리 줘.’ 순애는 포대기를 바짝 끌어안았다. 석태는 포대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순서를 달리 할 필요가 있었다.

“당신 먼저 보내줄게.”

석태는 포대기를 나무 아래 내려놓고 비닐로 덮었다. 순애는 겁은 잔뜩 집어먹은 표정으로 한걸음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석태는 어이가 없었다.

순애는 누구보다도 믿음이 강한 여자였다. 지독한 믿음은 신도들에게조차 외면을 받았고 그로 인해 개척교회로 눈을 돌렸다. 버려진 농가에 교회를 세우고 전도에 열을 올렸지만 그마저도 녹록하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믿음이 없는 무지한 인간들을 위해 기도했고 모두가 구원받길 소망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불신과 경멸, 신을 향한 모독이었다. 순애는 믿음이 없는 자를 경멸했고 신의 품으로 가게 해달라고 거의 매일 통곡했다.

“천국에 가고 싶어 했잖아. 뭐가 문제야?”

석태가 다그치자 순애가 울음을 터뜨렸다.

“무서워……”

“뭐가 무섭다는 거야?”

“……죽는 거.”

순애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말하더니 별안간 석태의 우비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여보, 나, 살고 싶어.”

석태는 죽음 앞에서 비굴해진 아내를 보자 배신감과 살의를 동시에 느꼈다.

밧줄을 꽉 움켜쥐었다. 더 이상 찍소리도 못하게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지호, 지훈이는 어쩌고?”

“신이 용서할 거야. 당신이 한 짓을 용서할 거라고.”

“내가 한 짓?”

석태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순애가 재빨리 말을 바꿨다.

“내 말은…… 당신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천국에 갔다고. 당신은 우리 가족의 구원자야. 그렇지만……”

석태는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천천히 뒤돌아서서 짙은 어둠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묵묵히 신의 계시를 기다렸다. 비바람에 우비자락이 펄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멀어져, 멀어져 거의 사라졌을 때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석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지호니?”

“아빠, 나 여기 있어!”

가슴이 벅차올라 입도 벙끗할 수 없었다.

물위로 떨어진 잉크방울이 사방으로 퍼지듯 지호의 모습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눈부신 황금빛 날개를 펄럭이며 짙은 어둠에 둥둥 떠 있었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금빛 깃털이 떨어져 나와, 완벽한 곡선을 그리며 석태의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꿈에서만 보았던 천사의 모습과 똑같았다. 석태는 아, 하고 탄성 내지르며 어깨 위로 떨어진 깃털 하나를 냉큼 집어, 보란 듯이 흔들었다.

“이거 보여? 이거 보이냐고!”

순애는 눈가의 빗물을 손등으로 허겁지겁 닦아냈다. 눈을 크게 뜨고 남편의 손가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 보여…….’ 순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석태는 끙, 하고 신음했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믿음과 신념이 흔들린 탓이라며 순애를 꾸짖었다.

“우리는 가야 돼!”

석태는 순애의 어깨를 붙잡았고 흔들었다. 순애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치켜뜨고 소리를 질렀다.

“난 지호가 안 보인다고! 안 보이는데 어쩌란 말이야!”

석태는 주먹으로 순애의 얼굴을 호되게 후려쳤다. 널브러진 순애의 몸뚱이 위로 올라타, 웅덩이에 반쯤 처박힌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망할 년! 천국이 눈앞에 있는데 이제 와서 딴소리야!”

*

석태는 아내와 딸아이의 시체를 한데 묶어 비닐로 꽁꽁 싸맨 뒤 나일론 밧줄로 목과 가슴 언저리, 다리와 발목을 차례로 칭칭 감았다. 시체를 돌덩어리에 감아둔 사슬에 엮고 주먹만 한 자물쇠를 채웠다.

거룻배에 시체를 옮긴 뒤 남은 쇠사슬과 밧줄을 가지고 배에 올라탔다. 랜턴을 켜고 천천히 노를 저었다. 멀고도 험한 여정이 곧 끝난다는 사실에 노를 젓는 두 팔에 힘이 넘쳐났다.

두 아들을 수장한 위치를 찾아냈을 때쯤, 어깨너머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를 젓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굵은 빗줄기가 검은 비닐을 때리고 있었다.

투투툭 투투툭

석태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시 둥글게 노를 저었다. 또 들린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비닐이 사지가 잘린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죽음을 거부하는 순애를 짓뭉개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노를 쳐들고 꿈틀대는 검은 비닐로 내리쳤다.

퍽.

‘아앙……마아아……’

몸을 비틀고, 울부짖는 것은 순애가 아니라, 돌배기 딸이었다. 석태는 깜짝 놀라 숨을 멈췄지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에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돌배기 딸에게 불같은 분노를 느꼈다. 망할 년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노를 그러쥐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끝장을 내겠다는 각오로 하늘 높이 노를 쳐들고 힘껏 내리쳤다.

퍽.

노 자루는 두 동강이 났고, 노깃은 검은 비닐에 깊게 꽂혔다. 다시 노 자루를 쥔 손을 번쩍 쳐들었을 때 거룻배가 좌우로 넘실거렸다. 후, 하고 숨만 내뱉어도 배가 뒤집힐 것 같았다.

부서진 노 자루를 내팽개치고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요동치던 선체가 잠잠해졌다. 조심스럽게 상체를 세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시체에 꽂힌 노 자루를 잡아 뺀 뒤, 휙 던졌다.

“이제 거의 다 됐어. 다 됐다고.”

석태는 자신의 두 다리를 8자로 꽉 묶고 시체에 감아둔 사슬과 한데 엮은 뒤, 자물쇠를 채웠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호주머니에서 소주 팩과 비닐봉지를 꺼냈다. 미리 가루로 빻아놓은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소주를 쭉 들이켰다. 목구멍이 활활 타올랐다. 소주 한 팩을 모두 마시고 나자, 격렬한 취기가 몰려들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물비린내에 속이 울렁거렸다.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아내의 시체 위에 토해버렸다.

‘얼른, 죽어버리자.’

석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숨 막히는 고통을 참지 못해, 입안에 손가락을 쑤셔 넣고 시큼한 약물을 게워냈다.

‘소주는 마시지 말아야 했어. 빌어먹을 여편네!’

순애를 발로 찼다. 굵은 쇠사슬이 다리를 감고 있단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한 번 더 걷어찼다. 거룻배가 휘청거리다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석태는 중심을 잃고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묵직한 검은 비닐이 덩달아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갔고 커다란 돌덩이가 뒤따라갔다. 석태는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려고 필사적으로 팔을 저었다.

공포를 느꼈다. 순애가 말한 죽음의 공포를.

*

‘횡성 휴게소 도착하면 전화해.
운전 조심하고. 강 효주’

미라는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대형마트에 들러 레드와인 두병을 사고 나니, 영동고속도로 신갈분기점에 진입했을 때에는 밤 10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원주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라디오를 켰다.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들으시겠습니다. 자, 오늘 방송,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아멘.”

미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에서 마지막으로 라디오를 들은 건 전날 오후 5시경, 「오후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특정 주파수만 고집하거나, 특별히 청취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채널은 늘 91.9MHz에서 맞춰놓고 바꾸는 일은 없었다.

“소름끼치게 웬 기독교 방송?’

무신론자인 미라는 개척교회 목사로부터 삽화 의뢰를 받은,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경동화책이었는데 메일로 보내온 원고와 15점의 스케치가 담긴 파일을 살펴본 후 목사의 의뢰를 거절했다.

대가도 만족스럽고 일주일만 매달리면 끝낼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쉬운 작업이었지만 어린이 도서라기에는 내용도, 삽화도 소름이 쭉 끼칠 정도로 잔혹했다.

어린이들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목사의 의뢰를 거절했지만 그는 몇 차례 메일을 더 보내와, 내용은 수정이 불가능하나 그림은 삽화가의 도안에 따른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게다가 선입금에, 웃돈을 얹어 주겠다며 교회를 방문해 달라고 재차 요구했다.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

주파수를 91.9MHz로 바꿨다. 「성시경의 음악도시」 오프닝 음악이 흘렀다. 라디오 진행자는 소양강 댐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사태 사고 소식을 전했다. 13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가운데 브라이언 애덤스의 「헤븐」이 흘러나왔다.

미라는 시속 100킬로로 달리며 멜로디에 맞춰 흥얼거리다가 문득, 3년 전 이맘때 비슷한 참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소양강댐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펜션 두 채가 매몰되었고 희생자의 다수가 초등학교 과학체험 자원봉사를 떠났던 대학생들이라 더욱 안타까웠던 사고였다. 기묘한 건 그 사고 때도 희생자가 13명이었다. 확률로 따지자면 제로에 가까운 오싹한 일치였다.

1부가 끝나고 광고방송이 나올 때 횡성 휴게소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휴게소를 5킬로 앞둔 지점에서 속도를 늦췄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크림색 푸조 한대가 미끄러지듯 미라의 차를 추월하더니 순식간에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백미러를 통해 후방을 살폈다. 4차선 도로에는 느리게 달리는 미라의 승용차밖에 없었다. 상행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10분을 달렸는데도 휴게소가 나타나지 않자 길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내비게이션을 살폈다. 화면에는 미라의 차가 횡성 휴게소를 이미 지나쳐온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강경으로 진입한 뒤 얼마가지 않아 고원으로 이동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신호를 넣고 두레면 21길로 접어들었을 때쯤, 사위가 몰라보게 깜깜해지더니 바람 한 점 일지 않던 날씨도 갑작스럽게 사나워졌다.

잿빛 구름 사이로 번갯불이 번쩍거렸고 이내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거칠게 두드렸다. 라디오는 전파방해를 받은 것처럼 지지직거렸고 내비게이션 화면은 가로로 일그러졌다.

라디오를 끄고 내비게이션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켰다. 먹통이다. 갓길로 차를 세우고 효주에게 전화를 했다. 두 차례 신호음이 울리더니 뚝 끊기고 통화권이탈 표시가 떴다.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비를 흠뻑 맞으며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사방을 에워싼 검푸른 산과 좁다란 비포장도로, 물결처럼 요동치는 음산한 나무뿐이었다. 지나치는 차량도, 행인도, 가시덤불로 이어진 갓길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효주의 별장이 발견될 거라 믿고 침착하게 차를 몰았다.

얼마 가지 않아 도로의 폭이 점점 더 좁아지더니 산행금지 구역임을 알리는 푯말이 앞을 가로막았다. 차량통행이 불가한 지역이었다. 도로가 좁아 유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든지 차를 두고 걸어가든지 길을 따라 차를 후진시키는 방법뿐이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려면 족히 대여섯 시간은 버텨야 하고 폭우 속을 헤치고 별장까지 찾아간다는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후진기어를 작동시켰다. 내리치는 빗물 때문에 사이드 미러와 후방 와이퍼는 무용지물이었다.

상체를 돌린 채 후방 유리창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차를 몰았다. 핸들을 쥔 손에 땀이 배었고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50미터를 후진을 하는 데만 25분을 소비했다. 다행히 도로 폭은 점차 넓어졌고 빗줄기도 약해졌다. 속도를 올렸다.

그때, 후미등 불빛 끝자락에 검은 동체가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였다. 도움을 청하려고 속력을 올렸다. 후진하던 차가 중심을 잃고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

“여기요. 뭐 물어볼 게 있는데요.”

우비를 입은 남자는 고함소리가 안 들리는지 등을 보인 채 계속 걸어갔다. 경적을 울렸다. 반응이 없었다. 미라는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쫓아가려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막다른 산행금지 구역에서부터 후방을 주시하며 운전했지만 길을 지나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샛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폭우가 치는 새벽, 음침한 도로에 불쑥 나타난 그가 왠지 께름칙했다. 속도를 유지하면서 남자를 주시했다. 점점 가까워지다가도 멀어지는 요상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저절로 라디오가 켜지며 어린이들의 신들린 합창이 터져 나왔다.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님뿐이지요.
황금 집으로 가는 길도 예수님뿐이지요.
다른 길은, 다른 길은, 다른 길은 없어요. 아멘.”

미라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때리다시피 라디오 전원을 껐다. 칼로 자른 듯 오싹한 정적이 흘렀다. 라디오 주파수가 왜 자꾸만 기독교 방송에 맞춰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차 하고 후방을 살폈을 때 우비를 입은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릴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30여 미터를 후진하자 차가 진입하기에 충분한 도로가 나타났다.

남자가 저 길로 들어갔다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설명되었다. 효주의 별장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이 섰다. 미라는 그쪽으로 차를 몰았다.

곧고 평평하던 길은 얼마가지 않아 울퉁불퉁한 내리막으로 변하더니 다시 굽이굽이 올라갔다. 굽은 길을 따라가다 보니 예상대로 2층짜리 전원주택이 자그맣게 보였다.

별장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별안간 차바퀴가 굉음을 내며 헛돌기 시작했다. 가속장치를 힘껏 밟아보았지만 바퀴는 제자리를 돌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시동을 끄고 별장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어림잡아 200미터는 걸어가야 할 것 같았다. 뒷좌석에 던져둔 우산을 챙겼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선물용 와인을 품에 안았다. 차문을 열자 빗물이 들이쳤다.

쏴아아아―

예상보다 비바람이 거셌다. 우산을 얼굴 가까이 바짝 붙이고 두 손으로 우산대를 꽉 붙잡았다.

‘오지 말았어야 했어. 생리통이 도졌다고 핑계를 댔어야 했는데.’

이제와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그때 뭔가가 순식간에 미라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빛처럼 빨랐고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었다.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우산을 옆으로 살짝 치웠다. 보이는 거라곤 어둠뿐이었다. 서둘러 한걸음 내딛자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우산이 훌렁 뒤집히며 손에서 미끄러져 날아갔다.

우산을 잡으려다 넘어져 돌부리에 무릎을 찧었고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빗물이 고인 웅덩이로 엎어져 구정물을 옴팡 뒤집어썼다. 불로 지진 것처럼 무르팍이 아렸지만 아픈 것은 둘째 치고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울음을 터뜨리며 손에 잡힌 돌멩이를 분풀이 하듯 내던졌다. 그런다고 분이 풀릴 리 없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주저앉아 있기에는 너무 추웠다.

선물가방을 챙겨 낑낑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앞을 보았다. 온천지가 암흑이었다. 어디서 걸어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천천히 뒤돌아섰다. 불에 그은 듯한 새카만 목조 건물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

별장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었다. 허허벌판이라던 효주의 말과 달리 별장 주변에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쯤 별장에는 효주를 비롯해 족히 다섯 사람이 머물고 있을 터인데 주변에는 주차된 차도 없고 불이 켜진 곳이라곤 2층 방, 단 한곳뿐이었다. 그 불빛마저도 취침 등처럼 희미했다.

노크를 했다. 응답이 없었다. 조금 더 크게 문을 두드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잡이를 비트니 문이 스르르 열렸다.

“선배? 저 왔어요.”

대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다. 현관에 선물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었다.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효주에게 전화를 했다. 여전히 불통이었다. 스마트 폰에 내장된 플래시라이트를 켜고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현관 벽면에 스위치 두 개가 부착돼 있었다. 스위치 두 개를 동시에 눌렀지만 똑딱거리는 소리만 날 뿐 불은 켜지지 않았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면서 플래시라이트로 실내를 비췄다. 불 꺼진 실내는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처럼 휑했지만 알게 모르게 음식 냄새와 촛불이 타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 거실을 쭉 둘러보았다. 가구라고는 구닥다리 3인용 소파와 흔들의자 그리고 깨끗이 치워진 나무 탁자가 전부였다. 장식품이나 전자제품 같은 것도 없었다.

바닥재는 나무무늬목 비닐장판, 벽은 격자모양의 싸구려 종이벽지였고 벽면은 총알세례를 받은 것처럼 못질 흔적이 가득했다. 바닥은 벨기에산 붉은 카펫으로, 벽면은 파벽돌 실크벽지로 시공했다던 효주의 말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플래시라이트로 2층을 비췄다. 방문 세 개가 나란히 보였고 모두 닫혀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서너 칸 올라서자 발끝에 뭔가 닿았다. 손바닥만 한 자동차 장난감이었다. 미라는 장난감 자동차를 집어 들었다.

‘선배의 별장에 왜 이런 게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무더운 공기가 갑작스레 서늘해졌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자지러지게 놀랐다. 휑한 거실 한복판에 누군가 서 있었다. 플래시라이트를 계단 아래로 비췄다.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였다.

모자까지 푹 뒤집어쓴 탓에 공포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악당처럼 보였다. 우비자락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졌고 그 아래로 손바닥 크기만큼 빗물이 고여 있었다.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서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미라는 플래시라이트를 슬그머니 내리고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에게 물었다.

“여기가…… 강 효주 씨 댁 아닌가요?”

“아닙니다.”

남자는 짧게 대답한 뒤 현관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수납장에서 석유 랜턴 두 개를 꺼내 소파로 가서 앉았다. 몇 차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미라는 난간에 몸은 붙이다시피 기대어, 천천히 내려왔다. 탁, 하고 라이터 켜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석유랜턴 두 개가 실내를 밝혔다. 남자는 랜턴 하나를 들고 계단 쪽으로 걸어와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말했다.

“집을 잘못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 혹시, 이 근처에 별장이 또 있나요?”

남자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가 알려준 곳은 효주의 별장과는 동떨어진 장소였다. 설명을 마친 남자의 시선이 2층으로 향했다.

미라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옮겨졌다. 30대 후반의 여자가 촛불을 들고 방을 나오고 있었다. 얼굴은 눈사람처럼 하얗고 동글동글하고 시커먼 머리카락은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부스스했다. 특징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여자는 미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끝났어요?”

남자는 미라를 의식하면서 크게 헛기침을 했다. 여자의 시선이 더듬더듬 거실로 옮겨졌다가 계단 아래 서 있는 미라를 발견하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깜짝 놀랐다.

“저 여자 누구예요?”

남자는 집을 잘못 찾아온 손님이라고 대답했다. 그의 아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안절부절못했다. 과민반응을 보이는 여자 때문에 미라는 당황스러웠다. 미라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 집을 나왔다.

으르르 콰앙

별장을 나오자마자 비바람에 맞으며 차를 세워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차는 제자리에 없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주차해둔 곳을 착각한 것 같아 굽잇길을 따라 두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차는 발견되지 않았다. 꿈을 꾸기라도 하듯 정신이 멍했다. 미라는 부부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대문을 다섯 번이나 두드렸을 때야,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대문이 열리자마자 현관에 두고 왔던 와인가방을 내밀었다. 미라는 다짜고짜 도로가에 세워둔 차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서요?”

남자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대꾸했다.

“혹시 차가 있으면 좀 태워 주시……”

“우리는 차가 없습니다.”

“전화라도 쓸 수 있을까요?”

“불통입니다.”

“핸드폰이라도?”

“없습니다.”

남자는 도와줄 마음이 없어보였다. 미라는 부탁을 하면서도 이가 갈렸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비가 그칠 때까지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부처처럼 길게 찢어진 눈으로 미라를 위아래로 찬찬히 훑어보았다.

“들어오세요.”

그가 길을 터주었다. 뒤에 서 있던 그의 아내가 혼잣말로 뭐라고 소곤거리더니 아까와는 달리 밝아진 표정으로 미라를 뒤따라 왔다.

“마실 거라도 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뭐로 드릴까요?”

“따뜻한 커피면 좋겠네요.”

“우린 커피를 안 마셔요.”

“아무거나, 따뜻한 걸로 주세요.”

여자는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계단 옆 부엌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그제야 우비와 장화를 벗고 돌아와, 미라에게 수건을 건넸다. 미라는 젖은 머리를 닦아내는 동안 남자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평범하지 않은 그의 얼굴이 어쩐지 낯익었다.

얼굴은 좁고 길고, 눈은 가로로 길게 찢어졌고, 인중은 길고, 입술은 얇았다. 앞머리는 두피가 훤히 보일 정도로 머리숱이 적은 반면 옆머리는 턱선을 가릴 정도로 길고 숱도 많았다. 어깨가 심하게 굽은 탓에 정면에서 보면 가슴팍에 얼굴이 달린 사람처럼 섬뜩해 보였다.

남자는 미라를 소파로 안내한 뒤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거실을 서성이다가 흔들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가 등을 쭉 기댔다. 끼이익. 신경을 긁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잠잠한 공기 속에 메아리쳤다. 끼이익. 흔들의자가 앞으로 기울었다. 끼익. 뒤로. 끼이익. 고문이 따로 없었다.

여자가 싱글거리며 부엌문을 열고 나왔다. 하얀 머그잔을 탁자에 놓고 미라의 옆에 앉았다.

“드세요.”

머그잔을 들었다. 따뜻한 차를 기대했는데 미지근한 맹물이었다. 갈증이 났지만 수돗물 특유의 금속성 냄새가 풍겨와 입술만 축이고 탁자에 내려놓았다. 비를 맞은 탓인지 한기가 들고 피곤이 몰려왔다. 미라는 부부의 눈치를 살피며 지갑에서 만 원짜리 석 장을 꺼내 여자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잠시 눈 좀 붙여도 될까요?”

여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폐 석 장을 도로 밀어내며 더할 나위 없이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세상은 지옥이에요. 여긴 지옥이 아니랍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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