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작품을 최근작인 ‘언제남 밤인 세계’를 먼저 읽고 나서 뭐에 홀린 사람차럼 찾아 읽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보통의 저라면 쉽게 손을 대지는 않을 소재의 글이었습니다.
판타지 음악소설이라니…
음악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도 많고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리메이크작도 있습니다만, 제게 음악을 소재로 한 장르는 다가가기 꺼려지는 장르입니다.
제가 음악적인 소양이 부족하기도 하고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학과 음악은 왠지 대척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 작품은 저의 그런 짧은 선입견을 말끔하게 벗겨내 준 재미있고 스타일리쉬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의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작가님의 몽환적이고 속도감있는 글솜씨입니다.
참으로 흡인력이 강합니다. 세심하고 여린 감성과 일필휘지로 치닫는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글에는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고 독자들을 몰아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의 성격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장편들이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호흡 고르기 같은 스킬이 하 지은 작가님께는 없더군요.
활자본에서 E-BOOK으로 옮겨간 요즘의 문학 추세에 딱 들어맞는 급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 자신에게나 독자들에게 잠깐이라도 느슨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겟다는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글을 쓰시기 때문에 다음편을 아무런 주저없이 기다리게 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이 작품은 캐릭터의 매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글을 읽어보시면 있어야 할 자리에 등장인물이 꼭 맞게 들어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글의 전개를 지나치게 흐리지 않는 선을 지키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러 인물들은 그렇게 많은 묘사 없이도 각각의 대사와 행동으로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냅니다.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고, 때로는 이야기의 전개에 극적인 재미를 더해주는 궁금증을 남기기도 하는 조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등장인물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잃지 않으니 참으로 멋진 글솜씨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가상의 음악도시에서 벌어지는 세 예술가의 사랑과 우정,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담고 있습니다.
소질은 뛰어나지만 열정이 약간 부족한 주인공 고요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정상에 올라선 바옐, 그리고 두 사람을 이어주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트리스탄.
세 사람은 각자 자신들의 사랑, 우정,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서로를 상처입히고 떄로는 스스로도 상처입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주인공인 고요가 쉽게 상처입고 금세 회복되는 소년의 순수한 영혼을 보여준다면 바옐은 높은 곳에 있는 한 점을 향해 끊임없이 날개짓하는 소년의 열정이, 트리스탄의 구김살없는 성격과 한 사람에 대한 지고지순한 애정에서는 순진무구한 소년의 사랑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판타지의 형식을 빌린 소년들의 성장기라 부르고 싶네요.
물론 작가님이 이 소설의 이야기를 그렇게 간단히 이해하도록 느슨하게 구성해놓으시진 않았습니다.
과거 엄청난 능력의 마법사가 만들었다는 얼음나무 숲과 그 곳의 불길한 산물인 악기의 저주, 그리고 바옐과 고요에게 죄어드는 살인의 위협에 정체가 불분명한 점술가의 예언까지.
최근 장르문학의 추세로 보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자가 글에서 원하고 보고 싶을만한 내용들이 빼놓지 않고 담겨있는 데다가 호불호가 갈릴 만한 소재를 선택하셨음에도 불굴의 아재감성을 가진 필자의 가슴 속 깊이 숨겨져 있던 소년의 영혼까지 끄집어내 주셔서 퇴근 지하철을 네 정거장이나 더 가게 만들어주신 작가님의 능력에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게 조금 아쉽게 느껴진 것은 역시나 분량의 문제인데, 퇴고에서 정리가 된 것인지, 글의 군살을 줄이기위한 작가님의 의도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매력적인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기대보다 짧게 마무리 된 게 아닌가 싶은 부분이 조금 보였습니다.
가장 아쉬운 건 역시 트리스탄. 주인공의 자리에 있어도 됨직한 비중을 가진 인물로 등장을 하였으나, 죽음까지도 글의 큰 전개에서 약간 벗어나있는 것 같아서 끝까지 아쉬웠습니다. 제게는 최애캐입니다.
휴베리츠 알렌 또한 제 취향에 딱 들어맞는 멋진 인물로 후반부에 고요를 도와 얼음나무 숲과 그 저주에 대한 것을 밝혀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했으나, 뒤늦게 나타난 케이져에게 공을 돌리고 너무나 허무하게 역할이 종료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부분은 글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저의 지나친 팬심이 만들어낸 욕망같군요.
글의 전체적인 전개는 워낙 속도감이 있어서 읽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데, 후반부로 가면서는 전반부에 던져진 여러 의문점들에 대한 해답이 약간 급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예언에 대한 부분이라던가 바옐의 유일한 ‘그’가 될 뻔했던 악마의 정체, 사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저주받은 악기의 진정한 의미 등 이 작품에서는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지는 매력적인 요소들이 수없이 많은데, 후반부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정체모를 살인자로 옮겨져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으로 급히 마무리된 듯한 모습이었거든요.
이런 느낌들이 등장인물에 대한 아쉬움과 더해져 분량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던 것 같네요.
더 쓰셔도 되었단 말입니다. 트리스탄과 알렌의 외전을!! 작가님 어서!!
자신의 작품이 책으로 출간된다는 건 요즘같은 때에 모든 작가분들의 꿈이자 목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 지은 작가님의 역량과 멋진 솜씨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이 작품은 온라인으로 구매했지만, 단행본으로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명작이라고 주변에 자신있게 추천할 만한 뛰어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장르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성별과 어느 정도 연령대를 가리지않고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도 이 글의 특장점입니다.
쓰다보니 결국 팬이 쓴 팬레터같은 글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사실 이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 지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거기에 제 나름의 ‘그런데 왜?’를 덧붙인 것 뿐이지요.
혹시나 아직 안 읽어본 분들이 계시다면 음악이 나오는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열혈마초아재 감성의 한 독자가 강력추천하는 ‘얼음나무 숲’에 한번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