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곳곳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작품은 브릿g 중단편 인기순 상위권에 있기도 하고, ‘독’이라는 제목에서 뭔가 강렬한 게 느껴져서 본 작품이다. 물론 내 예상과 달리 ‘독’은 장독대를 말할 때의 독이었다. 이 작품의 장르는 추리/스릴러 장르로, 시작부터 할아버지 장례식 마지막 날을 배경으로 장독대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할아버지 집에는 그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상황 자체가 독자들에게 많은 상상을 부여한다. 설마 할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친척들 간의 배틀로얄? 혹은 앞으로 이 공간은 밀실이 돼 한 명, 한 명씩 죽는 건가? 등, 다양한 상상이 나온다.
작중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넷째 아들의 딸이다. 이 딸을 화자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첫 시작은 아까도 나왔듯이 장독대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는 것부터다. 그리고 이야기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천천히 각 친척들의 성격과 프로필을 말해준다. 첫째 삼촌은 젊을 때 사업을 말아먹어 할아버지한테 빌붙어 살았다든가, 둘째 고모는 첫째 삼촌을 대신해 형제들을 이끄는 인물이고, 셋째 삼촌은 둘째 고모 덕으로 변호사가 됐고 셋째 숙모와 그 자식들은 남을 헐뜯는데 온 신경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주인공의 부모인 넷째 부부, 어렸을 때 죽은 다섯째 고모를 제외하고 수녀인 여섯째 고모, 그리고 말수가 적은 막내 고모가 나온다. 단편치고 많은 인물들이 나와 헷갈릴 수도 있지만, 각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이 잘 구별돼 읽는 데는 무리가 없다.
친척들 소개 이후, 주인공은 장례식에 오기 전 부모가 대화하던 걸 회상한다. 그 대화란 주인공이 사실 입양아라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렸을 때 셋째 부부의 쌍둥이들이 놀려서 알게 된다. 그리고 부모는 이번 장례식에 주인공의 부모가 올 것이라 말한다. 이후 회상은 끝나고 주인공은 친척들을 관찰하며 누가 자신의 부모인가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친척들은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고, 결국 서로 감정이 격화되려는 찰나 밖에서 큰 소리가 난다. 밖으로 나가보니 장독대가 깨지면서 시체의 정체가 드러낸다. 그리고 셋째 부부의 쌍둥이들 중 한 명이 주인공에게 막내 고모의 자식이라는 진실을 말해준다. 어른들은 그 시체가 과거 막내 고모를 성폭행한 듯한 대화를 나눈다. 어른들은 계속 쉬쉬하려고만 하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작중 주인공은 스토리 안에서 감정의 고조 없이 담백하게 친척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냉정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끝까지 주인공은 별다른 반응을 안 보인다. 집 안에서 시체가 나왔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에 대한 혼란이 왔음에도, 다른 친척들과 달리 차분하다.
사실 이 작품의 마무리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 분명 추리/스릴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죽인 범인의 정체는 안 나온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시체란 그저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시점과 생각으로 이루어지기에, 현재 주인공이 처한 사건이 중심인 것이다. 작중 주인공은 자신의 친부모가 누군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이야기 마지막에 시체의 정체와 막내 고모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주인공이 머릿속으로 고민하던 사건은 해결된다. 주인공에게 있어 시체는 경찰이 맡아야 될 영역인 것이고, 결국 본인에게는 친부모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시체를 죽인 진범이 궁금한 독자라면, 이 작품의 결말을 보고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이 추리하던 사건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이야기는 마무리 지어진다.
여운이 남는 추리 단편을 보게 되어 좋았고, 작가님이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품들을 써주셨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