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킬레우스

  • 장르: 호러, 추리/스릴러 | 태그: #타임리프 #루프물 #로맨스일까 #아킬레우스 #거북이
  • 평점×105 | 분량: 199매 | 성향:
  • 소개: 무허가 타임루프를 찾고 해체하는 일을 하는 피터. 그는 어느 타임루프 속의 카페에서 마스터라 불리는 남자와 지니라는 여자를 만난다. 타임루퍼인 마스터를 설득해 순조롭게 해결될 것 ... 더보기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잡을 수 없는가 공모(비평) 브릿G추천

리뷰어: BornWriter, 17년 8월, 조회 138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타임리프 공모전의 수상작을 모아놓은 <러브 모노레일> 단편집을 읽은 적이 있다. 동명의 단편을 포함해 서로다른 여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그렇지만 압도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것은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뿐이었다. 어째서일까 고민해봐도 썩 마땅한 대답은 나오질 않는다. 그나마 괜찮은 대답이 있다고 하면 ‘풀린 미스터리의 오묘함’이라고 할까.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의 초반 진행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그렇다고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우선은 초반을 넘기고 나서야 대강의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대강의 구조가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그 작품이 대충 어떻게 끝날지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거기서부터는 결말을 보기 위해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다. 시작점 A와 도착점 B사이의 괴리가 상당하여, 과연 작가가 어떤 코스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지 궁금해질 뿐. 나는 이것을 ‘풀린 미스터리의 오묘함’이라는 표현으로 수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떠한가. 여기에 대한 내 감상을 한 문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어서, 급하게 키보드 잡고 앉아 리뷰를 쓴다.

 

 

1. 분량

늘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분량을 확인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볼륨을 먼저 파악하는 편이 독서하는 데에 편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놀랍게도 원고지 199매 분량이다. 내가 지금껏 읽어본 달바라기 님 작품이 네 편정도 되는데, 이만큼 두꺼운 볼륨의 단편은 없었다. 이것은 판단 미스인가, 아니면 계산된 분량인가. 읽으면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 읽고난 뒤의 감상은 ‘거의 완벽해’였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분량이 아쉽다. 카메노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는 그 장면부터 결말까지 너무 후루룩 지나가버린듯하달까. 10에서 20매 정도 더 쓰셨다면 훨씬 괜찮은 후반부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면 중단편이 아니게 되어버렷! 그래서 나는 199매의 분량을 ‘어느정도는’ 판단 미스라고 생각한다. (달바라기 님은 타임리프 공모전에 내기 위해 이 글을 쓰신 거로 아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독자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2. 도입부와 설정

훌륭한 도입부는 작품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강렬한 결말은 작품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작품의 도입부는 훌륭하다. 점잖은 마스터와 깨발랄 지니, 그리고 미지의 인물 피터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들을 이렇게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참신한 설정이다.

타임루프 물에서 꼬인 시간을 범죄에 악용하거나, 그들을 처단하려는 존재는 늘 있어왔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톤이 조금 다르다. 초반의 분위기가 너무 평온하고 안온하여 범죄의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어쩐지 마스터에게는 나름의 사정(예컨데 불치병에 걸린 아들이라거나)이 있어서 타임루프를 깰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든다. 피터와 지니 사이의 기류도 재미있다. 여기서 변수가 생긴다. 지니가 컵케익을 만들어왔다. 이 변수 하나가 고요한 물가에 작은 파동 하나를 일으킨다. 이 파동이 앞으로 어떤 파도가 될지 이 때 독자는 모른다. 그저 ‘모두의 계획이 적잖이 흐트러지겠거니’ 하고 읽을 뿐.

타임루프에 대해 제논의 역설을 가져온 것도 재미있었다. 그동안 나는 제논의 역설을 ‘시간을 적분하면 어떻게 되는가’ 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설정에 용히 녹여낼 수 있다니!

 

 

3. 일어나는 시간의 함정

지금까지 브릿ㅉ에 남긴 여러 리뷰를 통해 나는 훌륭한 복선이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무릇 훌륭한 복선이라면 ‘읽고 있는 동안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아야 하고, 복선이 회수될 때는 반드시 생각나야 하는’ 것이다. 마스터가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것은 매우 훌륭한 복선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읽을 때는 ‘아, 저 양반 인생 피곤하겠구만’ 정도의 감상이었다가, 복선이 회수되면서 ‘?!?!?!?!!?!!!?!’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4.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가 카메노를 죽이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것을 나는 141번 문단(?)에서 눈치채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동했다. 하나는 카메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마스터라는 것이다. 이것도 어쨌든 소설인 만큼 갈등과 기타등등이 있어야 하는데, 어쩐지 마스터가 카메노를 죽이는 일종의 ‘쾌락 살인마’인 편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데에는 더 유리할 거 같았다. 그와 동시에 쾌락 살인마 본인이 자수하듯 (하지만 듣는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게) 피살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도 괜찮은 선택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순전히 내 감이다. 그냥 어쩐지 풍기는 뉘앙스가 그럴 것만 같았다. 마스터가 카메노를 죽이겠구나. 그리고 피터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하루를 무한히 반복하겠구나.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나 혼자만의 감이었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독자가 이 지점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은 떨어지지 않을까.

 

아, 그런 것도 있었다. 마스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타임 루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쩐지 그런 복선이 있을 거 같았다. 다만 그게 카메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늘 생각하는 건데 달바라기 님의 캐릭터는 이름 역시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다 읽고 부끄러워져서, 나는 이제 어디가서 일본어 잘 한다고도 못하겠다. (그렇지만 내용에 압도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름을 일본어로 치환해서 생각해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5. 힘빠지는 결말

더 이상 부끄러워질 것도 없으니,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나는 이 작품의 2/3 지점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거 압도적이다. 누가 수상을 할런지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 역시 적어도 수상작 중에 한 자리를 꿰차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결말에서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강렬한 결말은 작품을 잊지 못하게 한다. 이 작품의 결말이 강렬했느냐 물으면 난 단호히 고개를 저을 것이다. 심지어 이 작품의 결말은 내용 전체에 대한 감상 마저 평가절하하게 만드는 종류의 것이었다.

해피 앤딩은 쓰기 쉽고, 새드 앤딩은 쓰기 어렵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새드 앤딩인데도 매우 정교하게 작동하는 플롯을 기반으로 완벽한 결말을 써내었다. 안녕, 아킬레우스의 결말은 누가 보더라도 새드 앤딩이다. 그렇지만 힘빠지는 새드 앤딩이다. 결말에서 힘이 팍 빠져버린 것이 나는 독자로서 매우 매우 아쉽다.

 

6. 제목으로 돌아와서

결말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이 작품은 매우 압도적이다. 트위터에서 문장력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달바라기님을 본 적 있는데, 내 생각에 달바라기님의 작품이 소비된다면 그것은 문장력 때문이 아니라 번뜩이는 아이디어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전에 이야기한 적 있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 그것도 일상적인 것을 가볍게 비틀어서 생겨나는 아이디어야 말로 장르소설의 본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달바라기님이 고민해야 하는 건 문장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목 센스가 아닐까 싶다. 안녕, 아킬레우스? 정말 이게 최선의 제목이었습니까? 하고 묻고 싶다. 물론 제목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대신 제목은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적어도 브릿ㅉ에는 표지가 없으니까) 요인이다. 독자들은 제목을 통해 작품의 전체적인 톤을 추측하는데,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의 제목은 사기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여러 말 많이 늘어놓았지만 딱 한 줄로 어떻게든 줄여본다면 ‘결말만 완벽했더라면 최강이었을 텐데….’ 쯤 될 것이다. 이 말을 바꿔보면 결말 이외의 모든 것이 훌륭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트위터에서, 달바라기님은 이 작품이 그 어떤 작품보다도 매우매우 자신 없다고 하셨는데, 전지적 나님 기준에서 보면 이 작품은 그간 다른 작품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작품이다. 자신감을 가지셔도 좋다고 생각한다.

 

 

 

+ 읽다가 발견한 오류 같은 부분들

오래된 마을과 늙은이, 심장약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두 번 반복됩니다. 이거 달바라기님 의도였다고 해도, 저는 읽으면서 좀 껄끄러웠습니다.

 

사실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