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까지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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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 이몽고등학교’의 이야기는 아직 도입부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구성이나 전개에 대해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대신, 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그리고 글에 대한 감상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작가님의 요청이 있었던 만큼, 글 속의 내용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려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문장들을 여럿 인용했습니다. 초반부라고는 해도, 가감없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감상에 참고해 주세요!
1. 비밀을 감춘 학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이몽고등학교’는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합니다. ‘예람’에서는 이곳이 악몽에 가까운 일들이 늘상 일어났던 곳,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공간이라고 해요. ‘홀로 남겨진 어느 학교’라는 표현을 보면, 이몽고는 한때 운영되다가 지금은 폐교된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진위 여부조차 불분명한 소문이기에 매혹적이면서도 스산한 분위기를 주는 표현이에요. 이어지는 문장들에서는 누군가 그 학교에 찾아갔으며 실제로 특이한 경험을 한 것으로 보여요. ‘그런 학교는, 역설적이게도 실재했고, 분명,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단 한 문단 안에서도 소문이 주는 인상, 그런 인상과는 어긋나는 정보를 함께 제공하기 때문에 묘한 위화감이 발생해요. 그런 위화감이 서장부터 모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어질 내용에 흥미를 가지게 했지요. 기이한 일이 일어나는 학교의 실상은 무엇인지, 이 학교에서 인물들이 겪게 될 일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니까요.
학교라는 공간만 특수한 건 아니에요. 학생들 사이에도 무수한 소문이 떠도는 모양이고, 가만 보면 의식의 저변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 듯해요. 소현만 해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며 주인공인 서연에게 ‘그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저는 이러한 요소에서 온다 리쿠의 소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를 떠올렸어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전학 온 미즈노 리세가 주인공이죠. 리세가 다니게 될 학교는 쾌적한 환경과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지만 어째서인지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게다가 이 학교에서는 이따금 학생들이 실종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남은 학생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요. 리세는 학교 생활을 하며 때때로 위화감을 느끼고, 스멀스멀 자라나는 불안감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을 마주하기 시작해요.
‘이몽고’와 ‘보리의 바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 비밀을 감춘 학생들이라는 비슷한 상황을 다루고 있어요. 그러나 ‘보리의 바다’가 어디까지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몽고’에서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는 차이가 있어요. 과연 ‘이몽고’의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2. 경계 허물기
‘아직은 겨울이 다 가지 않아 미묘한 겨울의 향과 봄의 향이 섞여 불어오던 겨울의 끝 무렵, 산길을 타고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은 산의 도입부터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이끌고 불어왔다.’ (1장)
‘조금은 서늘한, 겨울의 향을 담은 건조한 바람은 금방이라도 얼을 듯, 차가워진 손가락을 스치며 아직 겨울이 다 가지 않았단 것을 알리던 때였다.’ (2장)
‘비록 봄의 도입이었지만 늦은 새벽의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손끝을 스치는 공기는 차갑기만 하다’ (3장)
계절감을 나타내는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에 주목해 볼까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서연이 겪는 일련의 사건들의 배경에 불과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매 회차마다 발견할 수 있는 계절의 경계를 다른 요소들과 함께 고려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부분들입니다.
‘산속이라고 운동장 하나만큼은 넓게 지은 건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1장)
차로 한참을 올라와야 했던 산속에서, 서연은 교문을 지나 또 한참을 어둠 속을 걸어요. 현실이 아닌 곳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흥미로운 대목인데요. 학교와 학교 바깥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지요. 그저 새로운 학교에 도착했을 뿐인데, 완전히 분리된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처럼 그려지고 있어요.
‘새벽 4시, 여명과 황혼이 겹쳐져 어두운 기운만이 어스름히 내린 시간, 작은 공간 속 그 시간은 너무도 고요했다.’ (5장)
5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새벽 4시, 학생들이 기숙사 밖으로 걸어나갔다 사라진 그 시간이네요. 여명과 황혼이 겹친 시간. 밤과 아침의 경계에서 학생들은 사라졌어요. 그리고 학교의 문은 어떤가요. 서연이 바깥에서 들어올 때 거쳐야만 했던 정문. 그리고 학생들이 사라졌다가 죽은 채로 돌아오기 전에 통과했던 쪽문. 사소해보이는 많은 장면들에서 ‘경계’라는 공통점이 일관적으로 나타납니다. 이 모든 것은 ‘이몽고’의 테마인 꿈과 현실의 경계로 수렴하게 되고요.
‘이몽고’에서는 경계를 발견하고 묘사하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어요. 인식하지도 못한 것을 허물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죠. 3장에서 서연이 기이하고 위협적인 존재와 마주한 이후로 꿈과 현실의 경계는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요. 그리고 비로소, 무너지기 시작해요.
3. 소리의 효과
글의 전개 방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소리를 통해 장면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이지요.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나(1장), ‘이 구절에서는-‘하고 설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2장)처럼 말이에요. 산속의 학교라는 배경 때문인지, 유독 적막함이 부각되는 장면이 많아요. 그리고 서연은 혼자 위화감을 곱씹다가 새로운 사건과 마주하고요. 그때마다 누군가의 목소리나 효과음 등이 적막을 깨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장면이 바뀐다는 사실이 흥미로워요.
청각적 표현이 장면 전환 말고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교실에서 서연이 눈을 뜬 이후의 일이지요.
‘쿵, 쿵, 한 서너 걸음 더 내디뎠을까, 제 발소리에 제 것이 아닌 다른 이의 발소리가 겹쳐져 들려온다.’ (3장)
‘제 심장박동인지, 무언지 모를 소음은 더욱 크게 들려온다.’ (3장)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서연에게 다가와요. 몸을 숨기다 우연히 낸 소리에, ‘그것’이 빠르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가까워지기도 하지요. ‘그것’은 기괴한 목소리로 말해요. 발소리와 목소리, ‘그것’이 내는 소리는 도망칠 틈도 없이 서연을 몰아세우고 공포감을 조성해요. 3장에서 청각적 심상을 활용하는 방식은, 기존의 장면 전환과 달리 더없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요.
4장에서 깨어난 서연의 심장 소리, ‘그것’의 발소리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는 다시 불안감을 불러일으켜요. 서연의 두려움을 우리에게도 생생하게 전달하는 수단이 되지요. 5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쿵, 쿵, 울리는 소리가 서연의 귀에 들려오며, 서연은 ‘자신에게만 보여오던 그 존재는 어느샌가 꿈을 넘어 현실에 다다랐다’는 사실(5장)을 깨닫습니다.
4. 치밀한 묘사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모든 공기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이, 완전히 잦아들어 풀들이 스치는, 그런 보통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1장)
‘고요함만이 적막 속에 가득 찬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듯하다. 이제 이곳에서 나는 모든 소리의 근원은 나여야만 한다. 그 이외의 것이라면, 정체를 알 수 없을 터이니.’ (1장)
개인적으로 이 글에서 정말 매력적이라 여겨지는 부분이 1장에서 가장 잘 드러나요. 서연이 학교에 도착할 때의 일입니다. 주변의 상황,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치밀하게 파고들어요. 단순히 ‘사방이 고요하다’고 언급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실에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지, 고요함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고요함에 의해 서연의 마음 속에선 어떤 감정이 발생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핀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다른 장면도 볼까요.
‘잠시 스쳐 지나간 시선 속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흐릿하게 일렁인다. 어쩌면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을지도 몰랐으나, 갑작스레 일렁인 시야 끝 무언가에, 서연은 고개를 들어 올려 무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시선의 끝을 옮겼다.’ (4장)
이 장면이 유독 인상적인 이유는, 서연의 시선을 따라 눈에 보이는 것들을 세심히 표현하기 때문이에요. 서연의 시선 끝, 분명 꿈이어야 할 무언가를 현실에서 발견하는 순간이 뒤따르는데요. 그 충격적인 조우의 순간을 지연시키며 글은 서연의 시선을 느리게 따라가요. 서연은 이미 무언가를 예감했어요. 지켜보는 독자 역시도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요. 하지만 글은 그 충격을 즉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요.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어가요.
‘현실, 이 현실이라는 말이 이토록 잔인할 수가, 눈앞의 검게 물들어간 장면들이 단지 꿈이어야만 했음을, 몇 발짝 더 내딛고서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겹겹이 쌓인 살점들을 밟아가며 이 순간을 이해하기 위해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나, 마침내 발에 닿은 것이, 익숙한 얼굴일 수가.’ (5장)
5화 중반까지 착실히 쌓여오던 긴장감은, 재난 문자의 알림음과 함께 잔혹한 형태로 터져 나와요. 그 후에도 글은 집요하게 지켜보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서연이 마주한 광경을, 그 안을 걸어가는 순간을, 서연의 감정이 뒤엉키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 모든 순간을 끈질기게 담아내요. 읽는 사람이 그 장면을 충분히 감각할 수 있도록, 마음속에 그려보도록 이끌지요.
5. 어긋남
어긋남, 위화감이나 이질감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5장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감정이자,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몽고’의 경우에는 꿈과 현실이 맞부딪치며 발생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거의 10분은 넘게 학교로 들어가기를 시도했건만,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했던 와중 철문 근처 기둥, 작은 버튼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니, 이걸 왜 못 봤지?’ (1장)
낯선 환경에서 단순히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기서부터 이미 현실이 조금씩 비틀리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읽으니 들더군요. 그저 서연의 착오에 불과한지,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순간에 발생하는 ‘어긋남’인지 ‘이몽고’를 읽으면서 여러 차례 생각하곤 했어요.
혜린과 처음 만난 장면도 한번 떠올려볼까요. 낯선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과 조우하다니, 1장의 핵심이라 할 만한 장면이었지요. 어찌 된 영문인지 서연도, 읽고 있는 저도 의문이 샘솟기 시작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혜린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더욱 재밌는 요소였어요. 서연의 입장에선 이상한 장소에서 이상한 만남을 경험한 셈인데, 정작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이상도 감지하지 못하다니요. 학교에 도착한 첫날부터, 서연에게는 온통 이상한 일들만 일어납니다.
‘305호라 했지. 계단을 올라 마침내 문 앞에 다다르니 예상과는 달리 불은 켜져 있었다. 분명 1인실이라 했던 것 같은데, 잘못 들었던 것일까.’ (1장)
1인실이라 생각했던 방은 2인실이었고, 뒤에서도 소은이란 룸메이트가 등장하는데요. 처음 읽을 때는 저도 단순히 전달 과정에 착오가 있었겠거니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어쩌면 1인실이라고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1인실이었던 곳이 2인실이 된 것 또한 사실인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기더군요. 이상한 의문이지요. 하지만 말도 안되는 문장 같아도, 어쩌면 ‘이몽고’에서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학교 안에서는 현실도 사실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변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이 사실은 오직 서연에 의해서만 감지됩니다.
4장의 조우에서도 그렇지요.
‘그는 분명히, 제 옆에 있는 지현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이서연, 그만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4장)
현실의 것이라곤 보기 어려운 존재가 서연의 일상에 침입했을 때, 그것을 가장 먼저, 또 유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서연입니다.
작품 초반에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장이 하나 있었지요. 조금씩 형태는 변주되지만요.
‘하여간, 모든 것이 이상했다.’ (1장)
서연은 일상을 이어가다가 지속적으로 위화감을 느끼는데, 이러한 감정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추적하는 과정에서 긴장감과 공포가 발생한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해요. 그리고 이것이 학교 전체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으로도 이어지리란 기대가 글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본다.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다. 구조가, 교실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의 배치가 뒤바뀌어 있다.’ (3장)
‘시야에 들어온 교실의 모습은 무언가 달랐다. 누군가 앞서 들렸던 듯이 사방엔 무언지 모를 액체들이 튀어 있었으며, 책상은 모두 치워져 텅 빈, 익숙지 않은 풍경이었다.’ (3장)
교실에서 기절한 서연을, 혜린은 야자실에서 발견했다고 했지요. 서연에게 있었던 일은 단순히 꿈일까요? 하지만 서연의 옷에 묻은 핏자국은 어떤가요? 그리고 혜린은 서연을 어떻게 찾았을까요?
서연이 알고 있던 것, 경험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증언과 어긋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요. 지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그것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로 이어질까요. 무너지기 전의 위태로운 모래성을 지켜보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어요.
6. 영화적 표현
매 회차마다 ‘Take’라는 단어와 함께 특정 장면이 묘사되고 있죠. 본편은 ‘장’으로 구분되지만, 추가로 ‘Take’란 표현을 사용해 마치 영화의 각본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주인공인 서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Take’란 표현을 볼 때마다 이야기 밖에서 지켜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상정하게 돼요. 앞으로의 이야기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여겨보고 있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또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는데요.
‘그리 크지 않은 소음과 함께, 굳게 잠긴 문은 열린다. 이제 공간의 범위가 좁아진다.’ (1장)
공포게임 같기도 하고, 무대 연출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물이 활동하는 배경이 전환되는 순간을 정확하게 지시하니까요. ‘공간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표현은 서연이 직접 경험하기보다, 외부의 관찰자가 확인한 사항을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시점이 겹치는 느낌에 약간 이질감이 들면서도, 어떤 장면을 상상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지시하기 때문에 장면의 전환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이질감이라 표현하긴 했지만, 평범한 장면을 관습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색다른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저는 재밌는 시도라고 느꼈어요.
‘정문 기둥에 달린 CCTV 한 대는 무너져 내린 돌무더기만을 찍고 있다. 이어 밝은 회색의 돌덩이들이 짙은 색으로 물들어간다. 모든 것을 흑백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서서히 돌멩이들을 적셔간 것이 빗방울인지, 진흙인지, 혹은 피일지.’ (2장)
2장의 ‘Take 1’을 볼까요. 본편과는 별개의, 그러나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언제 일어난 일이냐 하는 거겠죠. 학교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의 일부인지, 동일한 시간대에 발생했지만 서연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건인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서연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되, 다른 시점의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이몽고등학교라는 시공간적 배경이 입체적인 현실로 다가오게 해요. 서연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당연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언젠가는 서연의 일상에 연결될 수 있음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한층 풍성하게 느껴지니까요.
7. 반복되는 사건
‘예람’에서 명시하듯, 서연의 일상 속에 유사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누군가 손을 다치길 반복하지요. 처음에는 같은 반 친구가, 다음으로는 후배인 지현과 소현이, 마지막에는 혜린이 손을 다쳤어요.
‘아, 근데 언니, 그 얘기 들었어요? 이번에 또 누구 죽었다는데요?’ (2장)
그런데 손을 다치는 사건만 반복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이번에 ‘또’ 누가 죽었다고 해요. 소현의 말로는, 서연이 오기 전 이미 3명의 학생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고 해요. 서연이 온 뒤 네번째 사건이 발생했고요. 사건의 경중이 확연히 다르지만, 기이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만은 동일합니다. 다음에도 같은 사건이 일어날까요? 일어난다면 ‘어떤’ 사건이? 이러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증폭되면서 자연스레 공포감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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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에서 마침내 꿈은 현실을 위협합니다. 재밌는 점은, 그 시작을 재난문자의 형태로 알려온다는 것이지요. 의미를 알기 어려운 행동강령이 서연과 다른 학생들에게 전달됩니다. 서연의 악몽은 이몽고에 왔기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었던 걸까요?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악몽에서는 깨어날 수 없는 걸까요?
행동강령의 의미는 무엇인지, 괴이현상이란 어떠한 형태인지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겠지요. 현실이 된 꿈에서 서연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