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감상 브릿G추천

리뷰어: 청새치, 23년 10월, 조회 11

같은 역에서 내리는, 그날 처음 본 할머니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져 가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나날이 벅찬데, 이게 또 골골대기까지 하니 앞으로 살 날이 막막해서 인생의 선배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뭐든 기꺼운 참이었지요. 당장의 문제는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지만, 내일 죽을지도 모르면서 까마득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멀지 않은 늙고 병들었을 때를 걱정하던 무렵이었어요. 할머니는 자식들이 얼마나 잘 컸는지 얘기해 주시고,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지도 얘기하시더니, 이렇게 마무리 지으셨어요.

“인생 별거 없어.”

이 어찌나 최강자 같은 발언인지요! 이전부터 그랬지만, 이런 이유로 제게 할머니는 강인함의 상징이에요. 어딘가엔 분명 계시겠지만, 여러분은 고생하지 않으신 할머니를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전쟁과 가난, 숱한 사별과 무책임한 남편에 여성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을 살면서 자식들과 웃어른까지 모두 부양해야 해낸 그들을 저는 약자로만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훅훅 바뀌는 세상이 그걸 해내더라고요. 사기 피해자, 키오스크 앞에서 한없이 주눅드는 작은 등,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방에서 병마로 고통받다가 악취로 간신히 발견되는 쓸쓸하기 짝이 없는 소식을 듣다 보면 두려워지곤 했습니다. 강인한 할머니도 이러시는데 나약한 제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다행히 도란 마을은 제가 살고 살아가야 할 위험한 속세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지고 또 고급진 세상입니다. 권력은, 그보다는 재산이 이곳의 주민인 노인에게 있어요. 자식들이 아양을 떨고, 가게 직원이나 지나가는 사람인 척하는 의료 종사자들이 얼굴이 마비되도록 웃어야 하는 이유죠. 시간과 병 외에는 아무도 그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간 유산과 수입이 동시에 날아가는걸요. 이런 점은 좀 씁쓸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돈줄로밖에 그들을 보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위와 같은 이유로 아무리 위험한 사건이어도, 주인공이 할머니인 이상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도란 마을의 땅주인인데다 괴팍하기까지 하잖아요. 사실 사건은 진상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이어서 금방 끝나고, 그 뒤를 뒤쫓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야 할머니는 최강인걸요!

그러니 사실은, 끝나고도 끝난 게 아닐 때도 있는 거죠.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