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함께하는 하드보일드 도란마을 감상 브릿G추천

리뷰어: 뇌빌, 23년 10월, 조회 15

동화 마냥 해요체로 시작하는 도입부를 보며 미스 마플 같은 분위기의 코지 미스터리일까 했는데, 첫 회부터 영아 유기 사건이 툭 언급되면서 사건과 서술 분위기가 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오히려 기대되었다. 곧 도입부의 화자가 슬쩍 빠지면서 치매 노인 요양병원인 도란마을의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하는 하드보일드 미스터리에서 아쉬운 점이 독자로서 사건의 전모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것인데, 이런 구성은 고전 미스터리 같은 재미를 보태 줄 수 있는 것 같다.

역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제목으로도 뽑힌 레모네이드 할머니인데, 영리하고 시니컬한 데다 과거와 배경에 비밀이 많고 이상하게 묻힌 사건에 호기심을 가짐으로써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다만 치명적인 문제는 치매 환자로서 가지는 갑작스런 활동 제약인데 이 점은 역시 영리하고 시니컬한 꼬마와의 만남으로 보완된다. 술이나 담배가 어울릴 법한 상황이어도 환자이나 아동 보호자로서 손에 든 건 시원 달콤 새콤한 레모네이드! 두 주요 인물과 꼬마의 엄마 서이수 선생님(거의 유일하게 본명이 언급된 것 같은데 거의 유일하게 큰 잘못이나 결함이 없는 인물인 듯)을 지나며 이 겉보기 근사한 치매 요양 마을의 구린 부분들이 드러나게 된다. 사실 영아 유기 사건이 있었음에도 별 탈 없이 운영되던 것 자체가 미스터리 배경으로서 손색이 없는데, 부유층 치매 환자들과 그 가족, 병원 운영자들의 사정과 도란마을 인근 주민들의 갈등이 더해져 평화로운 요양 병원이 아닌 어두운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그럼에도 권력과 악에 맞서 용기를 낸 사람들, 그리고 레모네이드 할머니의 추리와 기지 덕분에 결국 잘못이 밝혀지는데, 이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 적어도 레모네이드 할머니는… 이제 막 멋진 추리 콤비가 되었는데 그렇게 가시면 어떡하나요? 레모네이드 할머니 다운 마지막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도입부 해요체 화자의 마무리는 조금 급한 느낌도 들었다. 혹 다음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면 작중 비중은 적었지만 마지막 큰 활약 보여준 윤비서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도란마을 사람들 모두 더는 별 문제 없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