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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상실에 주인공이 지치고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만, 주인공(‘나’)이 어머니가 실종되었음에도 애타하거나 슬퍼하기보단 ‘또 반복되는구나…’ 같은 심정으로 사건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 마지막에 ‘골목’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도 무섭긴 했는데, 저는 실종된 어머니에게 간절함을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물론 그 상태는 이른 나이부터 너무 많은 실종을 겪어야만 했던 주인공의 가정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추측합니다.
게다가 연이은 가족의 실종이 인생에 남긴 긴 어둠과 그림자를 대면하고 해결하기란 무척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시신을 찾아 감정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강력 범죄와 달리 ‘실종’은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끝까지 놓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그러니 ‘희망’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지치고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이 주인공의 감정 상태가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고 동시에 작품이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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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실종에 무덤덤했던 주인공은 딸이 실종될 위기에 처하자 찾아 헤메다가 ‘골목’이라는 기이한 장소로 진입합니다. 이 공간은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주인공의 딸과 주인공의 간절함/상실감이 만들어낸 듯한 공간입니다. 딸이 찾던 할머니, 주인공이 찾던 아버지, 아버지가 찾던 딸(주인공의 형제자매)이 모두 존재하니까요.
주인공은 간절하게 할머니를 찾는 딸과 달리, 실종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어머니를 이미 ‘실종된 지 오래 되어 사망했을거라 추측’되는 사람들과 비슷한 존재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만큼 주인공이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행위에 지치고, 희망을 잃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장소에서 눈에 띄었던 건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주인공의 대응 방식입니다. 골목이 모인 사거리에서 나타난 세 실종된 사람들은 상실감/간절함이 만들어낸 귀신 혹은 유령일 거라 추측합니다. 주인공은 그들과 마주하는 것이 상실감과 어둠, 그림자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것들에게 집어 삼켜지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딸을 데리고 급하게 사거리 골목길을 빠져나가려고 한 거겠죠.
주인공의 이런 행동은 상실감/어둠/그림자를 ‘극복’하는 행위가 아닌, ‘회피’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골목길을 빠져나온 다음 주인공이 딸에게 말하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들 앞에 골목이 나타날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엔딩에서 한 번 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해소되거나 극복되지 않은 감정들은 계속 사람들을 쫓아다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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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실종된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력감과 어둠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골목’에서 마주치는 실종된 사람들을 직면하고 그들을 떠나보내는 인사를 건네는 게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과정이 위험하고 무섭긴 하겠지만요.
주인공이 극복하지 못한 감정/어둠에 대해 주인공의 어린 딸도 ‘회피’라는 같은 대응방식을 학습하게 되는 듯해 약간 안타까웠습니다. 상실과 실종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회피’나 ‘애써 직면하지 않음’과 비슷한 행동밖에 없는걸까요? 저는 주인공이 가진 무력감이 실종된 사람들에 대해 그가 택했던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