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바깥으로 향하는 호기심 감상 브릿G추천

리뷰어: 피오나79, 23년 1월, 조회 55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대한 수족관에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아쿠아리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곳은 사방이 온통 투명하고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이상한 건 유리창 밖으로 일렁이는 파란 바닷물을 유유히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10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 어류들은 심지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꼬리 지느러미로 곧게 선 채 지느러미로 카트를 밀고 다니는 중이었다. 그곳은 심해의 대형 마트였던 것이다. 인간이 작은 테라리움에 갇혀 있고, 그런 인간을 반려 동물처럼 구매하는 어류들의 세상이라니… 시작부터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미분음의 기록’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이 궁금해서 읽게 된 작품이다. ‘미분음’이란 일반적으로 말하는 ‘반음’ 간격보다 더 세밀한 간격을 가지는 음을 뜻하는 단어이다. 음의 사이가 미세한 만큼 음계의 차이 또한 예민한데, 기본적으로 한 옥타브를 열두 음이라고 볼 때 그 열두음 바깥의 음을 뜻하는 것이니 이야기 자체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쨌건 작고 세밀한 단편들이 모여 있는 이 작품은 <심해의 지족관>, <%의 행성 요리법>, <하보리타 놀이동산 관리인에게 전하는 지침서>, <미분음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단편집이니 아직 완결은 아니고 다른 작품들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깊게 읽은 것은 색다른 상상력이 돋보이는 <심해의 지족관>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점점 녹아서 북극곰들이 먹이를 구할 데가 없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지면 생태계 환경이 변하게 되고, 결국 많은 생물들이 멸종하게 된다. 인류가 인위적으로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킨 대가는 고스란히 인류에게로 되돌아온다. 식량, 에너지, 자원 문제, 미세먼지와 오존 농도의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 자연재해, 환경오염 등 푸른 행성 지구의 위기는 전례 없던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니 지구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 버린 세상도 전혀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인류 문명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부식된 지 오래인 세계, 이제 육지는 겨우 5퍼센트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구를 장악한 것은 심해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온 어류들이었고, 그들은 단 수 세기만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그들은 구 인류가 만들어냈던 문명에 관심을 가지고, 순식간에 매몰되어 화석화된 인류를 복원하기 위해 지속적인 탐사와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인류가 선조들이 남긴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를 밝히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발전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인간의 DNA를 채취해서 배양인을 만들어 냈고, 반려인간이라며 마트에서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흥미와 호기심으로 인간을 구매했던 어류들은 유기를 하기 시작했고, 동물 보호 연합회에서 유기 인간을 거둬들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자, 반려 동물과 인간이 완벽하게 전세가 역전되었다. 일부 지각있는 물고기들이 인간들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그 덕에 동물 보호 협회가 진행하는 인간 서식지 재현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5퍼센트 남은 땅이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니 말이다. 역지사지로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는 추천평처럼 이야기를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반려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의 권리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물론 이야기 자체도 매력적이었고, 실제로 수백 년 뒤에 인류가 이런 모습이 된다고 해도 말이 되지 않을까 싶은 설득력도 있었다. 심해의 바다속을 떠올리면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너머로 어쩐지 오싹하고 무섭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런 분위기를 잘 살려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그려낸 것 같다. <미분음의 기록>으로 올라올 앞으로의 작품들도 기대하며 읽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