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 읽는 것 자체에 시간 할애를 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 작품을 처음 추천 목록에서 보았을 때에도 아, 다음에 꼭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는 실제 읽는 것은 뒤로 미뤄 두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읽은 것이 오늘이네요.
브릿지에서 작품에 리뷰를 써 보는 것은 처음인데, 아무래도 이 작품의 소재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이것을 전부 ‘단문’ 응원에 담아 넣기엔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리뷰 창을 열어 보았습니다.
작중에서 ‘소연’은 과학자로, 특히 x, y, z축과 시간축이라는,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네 가지 축에 관한 연구를 합니다. 인간은 이 중 x, y, z에 있어서는 자유로우나, 시간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하죠. 시간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 움직이는 것이 맞기는 할까요? 어쩌면 시간은 흐르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차차 다른 이야기에서 풀어 보도록 하고, 소연은 이것에 대해 독특한 발상을 합니다. 우리가 시간 외에 다른 곳에서 자유롭듯이, 세계에는 공간의 세 축 중 하나에서 자유롭지 못하되, 시간에 있어서 자유로운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작품에서 이 생명체는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그것은 공간의 두 축과 시간축에서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하나의 축에 대해서만큼은 제자리에 붙박인 듯이 보입니다. 저로서는 그것이 어떤 느낌으로 시야에 들어올 것인지, 사실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실제로 시간축에 자유롭되 다른 축이 고정되어 있는 생명체를 실제로 볼 일은 없으니까요.
다만, 이 생명체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저는 꽤 좋은 설명이자 비유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실제로도 나무란 x, y 축에서 성장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기 마음대로 이동하지는 못하니까요. 그런 느낌으로 한 곳에 묶인 듯 보이는 존재이지 않을까, 상상해보니 조금 두려워졌습니다. 정말로 저 밖의 숲에 그러한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처럼, 나무의 형상을 한 불가해한 무언가는 향기라는 또 다른 익숙한 매개를 이용하여 다가옵니다. 의사의 형상을 한 화자는 이제 자신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이미 맡아버린 싱그러운 피톤치드 향으로부터 딱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립니다. ‘한 번 그 향기를 맡은 사람은 숲에서 나올 수 없다.’
문득, 내가 지금까지 맡아왔던 수목원의 공기나, 동네 뒷산에서 풍겨오던 싱그러운 봄냄새, 혹은 오가는 길의 화원에서 흘러나오던 향기 중에도 이 벗어나지 못할 향기가 스며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알까요, 지금 나도 편백나무 숲 어딘가에 누워있고,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환각일지. 또는 내가 통 속의 뇌이고 내가 인지하는 이 모든 감각과 현상들이 사실은 전기 자극에 불과할지!
아, 그렇네요. 한 번 그 향기를 맡은 사람은 그 숲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저는 아직 그 숲에서 이 글을 써 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