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글은 비평상 참가를 위하여 이전에 올렸던 ‘일탈을 꿈꾼게 아닌데요’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동일한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어 미리 말씀 드립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해졌어. 수요일에 무서운 이야기 채널을 본 게 원인인 것 같아.’
그저 심심해서 본 유튜브 채널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된다면 어떨까.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 우리의 삶에 노크를 할 때 공포가 시작된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좀 이상해>는 충실하게 호러 문법을 따르는 소설이다. 소설 전체적으로 촘촘하게 쌓아 올린 현실을 금기와 전복의 위반을 통하여 공포의 영역으로 끌어 내린다. 그 과정을 유튜브 알고리즘의 자의성을 통한 공포를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 지어 풀어내고 있다.
두 번째로는 청각을 통한 차별적인 감각의 구현이다. 소설은 호러 소설이 감각을 활용할 때 으레 사용하는 시각적인 정보들 대신 ASMR이라는 소재를 통해 청각적인 정보들로 공포를 구성한다. 제한된 감각 속에서 청각은 어떤 이미지보다도 선명한 공포를 선사한다.
1) 줄거리
‘무서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쫄기도 잘 쪼는’ 나는 어느 날 여름의 더위를 잊기 위해 맥주 한 캔을 꺼내며 호러 유튜브 영상을 본다. 그렇게 주인공은 지병인 난시 때문에 화려한 영상을 보기 힘들어 ASMR 영상을 선택한다. 영상 시청을 마치고 난 후 유튜브 추천 영상은 공포 채널로 도배되어 버려, 공포 영상을 죄다 관심 없음 표시를 마치고 나서야 정상화가 된다.
돌아온 금요일 에어컨을 틀지도 않는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다시 한번 더위를 식히기 위해 딱 한편 공포 영상을 시청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영상을 찾던 도중, 특이하게도 검정색 화면에 채널 이름이 <.>인 스트리밍 채널을 시청하게 된다. 영상은 숨소리가 헐떡거리는 장면에서부터 이윽고 비명소리로 바뀌며 주인공은 채널에 대해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상한 느낌이 망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채팅창에 ㅇㄱㅁㅇ (이게뭐야) 라고 물어보나, 바로 채널 째로 폭파된다.
그녀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계정은 본명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위기감을 느낀 주인공은 구글 계정을 삭제하려고 들어가나, 유튜브에 그 채널이 다시 띄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스트리밍 영상의 제목이 주인공의 이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2) 선택은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리를 붙잡기 위해 기존의 시청한 정보를 바탕으로 관심을 끌 만한 영상을 노출시킨다. 분명 이 과정은 우리의 선택에 근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알고리즘의 과정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는 점에서 자의적이다.
알고리즘의 자의성은 우리 선택이 기호화되고 재현되는 결과이다. 우리의 취향이라는 명목하에 선택된 영상은, 일정한 테마로 된 데이터 기호로 변환된다. 그 것은 기호를 제외한 ‘의미’ 자체를 뜻하는 ‘기의’이다. 그러나 기의는 우리가 인지하는 의미를 담지하나, 사회적 합의에 의한 코드에 의해서만 기표로 관측된다. 우리가 보는 영상이 그 것이다.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치환되는 기의들은, 코드로 관측되기 이전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 영상을 본 뒤로 메인 화면으로 나오니까 알고리즘 추천으로 다른 공포 채널이 몇 개보이더라는 거야. 뮤뱅 방송 보면 난 알지도 못하는 신인 아이돌들이 골반이랑 어깨 탈골된 것처럼 흔들면서 왜애앵앵알쫑알대는 영상들이 쏟아지고 귀여운 고양이가 썸네일에 걸려 있길래 클릭했을 분인데, 경기도 개농장의 충격적인 진실 뭐 이딴 관심 없는 게 따라 들어오는 것처럼.’
내가 공포 영상을 본 뒤로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 채널로 공포 영상이 추가로 출몰한다. 그러나 ‘관심 없는 게 따라 들어오는 것처럼’ 알고리즘의 기의는 종잡을 수 없다. 오직 ‘공포영상’이라는 기표만이 선택과 결과의 기호로 표시될 따름이다. 이렇듯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상해>는 검색의 자의성이 어디까지 확산되는 가를 다룬다.
인터넷의 검색은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결과물만이 도출된다. 알고리즘에 의해 한차례 걸러진 정보들은, 우리의 삶에서 인용될 수 있는 무언가다. 그러나 이 결과값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닿는다면 어떨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세상의 결과값들이 인터넷으로 흘러들 듯 진위를 알 수 없고, 또는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 정보들 역시 그 흐름에 섞여 있다고 여겨진다. 이 일반적인 흐름으로는 닿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알고리즘으로 노출될 때 우리의 삶은 금기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호러 소설의 공포는 ‘지배하지 못한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불안과 위협을 통해 경험된다. – 환상/최기숙’ 작중 다뤄지는 금기의 세계는 폭력과 반사회적인 맥락으로 상이 맺힌다. 그렇게 한꺼풀 겹쳐진 극단 속에서 주인공은 침묵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금기를 위반한다. 알고리즘의 자의성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치닫게 될 때 그 것은 우리 삶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된다.
2) 들리기에 보이는 것들.
난시를 가지고 있고, 공포물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촘촘하게 현실을 조형 한다. 이 조형은 무척이나 친밀하고 사실감 있게 조형 되는데, 우리가 그만큼 공감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요소들로 꼼꼼하게 채워져 있다. 공포의 핵심적인 부분인, 자신이 몇 번 누른 유튜브 영상이 자신의 계정을 침식하는 과정까지도 전략적으로 구성된 공감하기 쉬운 요소들이다. 이 작품은 독자가 꼼꼼하게 조형된 이 현실에 빠져들었을 때 붕괴시킴으로써 위협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을 취한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하는 가정이 공포의 핵심적인 맥락인 것이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좀 이상해>에서는 청각적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강렬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청각적인 상황의 제시는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할 뿐, 직접적인 제시는 아니다.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 특히 보이지 않는 것들은 상상 속에서 공포스러운 무언가로 변모된다. 그 것은 정체불명에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경각심에 맞닿아있다. ‘인간의 지배력을 넘어선 존재들은 종종 공포와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이로써 이들은 배제와 거부 공포와 전율의 대상이라는 타자의 주제를 구성한다. – 최기숙/환상’
그렇기에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좀 이상해>는 일반적인 호러의 이미지를 가져오지 않는다. 단지 청각적인 영역으로 ‘들려줄’ 뿐이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검정색 ASMR 영상이란, 스너프 필름의 일종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것이 정말로 스너프 필름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간접성이 내포하는, 이 모호함 때문에 우리는 진짜 스너프 필름이 갖는 비현실적인 거리감을 지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스너프 필름이 아닌 단지 알 수 없는 무서운 영상으로 남아서 우리의 현실을 공격하는 것이다.
3) 결론
<내 유튜브 알고리즘이 좀 이상해>는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떤 식으로 공포가 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은 유튜브의 알고리즘과, 스너프 필름 둘을 의미한다. 딥웹에 까지 닿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무언가다. 그 것은 인터넷과 연결된 우리의 현실을 파괴하는 무언가이다.
스너프 필름 역시 일반적인 폭력의 이미지가 아닌 청각에 의한 상황 설정으로만 보여주는 부분은 특기할 만 하다. 직접적인 폭력으로 우리의 현실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청각으로 인한 제한된 정보만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상력 속에서 그 것은 스너프 필름 이상의 것이 되어 우리를 공격한다. 자신의 무지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연쇄 속에서의 전략적인 구성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