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비밀결사인가 싶겠지만, 어차피 세상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별개로 작동한다. 이를테면, 장사도 안 되고 문을 여는 것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도 오랫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을 보면서 한 번쯤은 ‘저긴 대체 뭐 하는 곳이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을지로4가의 어느 이름없는 조명가게 지하에 거대한 회의장이 있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기나 할까? 그런데 바로 이 지하실에 문화계의 각 분야에서 명성이 드높은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어떨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비밀결사의 은밀한 회동에 한 사람의 운명이 달려 있다면?
주말 아침 서프라이즈 방송에서나 볼 법한 비밀결사 음모론을 다룬 본 작품은, 내용과 전개 방식 면에서 모두 독특하고 파괴적 형식이 돋보인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예술가들이 비밀결사의 일원이라는 설정부터 시작해, ‘지장수’라는 무명작가의 작품을 읽는 순간 배고픔에 사로잡힌다는 이상 현상이 전파되고, 나아가 한 세계의 운명까지 좌우되는 서사의 흐름은 거칠고도 파격적이다. 특히 화자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결말의 반전을 극대화하는 과정에 묘미가 있다. 덤으로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의 패러디를 유추해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것이다.
*본작은 다음 분기 출판 지원작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