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평소에도 음모론에 치를 떨며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신봉자들을 성토하던 친구가 갑자기 예시 중 하나로 ‘블랙홀’을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닌가. 블랙홀을 “우주에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구멍이 있다는 유사과학”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는 순간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나’는 점차 대화를 나눌수록 친구의 논리에 말려드는 기분에 휩싸이는데, 반박 근거를 생각해 보려 해도 떠오르는 건 소설적인 설정이나 장면들뿐이다.
믿기는 힘들지만 따로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로 세상에는 평면지구론자들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블랙홀 존재론자」에서처럼 1대1로 대화를 나누거나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지구가 둥근 이유나 블랙홀이 존재하는 근거를 대라는 얘기를 들으면, 관련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한 주인공처럼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몰입감과 유쾌함이 넘치는 이 단편을 통해서 그 혼란스러움을 한번 만끽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