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제주에 ‘곶자왈’이라 이름 붙은 1만 년의 내력을 지닌 신비한 숲이 있다는 것을. 곶자왈은 용암이 굳은 바위 위에 만들어진 화산숲으로,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생태계라고 했다. ‘환상숲’이라 불릴 만큼 과연 은밀하고 신비한 생명력이 충만하게 태동하는 공간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은 ‘곶자왈’이 지닌 그 공간성 자체를 작품 전면에 끌어들이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삼림 보호 차원에서 곶자왈이 임시 폐쇄되기 전, 때맞춰 제주를 찾은 ‘창’은 올레길을 걷던 중 한 남녀와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흔한 올레꾼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던 커플, 그중에서도 특히 작고 얇은 입술을 앙다문 여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창’은 어떤 예감에 사로잡힌다. 여자가 도움을 갈구하는 것 같다는 예감, 자신이 어떤 분노와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예감.
이러한 최초의 예감을 애써 무시하며 며칠간 올레길을 거닐던 ‘창’은 우연찮게도 두 남녀의 모습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맴도는 미묘한 긴장감, 여자를 위협하던 남자의 모습, 남자에 대한 여자의 체념과 두려움 같은 것들을 점차 느끼게 되고, 급기야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여자의 무능을 질타하기도 한다. 타인의 존재를 거부하지 못하는 그녀의 수동성을 탓하고, 남자에게 구속되어 버린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여자를 멋대로 추측하고 판단하기 일쑤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창’은 비로소 그들의 관계에 개입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도와줘야겠다고.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쫓아 곶자왈 안으로 진입한 순간, ‘창’은 ‘충동하는 숲의 마법’에 직면한다. 전반부에서 착실히 쌓아왔던 제주 최대의 원시림 ‘곶자왈’의 이중적 상징이 극대화되며, 이 공간이 주는 의미와 역할을 비로소 깨닫게 한다. 태고의 숲이 발산하는 원초적 힘을 전달하는 동시에, 다 큰 노루도 빨아들여 서서히 잠식시킨다는 늪의 은밀하고 불온한 마력이 동시에 격동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재된 감정과 힘 사이에서 ‘창’의 추측과 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여성성이 일거에 전복되는 순간, 독자는 더없는 쾌감과 마주하게 된다. 숲이 품은 비밀, 모든 것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룩해 낸 완전한 탈주. 짜임새 있는 구성과 곶자왈이 지닌 공간적 상징으로 만들어낸 반전의 치명타를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