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에서

  • 장르: 추리/스릴러 | 태그: #스릴러 #제주도스릴러 #올레길 #곶자왈에서 #완전범죄
  • 평점×106 | 분량: 86매 | 성향:
  • 소개: ‘나’는 조만간 폐쇄될 곶자왈을 걷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올레길 초입에서 한 여자를 지나친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어떤 분노와 그보다 더한 충... 더보기
작가

곶자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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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봉 아래에 도착해 광치기해변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었다. 해안절벽 위 가게에서 감귤과 보리빵 따위를 팔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쉰다리 한 잔을 시켰다. 등 굽은 할머니가 느릿한 몸짓으로 냉장고에서 쉰다리를 꺼내 따라 주었다. 4년 전에 왔을 때도 여기서 쉰다리를 마셨는데 할머니가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제주 전통 발효음료인 쉰다리의 새콤함을 음미하며 일출봉을 감상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 일출봉에 감탄하는데, 올레꾼임을 알아본 할머니가 어느 코스로 가느냐 물었다. 곶자왈로 간다고 하자 그럴 줄 알았다며 혼자 웃었다.

“내년부터 문이 닫힌다던데 가 봐야지.”

할머니는 올레꾼들 때문에 곶자왈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길을 벗어나고 돌들을 캐가면서 숲이 엉망이 됐고 더는 독초도 찾아볼 수 없단다.

호기심으로 듣는 척을 해 주자 손님에게 올레꾼 험담을 했다 생각했는지, 할머니는 이내 곶자왈 자랑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제주도민들도 올레길을 걷는데 그중 곶자왈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완산 곶자왈(바로 내가 들어가려는 구간이다.) 안에 있다는 늪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굽이굽이 길을 따라가다 몇 발짝 벗어나면, 바닥을 덮은 덩굴 사이에 늪이 물웅덩이마냥 숨어 있어. 그치만 얕보다간 큰일이 나지.” 할머니는 당신 아들이 노루가 빠져 죽는 걸 봤다고 했다. “조심성 없이 늪에 빠진 놈이었어. 네발과 등까지 잠긴 놈이 목만 주욱 빼고선 허우적대고 있더라고. 커다란 눈알만 끔벅거리며 바동바 동 빠져 들어갔지. 어찌 도와줄 수도 없더라고. 늪이 어른 덩치만 한 녀석을 천천히, 끈질기게 잡아당기더라니깐? 반 시간 동안이나 말이야.”

할머니는 아들의 경험을 당신이 직접 본 것처럼 늘어놓았다. 곶자왈 지면이 화산암괴로 이루어진 걸 아는 나는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 안의 원시성을 알기에 노루가 눈만 끔벅이며 늪에 빨려 들어가는 광경은 상상할 수 있었다. 녀석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온몸으로 숲의 공포를 맛보아야 했으리라.

할머니는 또 곶자왈 문을 닫는 건 나라가 하는 일 중 그 나마 잘하는 짓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왕 문 닫는 거 15년 은 족히 닫아야 한단다. 그렇게 오래 폐쇄되는 숲을 상상 할 순 없었지만, 노인네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그저 고 개만 끄덕여 주었다.

두 사람을 다시 발견한 것은 다음 날 오후였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