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 사는 평범한 중년 남성 정만은 어느 날 집 바닥에 큰 구멍이 생긴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전날 밤까지만 해도 옆에 누워 자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보니 지역 일대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곳곳에 싱크홀이 발생한 것이었다. 놀라서 호출한 경찰이 오히려 미심쩍다는 눈길을 던지며 별다른 수색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돌아가자, 홀로 남은 정만은 아내가 싱크홀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은 채 동네를 떠돌기 시작한다. 그런데 싱크홀이 발생하면서 사라진 것은 그의 아내만이 아니었다.
「홀」은 지진으로 인해 도심 곳곳에 싱크홀이 발생한 특수한 상황에서 아내의 부재를 실감하는 남자의 하루를 그렸다. 아주 다급한 위기가 닥친 것은 아니지만 재해가 발생했는데도 허기를 채우지 못해 쩔쩔매는 주인공이나 호들갑을 떨면서도 어쩐지 느긋하게 대피하지 않고 뜸들이는 인간 군상들은 왠지 한국적이어서 설득력 있고 때로는 희극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비일상적인 상황 속의 묘하게 일상적인 묘사들이 흥미로운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