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신거리는 통증에 눈을 뜨자 여자는 어딘지 모를 밭에 서 있다. 달조차 구름에 가리고 비가 내린듯 온통 축축한 밤, 주변에는 버려진 폐가만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고, 여자는 자신이 왜 음습한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 기억이 없다. 뭔가 나타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폐가 벽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 아니, 그림자라고 생각한 순간 그림자는 질감을 갖고, 그 느릿한 움직임에 집중한 순간 달빛에 드러난 그것은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취한듯 웃고 있는 귀신이다. 놀란 여자는 밭 저편의 가로등을 향해 뛰어가고, 곧 여자의 눈앞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라이트 불빛을 번쩍이며 자동차 한 채가 등장한다. 길 위에 불쑥 나타나 팔을 휘저으며 태워달라는 여자를 중년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결국 태워준다. 라디오에서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속칭 ‘손가락 살인마’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여자는 이곳에서 뭘 하던 중이었냐는 남자의 질문에 자신이 기억이 없지만 손가락 살인마를 추적 중이었다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차 안에 침묵이 흐르자 여자의 귀에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듯한 묘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사소한 단서들이 여럿 등장하기에 독자들은 이러저러한 추측들을 계속 해 보게 되는데, 작가가 만들어 놓은 최후의 비밀은 기발하기 짝이 없어서 과연 맞출 수 있는 독자가 있을런지 의심스럽다.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빠져들어 읽다 보면 작가가 날리는 공이 내 눈앞에서 골대로 그냥 들어가는데도 기분은 몹시 유쾌한, 아주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