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트렁크

작가

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무엇을 상상하든 결말은 상상 그 이상

욱신거리는 통증에 눈을 뜨자 여자는 어딘지 모를 밭에 서 있다. 달조차 구름에 가리고 비가 내린듯 온통 축축한 밤, 주변에는 버려진 폐가만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고, 여자는 자신이 왜 음습한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 기억이 없다. 뭔가 나타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폐가 벽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 아니, 그림자라고 생각한 순간 그림자는 질감을 갖고, 그 느릿한 움직임에 집중한 순간 달빛에 드러난 그것은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 취한듯 웃고 있는 귀신이다. 놀란 여자는 밭 저편의 가로등을 향해 뛰어가고, 곧 여자의 눈앞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라이트 불빛을 번쩍이며 자동차 한 채가 등장한다. 길 위에 불쑥 나타나 팔을 휘저으며 태워달라는 여자를 중년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결국 태워준다. 라디오에서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속칭 ‘손가락 살인마’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여자는 이곳에서 뭘 하던 중이었냐는 남자의 질문에 자신이 기억이 없지만 손가락 살인마를 추적 중이었다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차 안에 침묵이 흐르자 여자의 귀에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듯한 묘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복잡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사소한 단서들이 여럿 등장하기에 독자들은 이러저러한 추측들을 계속 해 보게 되는데, 작가가 만들어 놓은 최후의 비밀은 기발하기 짝이 없어서 과연 맞출 수 있는 독자가 있을런지 의심스럽다.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수능란한 말솜씨에 빠져들어 읽다 보면 작가가 날리는 공이 내 눈앞에서 골대로 그냥 들어가는데도 기분은 몹시 유쾌한, 아주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2018년 10월 2차 편집부 추천작

어둠 속을 질주하는 차속에서 벌어지는 긴장 넘치는 스릴러

어두운 밭 한가운데에서 정신을 차린 여자. 음습한 폐가 옆, 불빛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산으로 가득하고 어둠만이 존재한다. 문득 돌이켜보니, 왜 이곳에 와 있는지 기억이 없다. 그런 그녀의 앞에 피투성이의 여자 귀신과 산발의 여자 귀신이 연이어 나타난다. 기겁하며 도망치려는데, 문득 길 너머에서 불빛을 번쩍이며 자동차가 나타난다. 펄쩍 펄쩍 뛰어 차를 세우고 태워 달라 애원하니, 잠시 고민하던 남자 운전자가 그녀를 뒷좌석에 태워 준다. 차속 라디오에서는 여성들만을 골라서 외진 논밭에서 살해한 후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절단하는 속칭 ‘손가락 살인마’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그녀의 귀에는 마치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톡톡톡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차속이라는 닫힌 공간과 피해자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연쇄 살인마라는 흉흉한 소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손가락 트렁크」는 중반까지는 전형적인 호러 스릴러의 전개를 충실하게 따르며 남녀가 벌이는 기묘한 신경전을 긴장 넘치게 펼쳐낸다. 과연 여자가 왜 기억을 잃었는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지, 귀신들은 과연 진정 존재하는지 아니면 여자의 망상인 것인지, 손가락이 두드리는 소음은 무엇인지, 남자의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독자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의문을 안고 어둠 속을 질주하는 SUV와 함께 결말까지 달리게 될 것이다. 결말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의문을 막힘없이 설명해 주는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놀랍다. 해답과도 같은 결말을 떼고 읽어도 그 자체로 훌륭한 한 편의 스릴러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