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이토록 가슴먹먹한 표의와 표음의 세계

「영혼의 물고기」, 「고래뼈 요람 」, 「진저와 시나몬」 등으로 찬란한 환상 세계를 펼쳐 보였던 김유정 작가의 SF 단편 「나와 밍들의 세계」를 다시 보는 추천작으로 재선정하였다.

이 소설의 시작은 자못 아프다. ‘나’는 길에서 살아가던 고양이로,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과도 같은 학대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스스로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찰나, 나는 연달아 어떤 감각을 느낀다. 그 감각의 끝에 보이는 것은 낯선 인간 여자와 몸에 연결된 기계장치였다. 인간과 고양이라 할지라도 매끄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기계장치의 성능에 힘입어, 나는 여자를 되는대로 ‘밍’이라 부르기로 한다.(왜냐면 그 이상으로 여자의 이름을 알아들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는 고양이의 주체적 호칭을 존중하며 그대로 ‘나’라고 불러준다. 그러니 어쩌면 여자가 ‘나’를 부르는 것은 스스로를 포함해 고양이의 존재를 동시에 호출하는 의미일 수 있다. 이처럼 표의와 표음의 기호로 만들어진 세계는 더없이 공고하다.
여자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데려왔고 고양이는 여자가 홀로 우는 모습을 본 뒤 어쩐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한끗 차이로 무너질 수 있는 벼랑 끝 삶이라지만 누구보다 생의 의지로 충만한 이들의 연대는 언제고 눈물겨운 감동을 선사한다.

2018년 8월 2차 편집부 추천작

고단한 생 위에 놓인 모든 이들을 위한 비가(悲歌)

만성적인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길고양이들의 수명은 겨우 몇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고양이들의 평균 수명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시간. 여기, 가쁜 숨을 내쉬는 고양이 역시 그런 처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볼품없이 널브러진 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던 걸까. 다시 눈을 떴을 때, 죽어가던 고양이는 자신을 돌보고 있는 낯선 인간 여자의 존재를 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달라고 소망하는 모습을 본다.

새로운 소통 방식이 도입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나와 밍들의 세계」는 형태를 초월한 존재들의 연대를 그린다. 학대로 죽어가던 고양이와 물려받은 빚 독촉으로 일상을 위협받는 여자는 삶이라는 한 뿌리에서 파생된 이들이다. 삶의 경계를 점차 지워 나가는 이들은, 가장 먼저 서로를 정의한다. ‘나’라고 자칭한 고양이는 제멋대로 알아들은 ‘밍’이라는 소리로 여자를 부른다. ‘밍’이라 불리게 된 여자는 고양이를 ‘나’라고 부른다. 고양이인 ‘나’에게 ‘밍’은 표음된 인간의 한 형태를 뜻하지만, ‘나’라는 고양이의 이름은 불려지는 동시에 두 존재를 함의하는 공동의 표의가 된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너의 고단함은 내 몫이기도 하다는 것, 그 고단함을 덜기 위해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겠다는 것. 그런 다짐 같은 것들이 존재 너머로 울렁이며 뒤섞인다. 이 작품을 읽고 단번에 생각이 났던 어느 노래의 제목처럼 ‘만질 수 있는 널 사랑’하기에, 누구도 서로를 잃지 말기를.
이토록 가슴 먹먹한 표의와 표음의 세계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