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물고기」, 「고래뼈 요람 」, 「진저와 시나몬」 등으로 찬란한 환상 세계를 펼쳐 보였던 김유정 작가의 SF 단편 「나와 밍들의 세계」를 다시 보는 추천작으로 재선정하였다.
이 소설의 시작은 자못 아프다. ‘나’는 길에서 살아가던 고양이로,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과도 같은 학대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스스로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던 찰나, 나는 연달아 어떤 감각을 느낀다. 그 감각의 끝에 보이는 것은 낯선 인간 여자와 몸에 연결된 기계장치였다. 인간과 고양이라 할지라도 매끄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기계장치의 성능에 힘입어, 나는 여자를 되는대로 ‘밍’이라 부르기로 한다.(왜냐면 그 이상으로 여자의 이름을 알아들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는 고양이의 주체적 호칭을 존중하며 그대로 ‘나’라고 불러준다. 그러니 어쩌면 여자가 ‘나’를 부르는 것은 스스로를 포함해 고양이의 존재를 동시에 호출하는 의미일 수 있다. 이처럼 표의와 표음의 기호로 만들어진 세계는 더없이 공고하다.
여자는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데려왔고 고양이는 여자가 홀로 우는 모습을 본 뒤 어쩐지 조금이라도 더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한끗 차이로 무너질 수 있는 벼랑 끝 삶이라지만 누구보다 생의 의지로 충만한 이들의 연대는 언제고 눈물겨운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