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슈퍼히어로』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초인)들은 과도하게 덧칠된 미국식 세계관도 전시하지 않고, 전 지구적 우월주의나 동포주의도 드러내지 않으며 진일보한 기술로 노련하게 싸울 줄도 모른다. 능력이나 힘의 규모에 의해 평가받기보다 남다른 심성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저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정의로운 수준의 사람들이 영웅 일을 하게 되는 이치다. 이런 초인들이 복닥대며 살아가는 사회란 너무 직접적이라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가장 큰 미덕을 꼽자면 아마도 정직한 상상력일 것이다. 민영화, 정치 갈등, 국가적 참사, 아이돌 스타산업의 암막까지…, 구구절절 그저 한국이고 한국일 뿐인 모든 것들이 직관적으로 걸리고 밟힌다. 다분히 설정된 상황이 현실과 같게 느껴진다고 해서 좋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제대로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중 김보영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이런 미덕의 정점에 올라 있는 작품이라고 감히 추천하고 싶다. 주인공 ‘번개’는 시간 초능력자다. 소위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데, 움직임이 빠른 만큼 그 여분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힘을 쓰거나 위치를 옮겨 다니곤 한다. 실제로 힘의 크기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작은 타격을 빠르게 반복하는 원리로 힘을 쓴다. 이를테면 0.1초 사이에 최소한 1백 번 이상의 타격을 가해야만 문 하나를 부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번개는 사회의 이곳저곳 도움이 필요한 일에 끊임없이 불려 다니며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을 돕는다. 아무리 작은 문제여도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니, 그 익숙함 때문에 되레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한다. 번개는 이름값하고 다니려는 욕망자체가 없는 평범한 인간과 다름 아니며, 그 자신도 이러한 기질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그 날’까지는 이런 번개의 기질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트가 와락 주저앉았다. 번개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이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도저히 사람이 서 있을 곳이 아니란 생각에 여러 번 지나쳤던 곳에, 천장에 등을 붙이고 선 사람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온몸으로 무너져 내리려는 천장을 받치고 서 있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말이다.
김보영 작가가 이 작품집을 기획하고 집필하던 시기는 이 나라에서 국가가 통째로 부재했던 파국의 시간과 정확하게 일치하기에, 따라서 이 작품을 읽는 것은 사회와 재난을 사유하는 또 다른 방법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번개’가 선택한 세상의 마지막 풍경(비전)은 더없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