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슈퍼히어로』 김보영 작가 인터뷰

2016.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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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슈퍼히어로’를 소재로 한국에서 단편집을 만든다는 재미있는 기획을 내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나요?

[김보영] 예전에 지인들하고 ‘피망’을 주제로 한 『호연 피망』이란 작은 동인 단편집을 만들었어요. 별거 아닌 주제인데도 제법 재미있는 책이 나왔어요. 작가들도 피망을 좋아하니 즐겁게 썼고 독자들도 좋아해줬고요. 그때 이런 기획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죠. 마침 그 시기에 작가들이 모여 즐겁게 나누던 이야기가 슈퍼히어로에 대한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음에는 슈퍼 히어로 단편집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죠. 애정을 담은 작품집을 만들고 싶었다는 말은 책 안에도 썼어요. 팬들은 그걸 알아봐주세요. 정말로 이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모은다면 작가들도 독자들도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정식 출판을 위한 기획을 해 볼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다른 계기도 있어요. 2010년에서 2013년 즈음에 국내 장르 창작 단편집이 거의 출간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도 적지만 그때에는 맥이 끊기다시피 했죠. 장르문학 잡지였던 《판타스틱》도 사라지고, 《크로스로드》 웹진의 단편집도 한동안 안 나왔고, 황금가지도 1~2년 장르문학 단편선 출간이 멈췄었어요. 장르문학 공모전도 거의 중단되었고요. 그렇다고 문예지나 다른 공모전에서 장르 단편을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는 건 그 즈음에 막 세상에 나온 장르 단편 소설가들은 이 나라에서 등단할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었거든요. 아무리 실력 있는 작가라도 그냥 세상에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아도, 단편선 기획서를 쓰고 출간해 줄 출판사 찾아보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기획해주신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왔으니까요. 그렇다고 인정만으로 작가를 모으진 않았고요.(웃음)

정말로 이 단편집에 맞는 작가들을 찾고, 단편집 자체로 좋은 결과를 내려고 했어요. 그래야 참여한 작가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테니까요. 저로서는 처음 해본 기획인데, 다행히 모두 즐겁게 참여해주셨어요. 책을 내주는 출판사를 찾을 때까지 돌아 볼 생각이었는데 처음 기획서를 낸 황금가지에서 한 번에 수락해주셨지요. 감사드립니다.

[편집부] 기획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떤 소재를 던져서 작가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쓴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더라고요. 최근에 슈퍼히어로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기획하실 때도 고려하셨겠지만 ‘왜 대체 슈퍼히어로가 뜨는가’에 대해 생각하셨던 바가 있는지요?

[김보영] 우리나라에서겠죠? 잘 모르겠어요.(웃음) 십 년 전이나 십 오년 전 쯤에 제가 영웅물 좋아한다고 했을 때엔 사람들이 다 비웃었어요. 근데 지금은 아무도 안 비웃잖아요. 제가 처음 SF를 쓸 때에도 다 비웃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죠. 그냥 이건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저 어떤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흐름이 큰 파도가 될 때가 있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좋은 일을 하고, 그 좋은 일이 이루어지는 구조가 좋아요. 현실에서는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가 되거나 비극으로 빠지지만, 영웅서사는 그걸 기본으로 전제하고 가니까요. 슈퍼히어로라는 말 그대로 현대의 영웅서사가 아닌가 해요.

[편집부] 작가 선정을 하게 된 기준이랄까요. 단지 좋아하는 작가들만 섭외하신 것 같지는 않고 기획적인 면에서 작가들을 구성하신 의도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김보영]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 작가들은 기본이었고요. 의뢰할 때도 원고 의뢰가 아니라 슈퍼히어로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졌어요. 이름이 있든 없든 제 생각에 잘 쓰는 작가들도 기본이었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많으니 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미리 눈여겨보았던 단편이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김이환 작가의 「초인은 지금」이었고 또 하나는 이서영 작가의 「노병들」이란 작품이었죠. 저는 처음부터 「초인은 지금」은 이 단편집의 오프닝이 될 거고 「노병들」은 엔딩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두 사람을 섭외하고 다른 작품을 그 사이에 배치하면, 둘은 기존에 있는 작품이고 원하면 찾아볼 수 있으니까, 작가들이 보고 이 단편집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책에 통일성이 생길 거라고요.

이수현 작가와 김수륜 작가는 처음부터 같이 하자고 했던 분들이죠. dcdc 작가는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줄 분을 원해서 섭외했죠. 히어로 모임에는 꼭 그런 히어로가 필요하거든요. 원고를 받고 보니 역시나 신의 한수였죠. 듀나 작가도 꼭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그 이름을 떠나 TV 원더우먼 에피소드 전체를 다 리뷰하신 분이었으니까요. 거기서 두 명 정도 더 섭외할 생각을 하면서, 작가들을 죽 보며 어떤 면이 더 필요할지 생각했어요.
다른 작가 분께 “좋은 작가 없을까, 좀 더 영웅미 있고 강인하고 액션씬도 잘 쓰는 분으로…….”라고 의견을 구했는데, 그분 머리 주변에 뭉게뭉게 떠오르는 게 보이더라고요. (웃음) 느낌이 와서 제가 “아, 좌백, 진산 작가님 말고.”라고 했더니 그 분이 “그분들은 왜 안 되느냐”고 묻는 거예요. 전 뭔가 “그렇게까지 강해질 생각은 없으니까!”라고 했죠. “그래도 말이나 붙여보죠”해서 정말 말이나 붙여봤는데 두 분 다 흔쾌히 참여해주셨어요.
그 두 분이 와주시면서 예상치 않게 진짜 작가 어벤져스가 되어버렸죠. 정말 기뻤어요.

[편집부] 덕분에 배트맨을 패러디한 아주 기발한 무협 소설이 하나 나왔죠. 그러고 보니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님 본인 작품 말고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으세요? 인상 깊었던 작품이나, 독특한 개성이 있었던 작품이라든지요.

[김보영] 딱히 어느 한 작품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못해요. 다 좋은걸요. 말씀하신 좌백 작가님 작품은 무협판 배트맨인데, 이건 동양권 나라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작품이잖아요? 원작을 가진 나라에서도 이런 작품이 나오기 어려울 거예요. 전 이 작품 수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웃음) 저작권 문제는…… 세미콜론에서 DC에 허락을 좀 받아 주세요.(웃음) 작품들이 안배가 좋아요. 편집부에서 작품들을 배치하신 뒤에 다시 보니 흐름이 참 좋았어요. 처음에 저는 「초인은 지금」을 오프닝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진산님의 「존재의 비용」이 되었죠. 하지만 보자마자 왜 그 작품이 오프닝이 되었는지 알겠더군요. 처음 초인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마지막에 있는 이서영 작가의 「노병들」은 슈퍼히어로에서 은퇴하는 이야기고요. 중간에는 김이환 작가의 「초인은 지금」과 이수현 작가의 「선과 선」이 있죠. 두 작품이 모두 ‘초인이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세상이 되면 그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하는 의문을 던져요. 그리고 그 다음에 「아퀼라의 그림자」처럼 그런 세상을 다루는 작품들이 배치가 되었죠. 두 분은 열린 엔딩이라고 쓰셨을 텐데 단편집 구성 덕에 열린 엔딩이 아니게 되었네요.(웃음)

[편집부] 말씀처럼 작품들이 저마다의 개성이 확실했고 그에 맞게 구성이 돼서 어느 한 작품만 도드라지는 것 같지가 않아서 좋았어요.

[김보영] 원고를 하나하나 받아보면서 재미있었던 점은, 모든 작가들의 영웅들이 다르다는 것이었어요. 보면서 영웅이란 작가의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작가들 본연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난 것 같고요. 좌백 작가님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진산 작가님은 사람이 영웅이 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를 생각하셨죠. 김이환 작가는 초인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일어날 일을 전반적으로 생각하셨고, 이수현 작가는 시스템이 무너지는 세상에 대해서, 이서영 작가는 사회운동을 하시는 분답게 ‘힘이 국가에 의해서 어떻게 이용되는가’를 고민하셨고요. dcdc 작가와 김수륜 작가처럼 로맨틱한 감성을 넣으신 분도 있고, 듀나 작가처럼 아이돌에 비유해서 영웅의 허상적인 면과 숨어서 애쓰는 사람들을 생각하신 분도 있고요.

처음부터 누가 뭘 쓸지 대강 공유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서로 조금씩 배려해서 자리를 잡은 면도 있었어요. 그래서 작품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서로를 살려 줘요. dcdc 작가는 처음부터 개그를 선점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슈퍼맨(「초인은 지금」)과 배트맨(「편복협 대 옥나찰」)은 이미 연상되는 작품이 있는 걸 보고 플래쉬로 갔죠. 물론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요. 서로가 서로의 팬이었기 때문에 또 다들 조금씩 긴장하고 책임감을 갖고 임하지 않았나 해요. 저는 중간 중간 작가 분들과 고민도 나누고 의견도 교환하면서 ‘같이 쓴다’는 기분을 느꼈기에, 이런 게 정말 공동 단편집이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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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dcdc 작가님의 슈퍼 생리 이야기(「월간영웅홍양전」) 같은 경우, 작품집 전체를 통틀어 봐도 가장 팡팡 튀는 느낌이었어요. 젊고 쾌활한 느낌이랄까.

[김보영] 사실 나이로는 「노병들」의 이서영 작가님이 더 어리세요.(웃음) 이서영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 학생이었죠. 저도 작품만 보고 나이가 좀 있는 분인가 싶었는데 정말 놀랐죠. 사실 dcdc 작가도, 이서영 작가도 지면이 없던 시절에 활동을 시작하셔서 고생이 많았을 거란 생각을 해요.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책이 나온다는 확신을 갖고 작업을 했는데, 그게 좋았어요. 다들 삶이 너무 불안하잖아요. 사실 불안할 때 긴장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해요.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불안이 너무 과하죠. 과하기 때문에 지금은 안정을 주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해요. 젊은 작가 분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작품을 쓰셨어요. 다른 일을 다 미루고 전념해 주셨죠. 출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죠.

[김보영] 그러고 보니 김수륜 작가님 작품 「소녀는 영웅을 선호한다」는 장편으로 발전하게 되었죠. 황금가지 편집부에서 장편화를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편집부] 처음에 딱 작품을 보았을 때, 김수륜 작가님 작품은 장편을 기획하고 썼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하면 한국형 슈퍼히어로 소설로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는 그림도 그려지고. 그래서 장편소설로 기획하신 게 아니냐니까,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처음 기획하셨던 시놉을 좀 보자고 했고, 보내주신 시놉을 편집부 논의를 통해 계약 후 출간하자는 결론에 다다른 거죠.

[편집부] 이제 김보영 작가님 자신의 작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김보영 작가님 작품이 순서상 클라이맥스쯤에 위치했는데요, 『나는 전설이다』 작가인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들이 주로 외로운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데 김보영 작가님 작품이 딱 그러한 느낌이라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끌렸어요. 「인터스텔라」도 많이 생각이 났고요. 시간에 대한 얘기인데다가 딸과의 어떤 유대를 그리고 있잖아요. 특히 흥미로웠던 건, 슈퍼히어로와 빌런은 한 끗 차이라는 말이었어요. 그런 설정이 정말 괜찮더라고요. 이야기의 핵심인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어요. 초인의 마음속 고민, 어려움 같은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고요. 작품을 읽다 보니 슈퍼히어로에 대한 관심이나 고민만큼 빌런에 대한 관심이 참 많으셨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빌런에 대한 상이나 스스로의 정의가 있으신가요?

[김보영] 사실 저는 당연히, 슈퍼맨이 영웅인 까닭은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그렇게 당연한 건 아니라고들 하시더군요.(웃음) 「질풍기획」이라는 네이버 웹툰이 처음에 이렇게 시작해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당신, 당신, 당신 모두가 전설이다.’ 저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람이 선의를 지키고 양심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로 영웅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그래서 한 끗 차이로 악당이 되는 거라고.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도 그래요. 충분히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악당이 되잖아요. 시스템이 무너질수록 더 개인에게 과부하가 걸리고, 큰일도 소수의 사람의 선의로 돌아가는 모습을 많이 봐요. 실은 사람이 영웅이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거죠.

[편집부] 만약 작가님께서 슈퍼히어로가 된다면 어떤 슈퍼히어로가 됐을 것 같으신가요?

[김보영] 최대한 노력했을 때 제 작품 속의 주인공 정도가 아닐까 해요.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갈등하면서 살겠죠. 하지만 당연히 내 주인공 발끝도 못 쫓아갈 거예요. 역시 영웅이 된다는 건 힘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마음을 먹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닌가 해요. 물론 제 영웅상이겠지만. 사실 최근의 많은 사건들 속에서도 보상받지 못했던 작은 영웅들이 있었어요. 그 분들도 양심을 지키느냐 그러지 않느냐의 그 갈림길에서 고통 받았을 거고, 그러면서도 양심을 택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 지킨 사람만큼이나 지킨 사람도 고통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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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처음에 여는 진산 작가님 작품 속 이야기를 뒤표지에 실으려고도 했었는데, 세상 얘기가 참 많더라고요. 민영화 얘기도 있고 와 닿는 얘기들이 많았어요.

“수백 명의 아이들을 싣고 있던 침몰하는 배를 건져 올렸고,
법으로는 처벌 불가능한 위정자를 흠씬 두들겨 패서 위염을 앓던 많은 시민들을 구했다.
인질을 참수하던 테러리스트들의 수뇌부를 붙잡아 거꾸로 매단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했고
국가 자체가 테러리스트의 본부나 다름없어 세계의 검은 양으로 불린 한 독재정권 통치자의 침실을
한밤중에 방문해 사신의 경고를 남기기도 했다.” ―「존재의 비용」 중에서.

[김보영] 작년에 써서 그런 것 같아요. 그 이전에 썼다면 다른 느낌의 책이 나왔을 지도 몰라요. 사실 저도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고, 결말이 그 방향으로 갈 예정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더군요. 요즘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고 써도 이제부터 그 일은 내 글에 묻어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내가 겪은 일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많은 작가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편집부] 마지막으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독자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김보영] 세상에는 숨어있는 영웅들이 많아요. 이건 노자의 인용이긴 하지만, 정말 일을 잘 하면 그 일을 한 줄도 모른다고 하죠. 사람들이 원래 그 사람들이 그냥 거기 있는 줄 알아요. 하지만 원래 거기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출판시장 이야기가 요새 많이 나오는데, 저는 황금가지가 긴 시간동안 계속 단편집을 내 주며 그 자리에 있었기에 지켜온 시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도 작게는 영웅적인 일들이죠. 제가 SF계에 십 년 있다 보니, 많지 않은 사람들이 인생을 갈아 넣으며 이 업계를 지켜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많이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제게 “네 눈에 띈 것은 네 책임이다. 하지만 네 잘못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계속 다시 생각하게 돼요. 책임과 잘못의 구별에 대해서요. 내 눈에 띈 것들이 내 잘못이라면 자책하고 우울해하고 그러다 아픈 마음에 도피하고 잊으려 하겠죠. 하지만 책임이라면 그런 어둠에 빠지는 대신, 그저 작은 것이라도 뭘 할지, 혹은 하지 않을지, 혹은 지킬 지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해요. 영웅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은 그걸 정말 아주 많이 생각하는 사람일 거예요. 힘이 있는가 없는가와 관계없이요.

무엇보다, 함께 해주신 작가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애정을 갖고 써 주셨고, 기대한 것 이상의 작품을 주셨어요. 해설가님들께도 감사를 드려요. 잠본이님 이규원님 두 분 다 히어로 세계의 역사 한 축을 훌륭하게 정리해 주셨어요. 유명하신 분들이라 잘 써 주실 줄은 알았지만 기대 이상이었어요.

끝으로, 『이웃집 슈퍼히어로』 정말 재미있습니다. 전 세계 독점,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글로만 볼 수 있는 귀한 영웅들을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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