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입시 위주 교육과 사학 재단의 비리를 꼬집은 문제작 「무는 남자」는 다섯 명의 여고생들이 벌이는 좌충우돌 탐정 체험기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의 시작이 된 작품이다.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 속에서 마음이 병들어 가는 10대들과 그런 마음의 병을 부추기는 부모와 사회를 날카롭게 조명하는 이 작품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학원 미스터리를 개척했다. 한 여고생이 등굣길에 변태에게 붙들린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보면 주변에 있을 법도 한 이야기인데, 그 변태가 여고생의 손목을 물고는 그녀의 입에 사탕까지 물려주고 사라진다고 하면 그건 좀 확실히 특이하긴 하다. 독자는 저도 모르게 도대체 왜?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캐릭터인 채율은 피해 당사자이건만 초반부터 시종일관 쿨하고 담담하고 무관심 일색이다. (추후 밝혀지는 바에 의하면 몹시 꽃미남 청년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변태에게 손목을 깨물리고도 패닉에 빠지거나 경찰서에 달려가거나 엄마에게 전화하기는커녕, 그대로 지혈을 하고 보충수업을 받으러 학교로 향한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는 사건 해결을 빌미로 접근해 오는 탐정단 아이들이 자신의 입신양명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일 따름이다. 외고 입시 실패로 인해 다니게 된 일반 고등학교, 미국 유학으로 가기 전에 거쳐 갈 징검다리일 뿐인 그곳에서 함께 부대끼게 된 급우들을 수준이 맞지 않는 상대로 판단하며 무시하는 채율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스스로에 대한 더 깊은 열등감이 자리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적 우수 품행 단정한 모범생이지만 마음속은 항상 타인(특히 부모)의 인정에 목마른 소녀. 엄마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악물고 달리던 채율의 인생은 변태를 잡아 보겠다는 괴짜 여고생들을 만난 뒤 소위 ‘모범적인 삶’이라는 레일 위에서 이탈하게 된다. 처음에는 성적이나 등수에는 관심 없이 공부 외의 것에 몰두하는 탐정단 아이들을 우습게 여기며 멀리하려 애쓰지만, 탐정단과 얽히며 17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는 채율의 입을 빌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거는 무의식적인 기대와 요구에 짓눌려 자신의 머리가 아닌 부모의 머리로 사고하고 자신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을 추구하게 되는 현실에 경고를 던지고 있다. 단편 「무는 남자」에 이어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몹시 사랑스러운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도 꼭 만나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