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 박하익 작가 인터뷰

2016.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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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암여고 탐정단』은 흔치 않은 학원 미스터리인데요. 한국에서는 추리소설 작품 자체가 적은 데다가 주로 사회파 혹은 역사추리물이 대세이다 보니 학원 미스터리, 코지 미스터리 스타일의 작품은 정말 없거든요.

A. 『선암여고 탐정단』의 기초가 된 단편 「무는 남자」를 쓸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소설로는 국내산 학원 미스터리가 없었으니까, 한 번 시도나 해보자 하는 심정이었죠. 번역 소설이 팔리는 양상을 보면 우리나라 독자들 중에 학원 물이나, 코지 물을 좋아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거든요. 저도 그 중 하나이구요.
추리작가인 입장에서 좀 민망한 사실을 하나 밝히자면 개인적으로 피 튀기는 걸 아주 싫어해요. 미드를 볼 때도 사람 죽이는 장면이 나오면 기겁해서 채널을 돌릴 정도거든요. 요즘에는 왜 그렇게 잔인한 이야기들이 많은지 평범한 정서를 가진 저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어요. 일상 미스터리라면 안심하고 쓸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Q. 1권인 <방과 후의 미스터리>의 한 에피소드인 효조와 반 친구들의 갈등이나, 2권 <탐정은 연애금지>의 기숙사 사생들의 계급 관계 같은 것은 그야말로 여학생들의 사회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그런 갈등인 것 같아요. 여학생들 사이의 이런 관계들을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작가님 경험 때문인 것 같은데요.

A. 네. 또래 모임에 관한 이야기들은 상당 부분 직접 경험에 기초해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실제로 상위권 학생들의 모임이 비슷하게 운영되었거든요. 모교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따로 공부하는 건물이 있었어요. 학년이 낮을수록 더 적은 학생들을 뽑았는데 일찍 들어온 아이들일수록, 학사 내에서 끼치는 영향력이 컸죠. 중학교 때도 그런 모범생들 모임이 있었구요. 그때는 수학 경시반 중심이 되었죠. 전교 10등까지 석차를 그 아이들이 모두 석권했고, 학급 임원도 모두 그 아이들이었어요. 그 아이들의 우정이 너무 견고해서 다른 아이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죠.

Q. 저도 책 읽으면서 여고시절이 떠올랐어요. 특히 학기 초의 그 긴장감! 누구와 친하게 지낼 것인지, 교실 내에서 내 위치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를 판가름 짓는 중요한 시기잖아요. 그때는 몰랐지만 학교를 다니는 내내 어떤 긴장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얘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했으니까요. 책 읽으면서 다시 그 시절을 생각하니까, 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하네요. 어떠세요? 작가님은 다시 그 시절로 가고 싶으신가요?

A. 반쯤 돌아가고픈 마음이에요. 당시 패션으로 교복에 루즈 삭스를 신는 게 전국적으로 유행했는데, 신어보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 맺혀요.
실수도 만회해보고 싶구요. 전 고등학교 때 성적이 잘 나왔던 것도 아니면서 쓸데 없이 열심히 공부했거든요. 학업에만 신경을 쓰다가 친구들을 사귀고 즐겁게 교제할 기회를 놓쳤어요. 윤미도처럼 오지랖 넓은 친구와 사귀고 선량하게 타락하고 싶어요. 연예인 콘서트도 가고, 남자친구한테 고백도 해볼래요. 정말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현실적인 문제들이 날 괴롭히겠지만, 상상은 할 수 있잖아요. 미련이 넘쳐서 『선암여고 탐정단』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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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권 <방과 후의 미스터리> 이후에 이번에 2권 <탐정은 연애금지>가 출간되었는데요. 2권을 쓰면서 1권과 다르게 더 많이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A. <방과 후의 미스터리>를 쓸 때는 기초가 된 첫 번째 단편을 살리면서 연작으로 써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장편의 호흡을 살릴 수가 없어 고역이었죠. 묘사나, 대화문,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기도 많이 팍팍했구요.
<탐정은 연애금지>에서는 탐정단이라는 구성 인물들을 살리기 위해서 사건을 줄이고, 묘사는 늘렸습니다. 메시지성은 약해졌지만, 이야기는 더 발랄해졌죠.

Q. 1권에서는 채율이 중심이 되었다면, 1권에서는 좀 평면적으로 그려지던 하재와 예희 같은 친구들이 2권에서는 입체적으로 더 많이 부각되던데요. 특히 하재는 ‘카발리스트 킴’으로 거듭나면서 한층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어요. 전형적인 왕따였던 하재가 마지막에서 전교 1등 나나를 제압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답니다! 카발리스트 킴의 성장을 통해서 전하고 싶던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A. <방과 후의 미스터리>에 수록되었던 집단따돌림 사건과 <탐정은 연애금지>의 카발리스트 킴 에피소드는 청소년 집단 특성을 설명하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에요. 집단 따돌림의 구조적 원인이 또래 계급이니까요.
요즘 청소년들은 사교의 범위가 제한되어져 있기 때문에 자아상을 확립할 때 학교나 친구들을 중심으로만 자아성찰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성적이나, 또래 압력 등 불리하고 왜곡된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청소년들이 보다 넓은 시야에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Q. 입시, 교육, 왕따, 교사의 문제, 연예기획사의 허상까지 묵직하고 심각한 주제들이지만 사건 해결은 비극적이기 보다는 명쾌하고 시원합니다. 현실적인 주제와 장르적인 쾌감을 함께 다루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결말에 대한 어떤 원칙이나 그런 것들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A. 특별한 원칙은 없구요. 심리적인 기준은 있어요. 현실적인 정보와 케이스를 집필 전에 수집하고, 최대한 현대적으로 묘사하고 총체적인 모델을 인물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나가자는 거죠. 결과물이 흡족할 만한 수준에 이른 적은 한번도 없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비단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작가들이 하는 노력이겠죠.

Q. 2권에서는 10대 연예인이나 게임 등 10대의 문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는데요. 이런 요즘 십대 문화에 대한 아이디어나 자료들은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A. 관련 서적도 읽고, 대중 문화 기사들도 읽고, 텔레비전도 열심히 봐요. 하지만 역시 가장 영감을 얻는 건 살아 숨쉬는 10대 아이들이에요. 예전에는 제가 직접 가르쳤던 아이들을 관찰해서 아이디어를 얻었구요. 요즘은 10대인 조카들이나, 사촌, 이웃 아이들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려고 노력해요. 연예인들 중 대세가 누군지, 서핑 중에 수집한 은어들, 요즘 유행하는 옷 스타일을 물어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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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탐정단 단원들이 모두 사랑스러운데요. 작가님이 특히 총애하는 캐릭터가 있다면요?

A. 모두 사랑스럽지만, 격하게 애정하는 캐릭터는 미도죠. 『선암여고 탐정단』은 그녀가 없으면 존립하기 어려울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쳐요. 진로나 성적에 대한 염려는 초연히 접고 열정적으로 주변을 탐색할 수 있는 광기와 용기를 품은 아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드라마에서도 배우 강민아 씨께서 윤미도의 귀여움을 제대로 살려 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제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원작 미도의 이미지가 흔들릴 정도로 상큼했거든요. 다른 분들도 정말 훌륭했구요.

Q. 이번에 『선암여고 탐정단』이 드라마가 되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는데요. 방송을 보셨을 텐데, TV에서 본 소감이 어떠세요?

A. 1화가 방송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숨이 막히는 줄 알았습니다. 원작자로서 소설 속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심장에 무리가 갈만큼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삽입된 여러 가지 특수효과들이나, 다르게 각색된 부분도 행복하게 즐기면서 봤어요. 제작진들이 정말 고심해서 드라마를 만들고 계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Q. 똘끼 충만한 탐정단도 곧 고3이 될 텐데,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 같아서 기대가 되거든요. 탐정단의 고3 생활,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A. 3권이 나온다면 에피소드 2개가 담기게 될 거에요. 진학 문제로 각자 고심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들이죠. 자세한 내용은 아직 비밀입니다! 핫핫핫.

Q. ‘선암’이라는 이름에 혹시 어떤 비밀이?

A. 대학 시절 제가 지은 제 닉네임이었어요. 선계의 돌이라는 뜻인데요. 세속의 일로 일희일비 하지 말자는 뜻에서 지었었지요. 그러나 탐정단 학교 이름으로 선암을 선택한 건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교명(校名)으로 현실 세계에 존재할 법한, 현실적이면서도 지루하게 들리는 단어가 필요했는데, 검색해보니 그럴싸한 이름들은 모두 실제 학교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더라구요. 잘못 사용하면 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폐가 되잖아요? 어쩔 수 없이 선암을 쓰게 되었죠. 선암여고는 전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 드려요.

A. 새롭게 시작되는 2015년에는 주변을 잘 관찰해보셨으면 해요. 진짜배기 미스터리는 아주 사소하게 어디든지 숨어 있거든요. 주변 사람들 눈빛이나, 옷차림, 행동을 잘 관찰해서 자신만의 미스터리를 찾아보시길 바래요. 2014년에 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밝혀낸 어떤 여배우님처럼, 선암여고 탐정단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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