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작가

다시 보는 베스트 추천작

끊어야 할 것을 제때 끊지 못했을 때.

어느 날, 왼손 약지에 벌레가 생긴다. 하지만 황수기 씨는 벌레를 제거하는 데 따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 괴이한 증상을 무시해 버린다. 그저 벌레를 반창고로 가리고, 장갑을 가리고, 소매로 덮는다.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하지만 분명한 도망이었다. 누가 봐도 기이하고 이상한 상황이지만 황수기 씨는 일을 해결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벌레로 표상되는 ‘이상(異狀)’처럼 끊어야 할 것을 제때 끊지 못했을 때 과연 개인에게는 어떤 일이 닥칠까. 누군가는 그것이 단호하게 불행이라고 말하겠지만, 소설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는 그럭저럭 행복했다.’ 섬뜩하고 징그럽지만 그렇다고 마냥 외면하기에는 씁쓸하고 안타깝다. 간결한 문체는 주인공과의 거리를 철저하게 지킨다. 문학적 수작 「부패」를 이번 달 다시 보는 베스트에 올리는 이유다.

2023년 11월 2차 편집부 추천작

왼손 약지에 벌레가 생겼다.

평범한 직장인 황수기의 인생은 자신의 왼손 약지에 생긴 3mm 크기의 반점을 발견한 그날 완전히 뒤틀리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흘 뒤, 무지막지한 기세로 커진 그것 안에는 애벌레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황수기 씨는 너무나도 이해가 가는 이유, 즉 시간이 없고 절단 수술을 하기에는 겁이 많으며 어느새인가 왼손 약지에 생긴 그것에 익숙해졌으므로 절단 수술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절단 수술을 하지 않기로 한다. 침착하고 차분한 인간의 몰락이 이어진다.

인생의 부조리함을 담은 이야기를 침착하고 차분한 필체로, 확신을 가지고 써내려간다. 벌레의 모습 자체는 자주 묘사되지 않으나 나올 때마다 확실하게 공포스럽고 끔찍하며, 징그럽다. 하지만 누군가의 감정적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쓰인 흔한 여타의 글과는 다르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일 수도 있었던 소재로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인간의 대처와 삶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글이 전개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이 소설은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심리 스릴러의 색채가 확실하게 가미된 동시에 깊은 문학의 내공을 자랑하는 소설 「부패」를 금주 추천작으로 올린다.

*본작은 제6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예심 및 출판 계약 검토 대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추천일로부터 4개월 이내에 타사 계약 등의 제안이 있을 경우, 브릿G의 1:1 문의를 통해 미리 알려주십시오. 별도의 작품 검토 등을 거쳐 회신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