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차 편집부 추천작

세상 끝에 남은 레즈비언 여자와 아무것도 아닌 남자의 단상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자신의 예명이나 가명을 앞세운다. 평범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파는 흔하디흔한 식당의 붙임성 좋은 웨이트리스 ‘시나몬’은 물론, 매일 피곤한 얼굴로 새벽마다 끼니를 때우러 오는 경찰 ‘케이트’가 그렇다. 컨트리 가수를 꿈꾸며 시나몬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여자와, 착오로 케이트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는 남자의 첫 만남은 이렇듯 온통 모호하고 가짜인 것들뿐이었다. 누구나 오가는 곳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만 나누던 이들은, 서로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면서 가려져 있던 상대의 진짜 모습들을 점차 엿보게 된다. 결코 쾌활하지도 밝지도 않은 고단하고 지루한 삶의 단면들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가 어떤 방향성으로 나아가거나 특별하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짜 이름 아래 놓인 서로를 그저 바라보고, 때가 되면 오롯이 다시 떠나보내기도 한다. 이처럼 「진저와 시나몬」은 그저 그 상태의 관계에 집중하는 이야기다. 익명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한때를 내밀하게 그려내는 과정에서 관계의 속박과 자유를 동시에 고찰하며, 씁쓸한 여운을 짙게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