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비용

  • 장르: 판타지, 기타 | 태그: #이웃집슈퍼히어로 #진산 #존재의비용 #단편 #히어로 #보이드 #초인
  • 분량: 82매
  • 소개: 각 차원마다 세계가 있어서 그곳마다 슈퍼히어로들이 있고 이를 설계하는 설계자가 존재한다. 어느 날 평범한 남자가 찾아와 말한다. 삶이 이토록 팍팍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 더보기

존재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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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문답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여기가 정말 그, 그걸로 만들어주는 곳 맞나요?”

“물론입니다, 고객님.”

나는 상냥하게 덧붙였다.

“적절한 비용만 지불하시면요.”

그의 불신을 털어내려면 상냥함 이상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고객님께서 여기 오실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의 결과죠. 여기는 수많은 차원들의 터미널과 같은 곳이고, 여길 방문하시려면 대단한 의지와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우연이 필요합니다. 여기 방문하신 분들은 다들 초월적인 능력을 손에 넣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서 초인으로 활동하시게 됩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이곳이 바로 초인등록소랍니다.”

설명을 듣는 동안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방안을 훑다가, 내 머리 뒤에 걸린 액자에 머물렀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아마도 속으로 ‘정말 다른 차원이라면 어째서 내가 아는 시가 걸려 있는 거야’ 같은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내게는 준비된 대답이 있었다. 이 장소는 방문자가 들어서는 순간 형성된다. 그의 인식이 받아들이기 가장 좋은 형태로. 방안의 가구, 소품들, 심지어 설계자인 나까지도 실은 저 빈약한 골격에 남성적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희멀건 남자의 창조물이다. 정작 창조주 자신이 모르는 창조물, 그러니까 인지되지 못한 사생아와 같은 것이다.

나는 그 점을 물어봐주길 기대했지만, 매가리 없어 보이는 우리 아버지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 버렸다. 흐음, 아무래도 이번 방문객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엔 너무 숫기가 없는 것 같다.

“그럼 여기서 정말로 그, 슈퍼맨 같은 게 될 수 있다는 거죠?”

사실 초인의 분류는 대단히 다양하다. 언급한 초인명을 볼 때 이번 방문자가 기대하는 바는 파괴적인 패션 감각의 코스튬을 입고 도심을 파괴하는 거대한 적에 맞서 사이좋게 빌딩을 부수며 싸울 수 있는 그런 능력자인 모양이다. 좀 식상하긴 했지만 나는 방문자의 이해와 요구에 성심껏 응하는 설계자다.

“물론입니다. 적절한 비용만 지불하시면요.”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환해졌대 봤자 맥없어 보이는 인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되고 싶습니다. 꼭 되고 싶어요. 만들어주세요. 주사라도 맞으면 되나요? 어, 아니면 수술을 해야 한다든가.”

“아뇨. 그런 번거로운 절차는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개념 행사입니다.”

“개념 행사?”

“예, 생각하면 즉시 실행된다는 뜻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빛이 있으라 하면 있게 됩니다.”

미소를 지으며 나는 세 번째로 반복하는 말을 덧붙였다.

“단, 적절한 비용을 지불하실 수 있다면요.”

그제야 방문자는 움찔했다.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희희낙락하다가 자기 발목에 걸린 현실의 족쇄를 알아차린 표정이었다. 그가 목을 움츠리고 물었다.

“비용…… 요?”

“네. 범인인 고객님을 초인으로 존재하게끔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지요.”

그는 내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지만, 막연하게나마 그게 뭐가 됐든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본능처럼 아는 듯했다. 잠시 주저하다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현금만 받나요? 카드도 되나요?”

“그런 화폐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건 존재의 비용이니까요.”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는데요.”

“질량보존의 법칙과 같은 겁니다. 초인의 능력이란 과도한 힘이죠. 여기서 초인 등록을 하시면 그 과도한 힘을 가지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과도한 힘은 한 개체에게도 큰 문제지만 그 개체가 존재하는 세계에도 부담을 줍니다. 따라서 상응하는 비용이 필요하지요. 고객님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초인의 능력이 달라집니다.”

“아하.”

그는 좀 실망한 것 같았다.

“그러면 시답지 않은 능력밖에 못 가지겠는데요.”

애써 웃으며 덧붙이는 모습이 꽤 애잔했다.

“정말 뭐 가진 게 없거든요.”

뭐 그럴 수도 있다. 초인의 활동력은 그가 지불한 비용에 비례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게, 내가 아는 바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한 방문객이 얻은 능력은 작업장에 굴러다니는 천을 휘둘러 파리 일곱 마리를 잡는 재주였다. 하지만 그 재주 하나로 녀석은 꽤 출세를 했다고 들었다. 요컨대 운용 능력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단 거다.

“염려 마십시오. 존재의 비용이란 고객님이 평소 생각하실 수 있는 가치와는 무관합니다. 그런 건 범인들의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거지요. 이건 초인들의 규칙이니까요.”

“그럼 대체 뭘……?”

“고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초인이 될 만한 요소는 바로 당신의 인생에 녹아 있을 테니까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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