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호여, 루이스 호여,
휘몰아치는 바다의 파도 가운데 있구나]
I.
전설에 의하면 성자 브란은 하얀 새를 쫓아 마지막 구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그의 제자들에게 재능을 하나씩 선물해 주었다.
헬리도로스에게는 달변의 재능을 주었는데, 그는 곧장 이탈리아의 바다로 갔고, 학자가 되어 그 후 교회의 고위직에서 활동했던 여러 후계자들을 남겼다.
레이몬드에게는 쇠로 만든 전투용 도끼를 주며, 전사의 길로 나아가 군주가 되라고 명했다. 그는 목표를 달성해 스코틀랜드의 4대 왕이 되었다.
하지만 막내이자 가장 아꼈던 콜린에게는 아무런 재능도 주지 않았다. 단지 그의 귀에 말 한마디를 속삭이고 그 눈꺼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그래도 콜린은 만족스러웠고 스승이 떠난 후 바위와 덤불투성이 해변에 혼자 남았다.
우리 조상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콜린의 3대손으로 레드 콜린이 등장했다. 아카라의 절벽 위에 초소를 세우고 막강한 바다 해적으로 군림했던 그는 다섯 차례나 프랑스의 부유한 지역으로 항해를 떠났고, 동쪽의 해적들을 무찌르고 별 세 개가 그려진 깃발을 당당하게 휘날리며 돌아오곤 했다.
레드 콜린이라는 이름은 흔치 않은 작명법에 의한 것이지만 흥미진진한 소문을 낳았다. 그는 모든 면에서 위대한 지도자였으나 몽상에 빠지는 기질 때문에 화를 입었다. 늘그막에 서쪽에 있다는 어떤 땅에 대해 들은 후, 해가 지는 방향으로 항해해 갔다가 사흘후에 어느 외딴 섬의 해변으로 시체가 되어 쓸려왔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전설에 불과했지만, 그의 손자인 레드 콜린부터는 연대기 작가들의 기록을 통해 한층 더 확실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신은 그에게 무수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하는 고난을 주었다. 그는 음유시인이었고, 음유시인의 열정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막강한 전사였다.
그는 「우즈나의 하얀 바다」라 불리는 애가와 「붉게 빛나는 황금과 잿빛 은」이라는 매혹적인 기사 모험담을 썼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 할아버지들 시대에 모닥불 곁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으며, 아직도 민속 연구가들은 그의 이야기들을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노래들이야말로 영원하다. 하프와 피리를 통해 그것들은 수세기를 거쳐왔고, 왜곡되고 곡해되면서도 여러 노래집에 살아남았다. 일전엔 독일의 해수욕장에 갔다가, 어떤 악단이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노래들을 연주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콜린은 평생을 방랑자로 살았으며, 중년의 나이에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은 오래도록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어떤 이들은 그가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쿠나 섬에서 기독교 수도사로 여생을 보냈고, 아주 나이가 들어서 해변에 무릎을 꿇고 교회의 방식과는 반대로 서쪽으로 두 팔을 뻗은 채 죽었다고 믿었다.
역사가 결속과 형성의 시대로 흐르면서, 콜린의 후손들은 라덴이라는 성(姓)을 가지고 대서양 서쪽으로 뻗어 있는 험한 바위투성이 반도에 자리 잡고 더욱 탄탄하게 정착했다.
도널드 제도(諸島)에서 그들은 스코틀랜드의 왕들을 괴롭혔고, 일방적으로 매클린 족이나 매크래널드 족과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로칼쉬부터 칸타이어 지역까지 모든 사람들이 별 세 개가 그려진 그들의 깃발을, 그들의 회색 거위 깃털 상징을, 그리고 ‘쿠나’를 연호하는 그들의 함성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후에 그들은 왕과 휴전 협정을 맺고 왕실 위원회로 들어갔다. 수년 동안 그들은 서쪽 해안을 지켰고, 왕의 군대로서 에이그와 토론세이 지역의 해적들을 소탕했다. 어떤 이는 슬릿 지역의 영주가 되었고, 또 어떤 이는 지방의 토지와 스트라티레 남작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명예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만 유지되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중년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대담하고 잘생긴 장쾌한 종족으로, 험난한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아니면 평화로운 시대가 온다 해도, 불가사의한 가문의 운명이었던 서쪽으로의 광적인 여행에 이끌려 다시 한번 배를 띄우곤 했다.
그 집안에서 세 명이 저 멀리 떨어진 쿠나 섬의 해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었다. 한 명 이상이 인간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또 누구는 후덕한 제임스 왕과 함께 순례 여행을 떠났다가, 사라센 사람들과의 전투 중에 모시던 상전의 곁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또 한 명의 라덴이 플로덴에서 서쪽의 병사들을 이끌고 체샤이어의 궁수들과 교전하다가, 왕을 호위하던 궁수들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지만 세월은 평화와 부를 불러왔고, 곧 그 곶의 차가운 돌탑 요새는 고립된 채 버려졌다. 그리고 라덴 집안은 평화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고 킨로쿠나에 새로운 성을 세웠다.
또 집안의 종교를 바꾸어, 교회의 목사들이 옛 성당의 신부들을 대신해 자녀들을 훈육했다. 그들은 뷰트 지역에서 권세를 얻었고, 오랫동안 북쪽 중심지에서 첫째가는 던다스와 우위를 다투었다.
그들은 오로지 이름만 스코틀랜드인으로 남을 때까지 가문의 아들들을 영국인 집안과 결혼시켰으며, 런던이나 멀리 외국에서 살면서 대다수가 모계의 피를 내세워 영국인 지주가 되었다.
머지않아 그 종족은 풍족하고 넉넉한 외양에 우아하고 세련된 예의범절을 갖춘 통상적인 문명인이 되었고, 억센 북방의 힘에 이끌리는 때는 평생 가야 한 번 정도였다.
대개 외지로 떠나 살았기 때문에, 이튼과 옥스퍼드는 차례로 집안의 목사를 불러들였고, 이제 바람 부는 곶 가까이에 있는 그 가문의 집은 이따금 주인이 뇌조와 사슴 사냥을 하러 들를 때를 제외하곤 텅 비게 되었다.
–
II.
소아성 병을 앓았던 콜린은 다섯 살 때 킨로쿠나로 요양왔고, 쇠약했기 때문에 그 뒤로도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부분 그곳에 갇혀 지냈다.
겨울은 런던에서 보냈지만, 북방의 늦은 봄부터 길고 화창한 여름이 다 지날 때까지 외동아들이었던 그는 커다란 빈 집에서 동무 하나 없이 살아야 했다.
프랑스 사람인 보모가 그를 돌보았는데, 딱딱한 가정 교습을 끝낸 후에는 길게 늘어진 소나무 숲과 거친 황무지, 그리고 풍부한 검은 진흙과 멋진 구덩이들 사이에서 마음대로 놀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곶 아래 서쪽으로 2킬로미터 멀리 파도 속에 누워 있는 쿠나 섬과 어우러진 아카라 곶이었다.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다른 곳에서 바쁜 일상을 보냈다. 어머니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가까운 친척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고독한 어린 시절을 갈매기와 황무지의 새들을 벗삼아 보냈다.
그가 해변으로 나오는 것은 대개 오후 때였다. 집을 나서서 숲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이끼로 뒤덮여 불그스름한 회색빛을 발하고 바닷새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아카라의 거대한 곶이 펼쳐졌다.
오른편에는 낮은 모래 해변이 있었는데, 이 모래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거칠고 둥근 석회암 자갈들이 깔려 있고 그 뒤로 히스 관목 숲이 이어졌다.
옆에는 금이 간 바위들이 바닷가로 떨어져 쌓이면서 형성된 낮은 산등성이가 있었다. 그 위로는 무성한 히스 관목과 양치식물들로 덮여 있었고,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맨 꼭대기에는 난쟁이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왜 사람들이 그곳을 켈트 어로 ‘울툭불툭한 수탉의 볏’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이곳이 콜린의 놀이터가 되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그는 실내에서 개들과 놀면서 책에 파묻혀 지냈다. 그리고 아버지의 책장에서 꺼낸 두툼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온화한 서풍이 불어 오는 날이면, 그는 바닷가의 뜨거운 모래 위에 누웠다. 보모인 아멜리에가 가까운 바위 위에 앉아 소설을 읽어주었고, 그는 공상의 나래를 펴며 조그마한 발꿈치를 차올리곤 했다.
또 아카라의 돌탑 요새를 본따 커다란 모래성을 쌓았고, 그곳을 상상 속의 기사들과 숙녀들로 채웠다. 성곽 둘레에 모래를 파서 물을 채운 다음, 말라서 파삭파삭해진 해초를 상대로 무수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아멜리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콜린, 콜린!” 이름을 외치며, 차를 마시러 들어가자고 데려갈 때까지 말이다.
소년 시절을 거치면서 그의 마음에는 두 가지 환영이 남았다.
하나는 눈앞에서 신비스럽게 빛나던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날씨가 되면 바다는 발을 디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오솔길처럼 보였다.
들쭉날쭉한 작은 쿠나 섬은 더 이상 수평선을 가리지 않았고, 하얀 오솔길은 서쪽 저 너머로까지 뻗어갔다. 그러다가 항상 어떤 한 지점에서 갑자기 길이 끊기면서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 너머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상상 속에서 의욕적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시야를 방해하며 갑작스레 안개가 드리워졌고, 그러면 불현듯 앞 바다에 누워 있는 쿠나 섬을 비롯하여 바다 전체가 현실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있곤 했다. 그것을 보면 약이 오르곤 했는데, 그의 꿈은 죄다 이 오솔길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6월의 어느 날, 바다가 뜨거운 열기 속에 잠들어 있을 때 그는 맨발로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보라! 거기에 오솔길이 있었다. 한순간에 오솔길이 뚜렷하게 드러났고,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일도 없었다.
탄성을 지르며 그는 물가로 달려나가,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그 순간 물의 감촉이 그의 환영을 쫓아버렸고, 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마법의 오솔길을 뭉개고 우뚝 솟아 있는 쿠나 섬의 매정한 등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또 다른 환영은 오른편에서 만 위로 솟아 있는 낮은 바위 등성이에 관한 것이었다.
모래밭을 통해서든 내륙을 통해서든, 그는 한 번도 그 너머까지 산책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리로 가려면 가파른 산허리와 위험한 수렁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따금 모래를 밟아 그 길 언저리까지 가서는, 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을까 궁금해 하곤 했다. 그는 그곳을 탐험하려 무진 애를 썼다. 우선은 빈틈없는 아멜리에부터 따돌려야 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거의 꼭대기까지 이르렀는데, 붙들고 있던 해초가 뽑히는 바람에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 위로 도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오래지 않아 그는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자신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한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던 것이다. 모래사장이 길게 깔린 산등성이들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산자락에서부터 바닷가까지 해초 숲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그가 탐험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등성이에서 관심을 거두었다. 어느 날 불현듯, 그 위에서라면 서쪽으로 돼지 등 같은 쿠나 섬 건너편까지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전까진 말이다.
그래서 날을 잡아 그는 홀로 탐험에 나섰다. 해초를 타고 가장 가파른 곳으로 기어올라가 바위 등성이 꼭대기 너머로 턱을 내밀었다. 거기엔 그가 봤던 장면이 있었다. 산등성이들과 누더기 같은 해초 숲 말이다.
그는 기대감에 차서 바다 쪽으로 돌아섰다. 쿠나 섬은 여전히 바다 위에 등을 구부리고 떠 있었지만, 그 너머로는 섬처럼 보이는 작은 점을 향해 멀리까지 뻗어 있는 빛나는 오솔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미칠 듯이 기뻐하며 그 광경을 응시했다. 그것이 파도 속으로 서서히 녹아들 때까지, 그리고 무정한 쿠나 섬이 다시 한번 수평선을 막아설 때까지 말이다. 낙담과 희망이 섞인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그는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그것이 그러한 환영들을 위한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날이면 그는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와 마주해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