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 장르: SF
  • 평점×109 | 분량: 258매
  • 소개: 간단히 배경을 설명하자면 수백년후 인간이 ‘스캔’되어 컴퓨터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입니다. 이미 ‘스캔드'(스캔되어 네트워크에서 살아가는 ... 더보기
작가

유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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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케인은 그 날도 바쁜척하며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이메일 박스에는 청구서가 가득 차 있었고 관리 프로그램은 지급일이 다가왔다며 5분마다 협박을 해왔다. 이 상태로라면 이 법률사무소가 끝장인건 뻔했다. 법대를 졸업하고 지난 12년 동안 단 한번도 져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무실 사정은 의뢰라면 록키 산맥에라도 달려가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물론 그 자신도 이해는 하고 있었다. 이긴 사건이라 봤자 미성년 절도, 소액 사기사건, 이혼 등이었고 그것도 대부분은 공공 변호사 일을 하청 받아서 한 것뿐이었다. 개중에는 지는 것이 확정적이었던 케이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추억을 되씹으며 만족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거물 사무소에 들어갈 뻔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멍청하게도 거절하고 용의 꼬리를 버리고 뱀의 머리를 선택했다. 자신이 능력 있지만 그저 운이 없을 뿐이라고 체념하기로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케인 변호사 되십니까? 의뢰가 있습니다. 휴스턴의 밸리어스 호텔로 오시오.”

“잠깐만요, 그렇게 갑자기……”

“내가 알기론 형편이 어렵다고 들었소. 일 거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도 들었고. 맞습니까?”

케인은 혼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어디서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무소와 저는 이런 무례함을 참아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의뢰를 하시려면 먼저 이름을 말씀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상대방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허세가 마음에 드는군요. 그러나, 나도 허세를 부릴 여유는 없으니 게임은 그만둡시다. 내 이름은 클리포드 모건이라고하오. 화면을 켭시다.”

그제야 모니터에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배경은 필터링에 의해 뿌연 구름 낀 하늘같이 보일 뿐이었지만 화면의 얼굴은 포츈지나 뉴스위크, 샹하이 경제신문에서 수십, 수백 번은 보았을 바로 그 얼굴이었다. 지구 최고, 아니 아마도 태양계 최고의 재벌 클리포드 모건. 케인은 또 누군가의 장난인가하고 잠시 생각했다. 영상 코드만 조금 조작하면 다른 누군가로 보이게 하는 것은 불법이긴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요.”

모건이 말했다.

“아닙니다. 매우 놀랍군요. 이게 장난이 아니라면 더더욱 놀랄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놀란 척을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뭐 별로 상관없소. 어차피 그 쪽도 내 사건을 맡을 수 밖에 없고 나도 그 쪽에 사건을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이니 계약은 체결됐다고 생각하겠소.”

“아니 잠깐, 잠깐.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모건은 살짝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정보통이 있습니다. 당신 재무제표도 바로 여기 있고. 그리고 여러 보고서 또한 당신이 내 의뢰를 거절할 상황이 절대 아니라고 보여주고 있군요.”

그리고 화면에 여러 문서들이 전송되어 뜨기 시작했다. 케인 법률 사무소의 정확한 재무제표와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인터뷰내용 등이 그것이었다.

케인은 어차피 맡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과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수평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빈틈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약점이 전부 상대에게 보여진 이상 반격밖에 다른 방법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계시는가 보군요. 이런 소규모 사무소에 당신 같은 분께서 의뢰를 하시다니.”

케인은 말하면서 뉴스검색으로 모건의 현재 상황을 뽑아보았다. 그에 관한 마지막 기사는 유명 여배우와의 스캔들 기사였다.

“전화로 하기엔 어렵소.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합시다.”

“아직 맡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고서를 읽어서 아시겠지만 전 호오가 분명한 사람이거든요. 뭐 일단 제 얘기부터 들어보시죠. 다른 변호사도 많을 텐데, 아마도 수만 명은 거느리고 계실 텐데요, 저를 골랐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군요. 먼저 다른 변호사들이 전부 죽어서 저밖에 남지 않았거나 전부 모건씨의 사건을 기피했다는 거겠죠. 수임료를 생각해보면 아마 쉽지 않았을 텐데 그랬다는 것은 아마 이기는 게 불가능한 사건을 의미하는 거겠죠. 맞습니까?”

“…”

모건은 조용히 말을 듣고 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해보죠. 그리고, 부하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는 변호사가 이 일을 기피했다는 것은 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군요. 그건 바로 선생님이 더 이상 자기 회사를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즉, 모건씨께선 현재 자기 회사인 모건 엔터프라이즈의 경영권 혹은 소유권을 박탈당하신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맞소.”

모건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쇼. 설사 제가 이 일을 맡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변호사의 수비의무는 적용됩니다. 발설하고파도 그랬다간 접시닦이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요.”

모건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케인이 의뢰를 맡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므로 경계심이 사라지진 않았다.

“자 말씀해보시죠. 내용이 뭡니까. 이 전화를 끊은 뒤 사무실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가 접시 닦느라 바쁠 테니 그 때는 아마 힘들 것 같군요.”

모건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얼굴에 스며 나오는 곤혹스러운 얼굴을 보는 기쁨이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이 이상 밀어 부치면 모건이 다른 싸구려 변호사에게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스캐닝이오.”

“네? 어느 스캐닝을 말씀하시는 거죠?”

“무슨 스캐닝이겠소. 뉴럴 스캐닝이지.”

뉴럴 스캐닝. 이럴 줄 알았지, 하고 케인은 생각하며 바로 끊어버릴까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그러나, 아직 도망치기엔 정보가 모자랐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