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화(Nigredo)]
1815년 가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당의 높은 천장 아래로 석회 가루와 잉크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칠판에 분필로 화학식을 적어 내려가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산소와 수소의 결합은 단순한 물리적 혼합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질의 변화입니다. 두 기체가 만나 전혀 다른 성질의 액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화학의 신비입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필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앞줄에 앉은 젊은 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렇다면 물을 다시 산소와 수소로 분리할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전기분해를 통해 가능하죠. 하지만 그 과정에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자연은 공짜로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알지 못한다. 내가 밤마다 지하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 ‘합리적인’ 화학 교수가 얼마나 비합리적인 꿈을 쫓고 있는지.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대학 정원이 보였다.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있었다. 자연의 변화. 생명에서 죽음으로, 초록에서 붉은색으로.
책상 위에는 학생들의 리포트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내 손은 책상 서랍으로 향했다. 열쇠로 잠긴 아래 서랍. 그 안에는 15~17세기 연금술 서적들이 숨겨져 있었다. 파라켈수스, 니콜라스 플라멜, 바실리우스 발렌티누스…
금지된 지식들.
시계를 보았다. 오후 다섯 시.
해가 지려면 두 시간 남았다. 나는 서랍을 다시 잠그고 가운을 벗었다. 밤을 기다려야 한다. 항상 그랬듯이.
저녁 식사는 하숙집에서 혼자 했다. 집주인 할머니가 만든 감자 수프와 호밀빵. 맛은 없었지만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체력은 유지해야 한다. 연구를 위해서라도.
“교수님, 요즘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연구가 좀 바빠서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것 같던데, 건강을 챙기셔야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할머니는 알지 못한다. 내가 밤마다 대학으로 돌아가 지하실에서 무엇을 하는지.
밤 10시.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며 돌바닥을 비췄다. 나는 후드를 깊이 쓰고 대학으로 향했다.
수위는 이미 퇴근한 후였다. 뒷문 열쇠를 돌렸다. 복도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한때는 와인 저장고로 쓰였던 이곳. 지금은 내 비밀 실험실이었다.
철문을 열자 유황과 수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익숙한 냄새. 나에겐 오히려 안심이 되는 냄새였다.
촛불을 켰다. 벽에는 연금술 기호들이 그려져 있었다. 태양, 달, 안티몬, 수은, 황, 소금…
실험대 위에는 각종 플라스크와 증류기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수정 플라스크 안에 담긴 붉은 물질.
루베도.
세 달 전부터 작업해 온 결과물이었다. 여섯 금속의 정수를 추출하고, 니그레도 과정으로 검게 태우고, 알베도 과정으로 하얗게 정화하고, 마지막으로 루베도 과정으로 붉게 완성한 것.
하지만 이것은 아직 완성이 아니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항상 실패했다.
나는 실험 노트를 펼쳤다. 지난 스물세 번의 시도가 기록되어 있었다.
‘1차 시도 – 실패. 물질이 회색 재로 변함.’
‘2차 시도 – 실패. 폭발. 플라스크 파손.’
‘3차 시도 – 실패. 물질이 검게 변하며 악취 발생…’
모두 실패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다. 고대 문헌들을 연구하고, 수백 번의 계산을 거쳤다. 온도, 압력, 배합 비율, 모든 것이 정확했다. 그런데 왜, 왜 실패하는가?
나는 새로운 촉매를 준비했다. 달빛 아래에서 정제한 수은과, 황의 승화물을 섞은 것. 이것을 붉은 물질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반응이 시작되었다. 물질이 빛나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빛이 더 강해졌다. 플라스크가 뜨거워졌다. 온도가 올라갔다. 200도, 250도, 300도…
“제발…”
나는 기도하듯 간절히 중얼거렸다.
350도. 물질이 황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거다! 드디어…
그 순간,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물질이 회색으로 변했다. 빛이 사라졌다.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또 실패였다.
“젠장!”
나는 주먹으로 실험대를 쳤다. 플라스크가 흔들렸다.
“왜… 왜 안 되는 거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 달간의 노력이 또 물거품이 되었다. 스물네 번째 실패.
촛불이 흔들렸다. 그림자들이 벽에서 춤을 췄다. 마치 조롱하는 것 같았다.
‘포기해라. 현자의 돌 같은 건 없어. 수백 년간 수천 명의 연금술사가 실패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대학 교수로서의 명성, 동료들과의 관계, 건강, 수면…
모든 것을 이 연구에 쏟아부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연금술 기호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뭐가 부족한 거지…”
그때였다.
“교수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문은 분명 잠겨 있었고, 계단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구냐?”
손이 떨렸다. 목소리는 분명 들렸다. 환청인가?
“여기.”
이번에는 옆에서 들렸다.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후드를 깊이 쓴 인물이 서 있었다.
“누, 누구냐! 어떻게 여기에…”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는 사실 여섯이었습니다.”
후드 쓴 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촛불 빛에도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나 무슨 소리를…”
“그 동화는… 사실 연금술을 위한 설명서였습니다.”
나는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벽에 등을 기댔다. 후드 쓴 자와 나 사이에 실험대가 있었다.
“당신 대체 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
그는 대답 대신 실험대 위의 플라스크를 바라보았다. 회색으로 변한 실패작을.
“또 실패하셨군요.”
“그건… 내 일이야. 당장 나가지 않으면 수위를 부르겠어.”
“연금술의 목적을 아십니까.”
내 말은 무시하고 후드 쓴 자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한 목소리로 들렸다.
“그야 당연히 금을 만들기 위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연금술의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닌 걸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
“모든 연금술사들의 최종목표는, ‘현자의 돌’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자의 돌. 라피스 필로소포룸. 철학자의 돌. 연금술의 궁극적 목표.
“현자의… 돌…? 그딴 거 난 몰라. 그리고 백설공주 이야기 따위, 그냥 떠도는 민담이잖아.”
나는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손은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후드 쓴 자는 내 반응을 무시했다.
“그것만 있으면, 황금 따위는 정말 하잘 것 없는 물질일 뿐이죠. 그리고…”
그가 마치 망설이는듯, 내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듯 말끝을 흐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현자의 돌’은 바로 백설공주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