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존의 신호

  • 장르: 추리/스릴러 | 태그: #심리스릴러 #이야미스
  • 평점×25 | 분량: 101매
  • 소개: 지헌은 아끼던 차를 도난 당한다. 얼마 후, 자신의 차가 범죄에 사용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보기

잔존의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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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녀석은 경찰서 주차장에서 따가운 햇볕을 받고 서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정문을 통과해 녀석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딱 1년 만이었다. 숨이 턱 막히는 불볕더위 때문이었을까, 다가가는 발걸음마다 돌을 매단 듯 무겁고 더디게 느껴졌다. 차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오 형사가 꽁초를 바닥에 떨구고 구둣발로 비벼 껐다. 지난 일은 다 잊은 듯 사람 좋은 웃음으로 히죽거렸다.

“김지헌 씨, 오랜만입니다.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재판이 길어져서요.”

“이제 정말 다 끝난 거예요?”

“여기 사인만 해주시면 바로 환부 가능합니다.”

그는 머쓱한 얼굴로 앞주머니에서 꺼낸 볼펜과 함께 서류철을 내밀었다. 서류철을 받아 펼치니 글씨가 빽빽이 적힌 문서가 보였다. 한숨이 나왔다. 내 것을 돌려받는 당연한 일에 왜 이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기가 생겨 잠시 사인을 미루고 녀석을 응시했다. 검은 외장에 전에는 없던 생채기들이 있었다. 지난 1년 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안을 좀 봐도 될까요?”

“그럼요, 본인 차잖아요.”

오 형사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대답했다. 나는 녀석의 뒷문을 열었다. 차 안에 응축되어 있던 더운 공기가 얼굴로 훅 뿜어져 나왔다. 난생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하지만 더 불쾌한 건 따로 있었다. 시트가 정체 모를 흰 가루로 덮여있었다.

“감식 때문에 루미놀하고 분말이 좀 있을 거예요.”

“좀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신경질이 담겼다. 군데군데 검붉은 자국도 눈에 띄었다.

“저건 피예요?”

“아, 네….”

오 형사가 뒤늦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세차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재판부에서 차량을 증거물로 채택한 이상, 저희가 뭘 어떻게 한다는 게 증거물 훼손이라서요.”

“재판은 이틀 전에 끝났잖아요?”

오 형사가 민망한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전까지도 과학수사팀에서 살펴봤습니다. 혹시나 놓친 게 있을까 해서요.”

사라진 아이를 찾고 싶은 마음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게 내가 겪은 피해를 보상해 주는 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를 떠올리자면, 아직도 몸이 덜덜 떨리는 걸 막을 도리가 없었다.

“팁을 좀 드리면요. 국가나 저희 쪽으로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만, 복잡하고 오래 걸릴 겁니다. 정당한 공무수행으로 해석되면 보상받을 길이 아예 없어지는 거고요. 아니면, 정효석한테 민사 소송을 걸 수도 있지만 빚이 산더미였던 놈이 천 원짜리 한 장 있을 리 있겠어요? 차라리 보험사 쪽이랑 얘기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특약에 잔존물에 대한 보장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잔존물이요?”

“사고로 인한 피해물을 잔존물이라고 해요. 선생님 같은 경우는 이 차가 잔존물인 거죠.”

나는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과연 고마워할 일인가 싶었다. 문서에 대충 사인을 해 그에게 건넸다.

“차에 명함 넣어 놨습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 주시고요.”

운전석을 닦으려 물티슈를 뽑는데 그의 말마따나 궁금한 게 떠올랐다. 나는 가려는 오 형사를 불러세웠다.

“범인 말이에요. 그 애를 왜 죽였대요?”

잠시 당황한 오 형사는 땅 꺼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호가 왔대요.”

“무슨 신호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미친놈이 하는 소리를….”

그는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찬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정효석의 변호인은 조현병에 의한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하지만 단순히 감형을 받으려는 수작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자기를 아빠처럼 따른 8살짜리를 차로 납치해 흉기를 휘두른 놈이 제정신일 리는 없겠지. 놈이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목숨을 부지할 걸 생각하면 기도가 꽉 조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차창을 모두 내린 채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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