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 장르: SF
  • 평점×10 | 분량: 99매
  • 소개: 자신의 단편 소설을 수정하려던 K씨는, 이상한 현상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케이준 라이스를 좋아하시나요? 처음 들어본다구요? 이번 기회에 꼭 드셔보시길. 더보기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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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케이준 라이스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K씨가 좋아한 것은, 미국 루이지아나에서 만들어졌다는 크레올식 요리인, 진짜 “케이준 라이스”, 혹은 “더티 라이스”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 K씨는 그 “케이준 라이스”라는 이름의 요리가 “더티 라이스”와 동일한 것이긴 한 건지, 그리고 그 정확한 맛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K씨가 좋아한 “케이준 라이스”라는 것은, K씨가 어린 학생이던 1990년대, 한국에 진출해있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파파이스에서 팔던 동일한 이름의 메뉴였기 때문이다.

1990대 중반 어느해, 학교 운동장에서, K씨는 친구들과 함께 치킨을 사먹기로 하였다.

“켄치 어때 켄치?”

“켄치? 그게 뭐야?”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잖어. 다들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니었어?”

“케이에프씨라고 부르지 않어? 난 켄치 처음 들어봐”

KFC를 과연 뭐라고 줄여불러야 하나 토론하던 어린 학생들이, 어쩌다가 “켄치” 대신에 파파이스를 사먹기로 했는지는 K씨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에 이미 익숙한 맛이었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과 달리, 새로운 브랜드였던 파파이스의 치킨을 씹어먹으면 뜨거운 육즙이 흐른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에는 신기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이었을 것이다. K씨가 친구의 권유로 케이준 라이스라는 것을 처음으로 먹어보았던 것은.

“케찹을 섞어서 먹어봐. 우리 형이 알려준 거야.”

감자튀김에 딸려나온 케찹을 쓱쓱 비벼먹은 케이준 라이스는, 어린 K씨의 입에서는 정말이지 색다른 맛이었다. 부드러운 버터향의 비스킷이나, 짭쪼름한 감자튀김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집에서 먹는 흰밥이나 볶음밥 같은 맛도 아니었다. 향신료의 향이 살짝 풍겨나오면서도, 느끼하지도, 반대로 텁텁하지도 않은 맛. 거기에 케찹을 살짝 비빈 달콤한 뒷맛. 맛은 좋지만 느끼한 치킨에 곁들여먹기에는,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 세상에는 이런 맛도 있구나. 우리는 항상 똑같은 음식 똑같은 메뉴만 먹을 필요가 없는 거였구나. K씨는 그날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그날부터 K씨는, 친구들과 함께할 때도, 가족들과 시켜먹을 때도, 혼자서 밥을 때울 때도, 파파이스의 치킨과 함께 꼭 케이준 라이스를 곁들여 먹고는 했다.

하지만 좋은 것은 영원하지 않는 법이다. 한국에 들어온 수많은 프랜차이즈들이 그러하듯이, 특이하고 평범하지 않은 메뉴는 인기가 없기 마련이고, 인기없는 메뉴는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케이준 라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파파이스 매장에서는 케이준 라이스를 팔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파파이스식 감자튀김은 여전히 불티나게 팔려나갔지만, 이제 케이준 라이스를 찾는 사람도, 그런 메뉴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K씨 말고는 없어보였다.

K씨는 끈질기게 기다렸다. 언젠간 케이준 라이스를 다시 팔아주겠지. 언젠가는 다시 맛볼 수 있겠지. 하지만, K씨가 대학을 가고, 대학을 그만두고, 또 다른 대학을 가고, 사기를 당하고, 공황장애와 성인ADHD와 우울증을 차례로 얻어가는 동안에도, 파파이스는 케이준 라이스를 다시 팔아주지 않았다.

대신에, 파파이스 자체가 한국에서 망해서 사라져버렸다.

K씨의 그 끈질기고 간절한 희망이 마지막으로 산산히 부서진 순간은, 2022년 초, 미국에 있는 원조 파파이스 매장들 조차 이제는 케이준 라이스를 팔지 않게 되었다는, 정말 거짓말처럼 어처구니 없는 소식이었다. K씨는 영어로 된 그 뉴스를 읽고 또 읽으면서, 자신의 영어 실력이 퇴화해버려서 잘못 읽은 것이기만을 바랬다. 그는 마음 속 한 구석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 무너진 부분이 K씨를 전부 무너뜨릴 정도로 큰 부위는 아니었지만, K씨에게는 나름 소중한 부분이었다. 마치 어릴 적 소중했던 추억이 더이상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을 때, 소중했던 사람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수십년이 지나서야 실감하게 되었을 때의, 그런 종류의 상실감이었다.

그렇게 K씨는, 파파이스의 케이준 라이스를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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