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람푸스 어셈블

  • 장르: SF | 태그: #네온그린X마스 #밀감마켓
  • 평점×20 | 분량: 119매
  • 소개: 수취인 불명의 화물을 맡게 된 ㄱ씨. 화물은 의족이었다. 그리고 그건 게임 친구에게 가야 할 물건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게임 친구를 찾아 화물을 배송할 수 있을 것인가? 더보기

크람푸스 어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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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신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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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씨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그러니까 사장님이다. 어디까지나 서류상은 말이다. 그는 자신을 택배기사라고 소개한다. 규정상이야 사장님이지만 실제로는 택배기사니까. 그렇지만 서류와 규정을 떠올린 건 지금 ㄱ씨가 마주한 택배 때문이다. 대면해서 꼭 서명을 받을 것. 규정은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이 택배 하나 때문에 모든 동선이 꼬인다. 기재된 연락처는 존재하지 않는 연락처다. 일단 방문한 주소지의 문에는 광고 전단만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고 방치된 곳처럼.

규정을 뒤져본다. 배송인이 없을 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소를 잘못 기재했을 때의 규정. 일단은 발송인에게 연락한다. 다행히 이 연락처는 살아있는 연락처다. 해외에 있는 최첨단 사이버네틱스 의수 제조사다. ㄱ씨도 이 회사의 백본을 신체에 설치하는 걸 고려해 본 적이 있다. 회사와 제휴하지 않은 곳이고, 가장 비싼 인간-모델들이 광고하는 하이엔드 브랜드라 수술비의 단위를 세다가 포기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질문을 AI 번역기를 통해 포멀한 글로 바꿔 메일로 바꿔 전송한다. 당신들이 말한 주소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연락도 받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배송할 수 있는 추가적인 정보를 달라. 그게 아니라면 해당 화물을 반송하겠다. 대충 그런 내용. 이 특별한 택배를 제외하면 할당량은 다 끝냈다. 해는 이미 진작에 건물들 아래로 들어가고 하늘에는 달이 걸려 있다. 그렇다고 ㄱ씨가 퇴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ㄱ씨는 어릴 적 모든 종류의 바퀴 달린 것들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퀴에서 내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개인용 통신 단말기를 켜자 수많은 고지서 팝업이 ㄱ씨를 반긴다. 팝업들을 닫고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한다. 퇴근이 무색하게 다시 또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도시는 냉장고 하나 넣기 어려운 방들로 쪼개져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보통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때우거나, 그것조차 힘든 사람들은 음식점에서 뭔가를 주문한다. 한때는 드론 배송이 모든 수요를 잡아먹을 거란 이야기도 있었지만, 방으로 쪼개져서 누가 사는지도 모를 건물에서 드론을 사냥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결국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가진 ‘인간’이 직접 음식물을 배달한다. ㄱ씨는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영업하는지도 모를 소매점 앞 두터운 방한복과 발라클라바를 쓴 괴한, 아니 음식물 배달 기사들. 속칭 딸배들의 무리. 물론 ㄱ씨도 딸배지만 이건 어차피 아르바이트에 불과하지 않나? 저 무리에 끼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자기 자신도 잘 모를 생각을 하며 콜을 받는다.

사람들은 밤새 음식을 먹는다. 그러니까 콜은 끊이지 않는다. 팔자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폐기 시간이 임박한 삼각김밥 몇 개를 구매한다. 주문한 사람들도 단순히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 하느라 밥 먹을 시간이 없었을 뿐일까? 하지만 그 사정을 일일이 헤아려 주기에는 지갑에도 육체에도 여유가 없다. 김밥을 베어 물며 앱을 종료하고 마감을 찍는다. 그때 알림이 울린다. A사에서 온 메일이다.

회수하지 않겠습니다. 임의 처분 바랍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