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박철의 수기
의정부는 오랜만이었다. 서울 남쪽 끄트머리 봉천동 일대에서 주로 생활하는 나로서는 친구를 만나러 북 서울 경계선을 넘어 의정부까지 나선 것은 작은 여행이라 할 만했다. 오랜만에 낯선 동네에서 늘어지게 마시고 싶었다.
의정부하면 역시 부대찌개다. 존슨탕 대짜를 시켜 놓고 한참 소주를 걸치는데, 친구 녀석의 휴대전화가 부르르 울렸고, 녀석은 급한 일이 있다며 일어서 버렸다. 나와의 만남보다 급하지 않은 일이란 많지 않을 테니 굳이 묻지는 않았다. 대신 미안해하는 녀석에게 택시비가 없다며 3만 원을 빌려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아마 당분간은 안 보게 될 것 같다.
알딸딸해진 상태로 거리를 걷다가 서울 택시를 발견하고 잡아탔다. 택시가 지나는 길가에는 ‘의정부 부대찌개’라고 떡 하니 써붙여 놓은 간판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큼지막한 글씨 앞에는 저마다 원조, 참맛, 손맛 따위의 문구를 갖다 붙여 놓았다. 의정부 부대찌개라는 포기할 수 없는 브랜드를 저마다 내세우다 보니 나머지 식당 상호만으로는 헷갈려서 이 집이나 저 집이나 다 비슷해 보였다.
그럼에도 하필 ‘그’ 식당이 눈에 띈 것은 마침 앞쪽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택시가 잠시 정차했다는 우연 때문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차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황량한 도로 가에 부대찌개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도로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식당 건물 한 채가 달랑 서 있었는데, 어둠 속에 홀로 불이 켜진 간판이 마치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때마침 간판 불이 꺼졌고, 그게 시선을 더 끌었다. 이어 식당 홀의 불도 차례로 꺼졌다. 누군가가 불을 끄면서 나오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가게 문이 열리면서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에는 자그마한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품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꺼내더니 식당 문을 잠갔다.
돈 냄새가 확 풍겼다.
여자는 식당 주인일 터였다. 영업을 마치고 종업원을 내보낸 다음 남아서 문단속을 하고는 매상이 든 돈 가방을 들고 귀가하는 길이리라. 장사가 잘되는 식당은 가끔 현찰을 선불로 받거나 카드를 받지 않기도 한다. 저 식당도 그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래서 저렇게 현찰 가방이 두둑한 것이다.
식당 문을 잠근 여자는 식당 옆 공터로 걸어가 카렌스에 올라탔다. 가로등 불빛에 검게 빛나던 카렌스는 잠깐 그르렁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종업원이 혼자 카렌스로 출퇴근할리는 없다. 역시 여자는 주인이 틀림없다.
이건 쉽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름대로 범죄의 관록이라면 관록이 붙은 나였다. 식당 건물은 꽤 컸고, 하루치 매상도 상당할 터였다. 그건 무엇보다 불룩한 돈 가방이 확실히 말해 주고 있었다. 주인 여자는 혼자 남아 문단속을 한 다음 그날 매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돈 가방을 들고 귀가한다.
부대찌개 집에서 수표가 오갈 리 없다. 따라서 그 가방에는 꼬리표 달린 수표가 아닌 알토란 같은 지폐 다발만이 한가득이다.
시계를 보았다. 10시 30분. 인적은 없었다. 이날과 같은 우발적인 교통사고만 아니라면 원래 이 시간대에 막히는 도로는 아닌 듯했고, 여자가 잠그고 나온 식당 문은 길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차를 정차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 안이었다.
교통사고 처리가 마무리되었는지 정체가 풀렸다. 택시는 주행을 시작했지만 내 머리는 이미 돈 가방 탈취 계획으로 분주해져 있었다.
내 인생의 화두는 늘 돈이었다. 부모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형과 나는 엘리시움 보육원(예전엔 고아원이라고 했지만)에서 자랐다.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시설에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형과 같이 보육원을 나와서 고학을 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건 힘들었지만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란 불법적인 것도 포함된다. 유흥업소의 웨이터라든지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절도와 사기 같은 것에도 발을 담갔고,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생활비와 월세 조달은 쉬워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내친 김에 대학까지 입학해 버렸다. 그럭저럭 학교 성적은 좋았다.
대학에 와서는 잠깐 생각이 흔들렸다. 단지 손쉽다는 이유로 어두운 길을 전전하며 잘못 살아 온 건 아닐까?
추상적인 도덕이 반복 주입되는 곳이 대학이었다. 책, 강의, 친구 모두 ‘이타’를 이야기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른 사회, 더불어 사는 길 따위를 주제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길가 돌멩이보다 숱하던 그 약삭빠른 인간들은 다 어디 간 거지? 내가 모르는 새 다른 사회로 워프한 건가? 아니면 내가 대학에 진학할 즈음 인간종이 전격 개량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는 없다. 거룩한 ‘말씀’에 잠깐 현혹되었지만 난 이내 깨달았다. 그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세련되어진 것일 뿐이었다.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내는 대신 ‘올바른 척’을 하면서 평판을 유지하는 쪽이 잇속을 챙기기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것이었다.
그들의 도덕은 자신의 다짐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희망이었다. ‘남이 바르게(혹은 어수룩하게) 살아 주면 내 인생이 편하겠다’는 바람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그들은 내심이야 어떻든 훌륭한 말씀만 코끝에 내걸면 그 비슷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 이치를 뒷길에서 굴러먹은 나보다도 훨씬 빨리 깨우치고 있었다.
유복한, 아니 하다못해 평균적인 인생에서는 그것이 맞는 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도 세상도 버린 내가 왜 도덕을 지켜야 하는지, 왜 그래야 ‘사회’가 아닌 ‘내’가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왜 ‘모두가’ 아니라 ‘내가’ 도덕을 지켜야 하는가.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질문이 틀린 것이다. 결론이 정해진 답을 억지로 만들려 해서는 안 되었다. 형이상학의 구덩이에서 나는 기어나왔다. 남의 장단에 춤추는 덩달이가 될 뻔했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방황을 뒤로 하고 다시금 ‘나’만의 인생을 위해 내 안의 ‘악’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부대찌개 식당과 돈 가방과 50대 여자의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택시는 봉천동 내 집에 도착해 있었다. 방 하나, 부엌 하나의 월세집. 이곳이 형과 내가 사는 공간이다. 연립 주택의 반지하여서 월세가 쌌다. 어학에 재능이 있는 형은 일문학과에 진학했다가 휴학하고, 집에서 주로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 둘이서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겨우 학비와 월세를 감당할 수 있었다.
나는 형 몰래 주방 싱크대 서랍에서 날이 잘 선 과도를 골라 신문지에 싸 놓았다. 실제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신문지에 싼 칼날 끝만 살짝 보여 줘도 그 아줌마는 굵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다가 철퍼덕 주저앉아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줄 것이다.
다음 날 오후 9시쯤 준비한 과도를 가을용 긴 외투 안에 집어넣고 집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형은 번역 원고를 배 밑에 깔고 TV를 보면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저러다 라면을 끓여 먹고 일찍 잠들겠지. 형의 습성은 내가 잘 안다.
예의 그 식당까지 거슬러 찾아가는 길은 전날보다 멀게 느껴졌다. 전철로 도봉산역까지 간 다음 택시를 탔다. 도로 가에 덩그러니 있는 식당이라 지표가 없어 택시 기사에게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기억을 더듬어 주먹구구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는데, 근처의 R사거리를 기억해 내고 그 서쪽으로 500미터쯤 더 가자고 주문한 다음에야 겨우 익숙한 간판을 발견 해낼 수 있었다. ‘의정부 부대찌개’라는 큼직한 글씨가 있고 ‘의정부’와 ‘부대찌개’ 사이로 삐친 듯한 V자 위에 ‘원조’라고 쓰여 있었다.
도착하니 오후 10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식당에는 드문드문 손님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부근 후미진 곳에서 식당을 주시했다. 식당 손님이 하나둘 줄어들더니 영업이 끝나고 마침내 종업원들이 나갔다. 그 다음에야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여주인은 직접 문단속을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어지간히 종업원을 못 믿는군. 덕분에 나는 오늘 돈을 벌고 당신은 경을 치는 거다.
10시 40분이 막 넘어설 무렵 드디어 여자가 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손에는 돈 가방을 든 채였다. 전날 밤 여러 차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로는 식당 문을 잠그고 주차장까지 걸어가기 전의 짧은 시간이 범행 기회였다. 그중에서도 가게 문을 잠그려 문 앞에 서서 잠시 지체하는 순간이 최적의 순간이다. 눈치 채지 못하게 옆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조용히 해.”
나지막한 내 말에 여자가 돌아보았다. 넙데데하고 기가 세 보이는 얼굴이었고, 체격 또한 건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온갖 궂은 일로 억척스러워진 50대 여자의 몸매. 힘만으로 따진다면 연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느라 곯아 있는 나를 훨씬 웃돌아 보였다.
여자는 일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상대로 일이 진행된 건 딱 여기까지였다. 공포에 질려 다리를 후들거릴 줄 알았던 여자는 다음 순간 확 불쾌한 표정을 지었는데 겁에 질린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방만 내놔. 그럼 안 다쳐.”
그 말에 여자는 얼굴을 험악하게 찌푸렸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지고 눈초리가 올라간 그 얼굴은 분명 몹시 성난 표정이었다. 난 움찔해 버렸다. 그것이 실수였다. 원래 나약한 인상의 내 얼굴은 위협에 적합하지 못하다. 그런 데다가 겁에 질려 벌벌 떨 줄 알았던 여자의 예상치 못한 사나운 반응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 것이 잘못이었다.
칼을 먼저 보여 주었어야 했는데, 칼은 신문지에 싼 채 허리춤에 늘어뜨리고 있어서 여자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제일 큰 패착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의 눈에는 내가 애송이로 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린 노무 자식이!”
여자는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나무 등걸 같은 팔뚝으로 나를 확 밀쳤다. 내 몸은 종잇장이 펄럭이듯 휘청하며 뒤로 한 발자국 밀려났다. 여자는 벌레를 보는 듯한 눈길을 쏘아 보내고는 주차장 쪽으로 뛰어갔다. 뛰면서 가방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휴대폰을 꺼내들려는 모양이었다. 경찰에 신고를? 다급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화가 울컥 치밀었다.
나는 여자를 따라잡았다. 뛰어가는 여자의 옆구리에 신문지에 싼 칼끝을 찔러 넣었다. 여자는 “흡” 하는 신음 소리를 허공에 남기고 조금 전의 씩씩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그 모습에 왠지 한 번 더 울컥했다.
이제는 다리가 좀 후들거리는 모양이지? 이왕이면 좀 더 빨리 자빠졌으면 어때? 아줌마까지 날 장기판의 졸로 취급했어? 나는 이 순간 당신의 운명을 거머쥔 존재란 말이다!
일을 저질러 버렸다는 느낌보다는 분풀이를 했다는 후련한 생각이 앞섰다.
옷을 살폈다. 다행히 피가 적게 튀었다. 튄 피도 대부분 칼을 싼 신문지에 묻었다.
불현듯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얼핏 들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이런! 주차장 입구 위쪽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CCTV 카메라 렌즈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낭패였다. 첫날에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식은땀이 솟았지만 난 그 와중에도 목표물을 잊지 않았다. 여자가 떨어뜨린 돈 가방을 주워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도로에는 차가 드문드문 있었지만 어차피 달리면서 길 안쪽 사각지대인 이쪽을 본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제길, 그놈의 CCTV 카메라만 아니었다면. 나는 준비해 온 여분의 신문지에 과도를 싸서 외투 안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떴다.
길가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봉천동이요.”라고 해 놓고는 뒷좌석에 몸을 파묻었다.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돈 가방을 슬쩍 열어 보았다. 대충 300만 원 정도일 것 같았다. 강도질이야 해볼 만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릴 만한 돈은 아니다. 살인은 애당초 내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예기치 못한 위험을 감수해야 되었기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고, 형은 잠들어 있었다. 신문지 뭉치에 싼 과도와 돈 가방을 부엌 싱크대 아래 배수관 뒤쪽에 던져 넣고 싱크대 문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형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CCTV 카메라에 찍혀 버렸으니 경찰이 곧 나를 체포하러 올 것 같다, 며칠간 피해 있으라 하는 말에 형은 놀라면서도 순순히 여행 채비를 하고 집을 나갔다. 사람을 찔러 가면서까지 얻은 돈을 경찰에 압수당하는 것은 억울했다. 돈 가방은 집을 나서는 형에게 건네주었다.
다음 날 의정부 부대찌개집 식당 주인 50대 여성 김 모 씨가 귀갓길에 식당 앞에서 피살되었다는 보도가 조그맣게 기사로 실린 것을 인터넷에서 확인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 저녁.
집에 혼자 있을 때 형사 두 명이 찾아왔다. 문을 열어 주자, 그들은 내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즉시 연행되었고, 월셋집 수색도 진행되었다. 여자를 찌른 칼과 범행 당시에 입었던 옷가지가 증거물로 압수되었다.
경찰은 역시 CCTV 화면에 찍힌 내 얼굴을 맨 먼저 확보한 것이었다. 그 화면에서 출력한 사진을 택시 회사에 돌리면서 여자가 피살된 시간에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탄 남자를 수배했고, 신고 정신이 투철한 그 택시 기사가 나를 봉천동 집앞까지 태워다 준 것을 경찰에 알려 금세 형사가 들이닥쳤던 것이다.
경찰은 CCTV 영상과 함께 범행에 사용된 칼과 옷을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자백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범행을 마음먹었고, 돈 가방만 탈취할 생각이었는데 여자가 도망치면서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찌르고 말았다며 용서를 빌었다. 돈 가방은 강에 버렸고 돈은 다 써 버렸다고 했다.
“그냥 찔렀어요,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찔러 놓고 보니 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울먹였다. 칼을 준비해서 가게까지 찾아갔으니 우발적인 살인하고는 격이 다르다. 하지만, 내 성장 과정과 생활고에 동정을 했는지 횡설수설인 진술에도 경찰들은 수긍을 하는 눈치였고, 현장 검증할 때의 사건 재연도 성의 없이 대충 했지만 무리 없이 마무리 지어졌다. 사건은 곧 검찰로 송치되었다.
서울북부지검으로 송치된 후에도 사건 수사는 일사천리였다. 무엇보다 본인이 자백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CCTV 화면에 칼로 찌른 후 카메라를 힐끗 쳐다보는 무표정한 내 얼굴이 뚜렷하게 나와 있다. 해상도가 높지 않고 조명도 약했지만, 나임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내 지문이 검출된 칼과 여자의 피가 묻은 범행 당시의 옷도 움직일 수 없는 증거물이었다.
강도살인이라는 중대 사건 치고는 피의자가 순순히 자백해 수사가 쉽게 진행되자 검사는 내게 우호적으로 대해 주었다. 담당 검사는 호연정이라는 이름의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늘씬한 몸매에 긴 팔다리를 소유한 미인이었다. 눈이 살짝 작긴 했으나 그것도 까무잡잡한 피부와 갸름한 얼굴에 잘 어울렸다.
“처음부터 죽일 작정이었던 것 같지는 않네요. 유흥비 때문이 아니라 생활고 때문이었던 동기도 참작될 거고. 사람을 죽여 놓고도 부인하는 뻔뻔한 자들이 대부분인데 처음부터 순순히 자백했다는 점도 있고. 어떻게 보면 당신은 좀 순진한 사람인 것 같네요. 내가 현직 검사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구형할 때 참작해 줄게요.”
호연정 검사는 곱상한 외모와 달리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아무리 우발적인 행위라고는 하나 살인을 저지른 나를 동생처럼 토닥거려 주었다.
사건은 검찰 송치 2주일 만에 기소되었다. 국선변호인이 선임되었고, 변호사 김기욱이 접견을 위해 구치소로 나를 찾아왔다. 김기욱 변호사는 무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짧게 정리해 올백으로 넘긴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의욕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짤막하게 몇 가지만을 부탁한 다음 금방 돌려보냈다.
그로부터 다시 2주일 후 서울북부지방법원 제101호 법정에서 공판기일이 열렸다. 큰 법정이었는데도 사건에 대한 관심 때문에 방청석은 가득 차 있었다.
먼저 호연정 검사의 모두(冒頭)진술이 있었다. 강도살인이라는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서 수사 검사인 호연정 검사가 이례적으로 공판도 담당키로 한 모양이었다.
“피고인 박철은 현재 22세의 대학 3년생인 자로서, 201X년 11월 4일 오후 10시 40분경 의정부시 T동 63번지 소재 ‘의정부 부대찌개’ 식당 앞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식당 주인 53세의 여성인 피해자 김정자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현금 300만 원이 든 돈 가방을 가져가 강취하였습니다.”
호연정 검사는 그녀의 성격처럼 군더더기 없이 간략하게 마무리하였다.
곧이어 재판장의 인부 질문이 있었다.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합니까?”
내가 경찰에서부터 쭉 자백을 했고 완벽한 증거가 갖추어져 있는 사건이어서 그런지 법정에는 살인 사건에 걸맞은 긴장감은 없었다. 내가 다음의 말을 하기 전까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과 배석판사는 선잠을 깬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청객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불의의 일격을 맞은 호연정 검사의 표정은 볼 만했다. 얼굴이 확 붉어져서는 검사가 끼어들 순서가 아닌데도 끼어들었다.
“피고인, 검찰에서 다 자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국선변호사에게 다시 확인했다.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는 것입니까?”
“네, 수사 기관에서 자백은 했지만 그건 본의 아니게 거짓말한 것입니다. 피고인의 범행이 아닙니다. 피고인은 당일 사건 현장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일찍 잤다고 합니다.”
김기욱 변호사는 확신에 찬 태도로 대답했다. 호연정 검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한 채 김기욱 변호사를 쏘아보았다. 자백하는 피고인을 변호사가 꼬드겨 범행을 부인하도록 부추겼다고 생각한 듯했다. 증거가 완벽한데 괜히 시간을 낭비케 하고 피고인인 내 양형에도 오히려 불리하게 되었다는 무언의 나무람이 담겨 있었다.
재판장은 생각지도 못하게 재판이 번거롭게 되었네, 하는 표정을 잠시 지어 보였다가 도리 없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검찰 측에서 입증 계획을 밝혀 주시죠”
호연정 검사는 화가 났는지 일사천리로 모든 증거를 공개했다.
“우선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에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습니다.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의 얼굴이 찍힌 CCTV 화면, 그리고 피고인의 지문이 묻어 있는 칼과 범행 당시 입었던 것으로 피해자의 피가 묻어 있는 옷을 증거로 제출하겠습니다. 칼과 옷은 모두 피고인의 집에서 압수되었습니다.”
김기욱 변호사는 아무런 이의도 않고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변호인은 증거를 인정하는지 여부를 밝혀 주십시오.”
“피고인의 경찰과 검찰에서의 진술을 모두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증거물들은 피고인의 범행과 관련이 없습니다.”
경찰과 검찰에서의 내 자백 조서가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부인하면 수사 기관에서의 진술은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게 된다.
힐끔 보았더니 호연정 검사의 얼굴빛이 다시금 붉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피고인이 자백을 뒤집어 봤자 다른 증거들이 워낙에 탄탄하다는 믿음 때문인지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김기욱 변호사는 내친 김에 몰아붙였다.
“피고인 측에서는 피고인의 형 박성 씨를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피고인의 형이 관계가 있나요?”
재판장은 의아한 듯 물었다.
“분명히 사건의 진상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증인으로 채택해 주시면 신문 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좋습니다, 증인 채택하겠습니다. 다음 기일은…….”
“재판장님.”
“왜 그러시죠?”
“사실은 피고인의 형인 박성 씨가 지금 법정 밖에 와 있습니다. 지금 증인신문을 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건 곤란합니다. 검찰의 반대신문 준비가 안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무엇을 위한 증인인지도 불명확한 상태고.”
“피고인은 지금 강도살인죄로 구속되어 구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무죄라면 하루라도 빨리 나가야 마땅합니다. 형의 증언은 피고인의 유무죄를 가릴 수 있는 중요한 내용임을 말씀드립니다. 형은 사건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가 이제야 법정에 나온 것입니다. 만약 오늘 못한다면 다음에 꼭 증언을 들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검사님만 양해해 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김기욱 변호사는 재판장에게서 시선을 돌려 결정을 촉구하듯 호연정 검사를 쳐다보았다. 호연정 검사는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도대체 피고인이 무슨 뚝심으로 범행을 부인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변호사의 얘기를 듣고는 호기심이 폭발해 버린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재판장님. 검찰은 지금 당장 증인을 신문해도 이의가 없습니다.”
소송 전략상 즉석에서 증인신문을 하는 것은 거부함이 마땅하겠건만 검사는 호기심과 더불어 호승심이 발동한 탓인지 쾌히 수락했다. 그만큼 증거에 충분한 자신이 있다는 것이리라.
“그럼 재정증인으로 신문토록 하겠습니다. 증인을 부르세요.”
김기욱 변호사는 법정 뒤에 앉아 있던 자신의 직원에게 손짓을 했고, 직원은 내 형 박성을 데리러 법정 뒷문을 나갔다. 잠시 후 법정 뒷문이 빼곡히 열리더니 형이 들어왔다.
방청객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재판장도 흘깃 내 형을 보더니 얼이 빠져서 내 얼굴을 한번 보고는 다시 내 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형이 증언대 앞으로 오기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호연정 검사의 표정은 더욱 볼 만해졌다. 안 그래도 까무잡잡한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